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주 듣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도록 할게요"
입사 초기만 해도 프로덕트 매니저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보면 어떤 일을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입사했던 것 같은데, 그나마 돌이켜보니 내게 잘 맞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이름에 이끌려서 지원했던 것 같다. IT 기업에서 프로덕트를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멋져 보이기도 했고 또한 중요한 업무를 할 것이라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프로덕트 매니저의 하루는 어떨까? 평소에 개인적으로 가장 자주 받는 질문들이기도 한데, 오늘 간단히 이야기해볼까 한다.
프로덕트 매니저의 하루는 어떤가요?
프로덕트 매니저의 하루는 담당하는 제품이 어떤 상태 혹은 Product life cycle 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이미 출시된 제품을 운영하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의 하루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개발팀과 제품을 만든 뒤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한 나라에서 운영되던 제품을 다른 국가에서 론칭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프로덕트 매니저 역시 정말 다른 하루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정확히 어떤 제품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매니저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오늘은 일반적인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필자는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다. 작년 말부터 회사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하루 한잔씩 주기 시작했는데, 받으러 다녀오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어서 오전에는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사무실 층마다 있는 키친에서 아메리카노를 내려먹는데 깊은 맛을 내는 커피는 아니지만 먹을만하다. 허나 유럽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커피에 민감한 이탈리아 직원들은 항상 커피빈을 바꿔야 한다며 건의사항을 올린다. 커피를 가지고 자리로 온 다음 우선 일을 하기 위한 세팅을 해준다. 지정좌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퇴근할 때마다 짐을 정리해서 락커에 넣어야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다시 자리를 찾아 세팅을 해줘야 한다. 사실 매번 같은 장소에 앉아서 일을 하는 필자의 경우 은근히 귀찮다고 생각이 된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의 경우 빠르게 소통하기 위해서 마치 무언의 약속을 한 것처럼 비슷한 위치에서 근무를 한다. 업무를 위한 세팅이 완료되면 가장 먼저 시차가 다른 오피스에서 밤새 보내왔던 메일들을 본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바로 답장을 줘야 하는 메일들을 분류하고 답장한다. 성격 탓에 메일을 오랫동안 놔두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최대한 많은 이메일들을 해치우려고 노력한다.
메일 정리가 끝났으면 그날 혹은 그 주에 있는 미팅 스케줄들을 살펴보면서 스케줄 정리를 한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회의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개발, UX, 마케팅, 세일즈, QA, 법무 등 다양한 팀들과 협업을 이끌어내야 하는 직무이다 보니 당연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만 한다. 하지만 그만큼 프로덕트 매니저는 본인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필자는 월요일 오전에 팀원들과 만나 그들의 우선순위를 들어보고 피드백을 해준다. 아무래도 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중요한 업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부서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업무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 회의를 통해서 한주동안의 우선순위를 변경하는데 동의를 구한다. 물론 갑자기 급한 일이 발생하여 서로의 우선순위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본인의 우선순위를 한 주가 가기 전까지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우선순위를 잘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주 우선순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했을 때는 주어진 일을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워라밸를 무너뜨리며 모든 업무를 해내는 것이 뛰어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본인의 단점을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를 할 때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 덕분에 정해진 기한을 놓치거나 야근이 잦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꽤나 말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되려 굉장히 좋지 않은 단점으로 다가온다. 진정한 완벽주의자란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업무를 빠르게 끝내는 게 먼저인지 아니라면 완벽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야하는 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완벽주의자란 받은 모든 업무를 해내는 것이 아닌 본인의 컨디션을 파악해 가면서 회사에서 혹은 부서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에 올바른 양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순위가 정해졌으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담당하는 제품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서 하루가 많이 달라진다. 내가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있다면 고객스터디와 마켓리서치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새로운 제품에 대한 니즈는 어떤지, 본인이 구상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 고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물어본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UX 디자이너와 함께 전체적인 고객경험은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 건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유하고 토론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고객들을 만나서 내가 만들려고 하는 제품이 왜 중요하고 어떠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의 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 동기부여를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고객경험을 정리해 놓은 Mock-up을 완성하고 윗 디렉터나 동료들과 함께 리뷰를 하면서 그들의 의견도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고객들이 생각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데이터를 확인해 가면서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단순히 이 제품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객 그리고 아마존 모두) 생각만 해놓는 것이 아니라 이 가치를 수치화시켜 프로젝트의 "값어치"를 매기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물론 모든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생각해 놓은 제품의 값어치는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수치화를 시켜놓지 않으면 추후 제품을 만드는 과정 중 발생하는 우선순위 토론에서 내 프로젝트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값어치를 무조건 높게 잡는 것이 아닌 논리적인 가정과 데이터를 토대로 제품 가치의 수치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심은 요즘 와이프가 싸주는 맛있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것도 점심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환경이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점심은 본인이 먹고 싶은 시간에 먹어도 되고, 자리에서 먹든 팀원들과 같이 먹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같이 먹는 문화가 도입이 돼서 점심시간이 되면 팀원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찾아온다. 밀린 업무가 많은 경우에는 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능하면 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업무 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사무실에는 워낙 다양한 출신의 팀원들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주말이나 휴가 계획 혹은 각 국가의 정치 상황 역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점심시간을 통해서 부서원들과 많이 친해지고 모르는 부분도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사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동유럽 출신의 비즈니스 인텔리전트 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철인삼종경기를 준비하고 있고 출근하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온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큰 충격을 먹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수많은 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팀장이 되고 나서 회의는 더 많아졌는데 예전에는 내가 해야 하는 프로젝트만 담당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팀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만나서 1:1 회의를 진행하기도 하고, 팀원들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같이 회의에 참석해서 다른 부서와 협의를 이끄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처음부터 같이 근무했던 내 상사는 디렉터가 되었고, 나는 내 상사가 하던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중요한 진행상황이 있을 때는 디렉터와 그 위에 부사장에서 직접 보고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하지만 한 가지의 제품을 담당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라면 이와 같은 피플 매니징보다는 타 부서 동료들과 회의를 더 많이 진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프로덕트 매니저라고 하여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알 필요는 없다 (물론 자세히 알고 있다면 항상 플러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업무를 해내야 할 사람들이 해당 업무를 우선순위에 넣어놓은 것을 확인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있는지 끊임없이 대화하고 확인해야 한다. 특히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담당자들을 믿고 일을 맡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제품의 모습이 어떤지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 역시 좋은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는 지름길이다.
회의와 더불어 아마존의 프로덕트 매니저는 많은 글들을 작성한다. 임원들을 위한 분기보고를 작성할 수도 있고, 부서 디렉터를 위한 월간 보고를 작성할 수도 있다. 업무를 기획하고 있을 때는 Business requirement document (BRD)라는 서류를 작성하여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글을 보여주며 만들고 싶은 제품을 자세히 설명하는데도 활용한다. 만약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면 마케팅 팀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제품을 론칭할 것인지 고민해 보고 글을 적는다. 이 과정을 우리는 Go-to-market 전략을 짠다라고 말을 한다. 무조건 제품을 론칭하고 끝!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럽 국가에서 론칭을 할 것이라면 어디부터 론칭을 할 것인지, 제품에 가입이 필요하다면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 아마존 내에서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이 있는데 이 부분들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글로 남긴다. 이처럼 글을 쓰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좋은 글을 빠르게 쓰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글을 쓰고 다양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단순히 피드백을 읽어보는 게 아닌 다음 글을 적을 때 고쳐보려는 노력을 잊으면 안 된다.
이처럼 많은 글과 회의를 하고 나면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필자는 보통 6시에서 7시 사이에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급한 업무가 많은 때에는 조금 더 늦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이어도 팀원들이 팀장이 집에 가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에 꼭 남아서 해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최대한 일찍 퇴근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매니저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일찍 퇴근해 줬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전문가가 아닌 복잡한 부분에 대해서 함께 고민과 결정을 하고, 쉴 새 없이 글을 적다 보니 퇴근할 때가 되면 눈이 풀려 있는 경우가 있다 (코로나 시기 동안 운동 부족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혹시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이 없는지 급한 메일을 처리하지 않은 것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짐을 싼다.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사람들과 협업을 이끌어내는 하루. 그게 프로덕트 매니저의 하루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 내용은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