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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그리고 콘텐츠 자막의 힘

유튜브 시대, 하나의 장면과 여러 개의 현실

by 파랑새의숲


제 유투브에는 요즘 같은 내용, 사실을 바탕으로 하긴 했으나

상반된 자막과 정보와 감정을 실은 쇼츠가 뜹니다.

제가 양쪽 입장을 다 검색해서 보기 때문인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사실, 완전히 다른 세계여서요.


저는 현재의 이런 정치적 극단적인 양극화가

사실이나 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서 그러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물론 가짜뉴스들이 근본 원인이긴 할 테지만

아, 그보다는 좀 더 깊게 진행된 단계의 분열 상태구나.. 라고 느꼈어요.


우리나라를 한 사람에 비유하자면,

마치 하나의 인격 안에서 여러 개의 현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 채

각자 다른 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 분열’ 상태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나의 몸 안에 서로 다른 진실 체계가 공존하는

사회적 분열증적 구조 말입니다.

같은 장면을 봐도 전혀 다른 해석이 붙고,

같은 사건을 접해도 서로 다른 믿음이 즉시 ‘진실’이 됩니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바라보는 틀이 이미 갈라진 것이죠.

이 상태에서는 사실을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정보의 차이가 아니라 지각의 구조가 서로 달라진 상태니까요.


이건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마음의 힘 자체가 약해진 상태라고 느껴졌습니다.




예전 읽었던 정신분석가 이승욱 박사의 <애완의 시대> 라는 책이 떠올랐어요.

그 책에서 저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의 상실'과

'강한 타인의 판단에 기대려는 경향'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애완'이 되길 자처하는 시대라고 비평했죠.



예전 언젠가부터 티비에 예능 프로에서부터였던 것 같은데요,

'자막'이 등장하기 시작했었습니다.

저는 무심코 한참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하지 않는 나'에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냥 편하게 재미있게 보다가 종종 괴리가 생겼는데,

난 웃기지 않은데, '하하하! 정말 웃김!!! '이라는 자막 을 보고

'어? 왜 난 안 웃기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자막 걸린 티비를 보고 있는 제 자신을 유심히 관찰해 봤습니다.


그 효과는 대단해서, 제가 생각하지 않고 컨텐츠를 흡수하고 있더군요.

방송에서 자막으로 글자로 알려주는 대로 생각하고 느끼려고 애쓰면서요.


어쩌다 제 생각이나 느낌이 다르면,

어, 여기서는 웃어야 되는건가본데 난 왜 하나도 안웃기지? 라고 자기 의심을 시작하더군요.

꽤 놀랐습니다.




문자의 힘, 자막화된 콘텐츠의 힘은 실제로 생각보다 강합니다.

사회, 미디어 연구에서도 자막은 단순 보조가 아니라 ‘감정, 해석, 기억’에 개입하는 중요한 매개 변수이며

정보 처리 방식과 이해 구조를 실제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들이 있더군요.


유투브 화면에서 우리가 보는 자막은 단순히 '설명 텍스트'가 아니라,

감정·해석·판단이 모두 포함된 지시문(Instruction) 입니다.


영상 편집자는 대체로 이런 자막을 씁니다.

“충격!”

“말도 안 돼!”

“하하하! 완전 웃김”

“정답은 이것!”


이 자막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무엇을 결론 삼아야 하는지를 먼저 제시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외주(cognitive outsourcing)라고 부릅니다.

감정·판단·해석이라는 ‘내 머리의 작업’을 자막이 대신 해주는 거죠.


그리고 반복될수록,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따라가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듯 합니다.

그 결과, 콘텐츠는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느끼는 것’이 됩니다.


자막화된 콘텐츠가 사고를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순서를 앞질러 버리는 겁니다.


최고의 심리 계략가, 전략가들이 모인 곳은 정치세계죠.

그들은 세상의 모든 심리학을 실전으로 풀어내어 효과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고 지시문 형태의 콘텐츠 소비”는

정치 영역에서 거의 완벽한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이건 진실!”

“속지 마라!”

“저쪽은 악!, 이쪽은 정의!”

이라는 형태의 명령형 서사로 전달됩니다.


자막화된 콘텐츠에 익숙한 사람은

이런 명령형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보다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깁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누구는 '민주주의의 붕괴'를 보고,

누구는 '정의를 위한 투쟁'을 보는 극단의 분열이 생기는 거죠.


더욱 무서운 건,

이때 사람들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수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현실 프레임의 분리(Reality Frame Split)’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장면을 공유해도 현실 구조 자체가 다르게 인식되는 상태.


정치권은 이 상태를 너무 잘 이용합니다.


왜냐하면 분열된 군중은

논리보다 감정으로 움직이고,

감정은 훨씬 예측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선전·선동'에 취약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외부의 '적'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필요가 생깁니다.




결국 우리 시대의 극단적인 분열을 회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가장 첫번째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마음의 경계를 회복해야 할 것 같군요.

모든 정보 전달이 '의견'을 싣고 오는 현 언론보도가 싫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뢰할 만한 공적 기준 회복이요.

정부는, 정치인은, 공직자들은, 국가 모든 기관은

자신의 이익집단이나 카르텔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고 애쓴다. 라는 신뢰를 먼저 회복하는 것.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절실하게 필요해 보입니다.

감정과 정보를 잠시 분리해보는 여유,

그리고 내가 이미 믿는 것과 충돌하는 사실도 한번은 들여다보는 힘.


이 몇 가지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으로 돌아올 수 있고,

같은 현실 위에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꿈꿔봅니다...


#양극화

#극단주의

#자막의폐혜

#분열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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