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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Dec 19. 2018

PPT가 없는 회사?

"아마존은 글 쓰는 회사예요"

어제 글을 적고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네요. 방금 확인해보니 총 63,014 72,502분이나 읽어주셨어요. 부족한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글 적도록 하겠습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글을 적는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아마존 스피어


아마존에는 PPT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존은 글을 쓰는 회사이다. 파워포인트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일이 없다. 그나마 사외 발표를 준비할 때 정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아마존 입사 후 퇴직할 때까지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일이 없다. 이러한 "No powerpoint" 문화는 처음 입사하고 가장 새롭게 다가웠던 점이다. 오히려 우리는 워드를 사용해서 글을 작성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글들을 작성하고 읽은 후에야 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마존 관련된 이야기 중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아마존은 효율성의 회사이다. 반복적인 일이 있다면 자동화를 고민해야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에는 "글"이 있다. 내가 아마존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상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만약 두 번 이상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답을 글로 남겨서 공유해라

같은 내용을 두 번 설명해야 한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글로 남겨서 공유해라. 심지어 그게 본인이든 (상사), 상사의 상사이든, 임원이든 상관하지 말고 URL만 보내줘라. 그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다. 그 당시 상사의 말은 참 신선했다. 물론 설명해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아마조니안들은 담당자들이 적어놓은 글들을 읽은 후 연락을 한다. 사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거기에서였다. 퇴근 후 링크드인을 통하여 많은 질문들을 받으면서, 차라리 어느 한 곳에 글을 적어 그분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고 해서 MBA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마존 제품들은 워드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마존 프라임, 알렉사, 킨들 등 다양한 제품들은 6장짜리 워드 파일에서 시작되었다. 아마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제일 먼저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작성하는 서류는 바로 PRFAQ. 이는 6장짜리 제품에 대한 글인데 PR과 FAQ를 합쳐놓은 글이다. 여기서 PR은 제품 설명이 아닌 고객들이 완성품을 받는다면 어떤 평가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적는 것이다. 제품을 발매하는 날, 어느 신문 기자가 되어 기사를 적는 것이다. 신제품이 아마존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 (value)를 주었는지, 어떤 불평 (pain point) 들을 개선해주었는지에 대하여 가상 인터뷰까지 작성을 해야 하는데, 이 글은 제품에 대한 확실한 비전 (vision)을 잡는 작업이다. 추후 제품을 만들다가도 언제든지 돌아와 우리가 가는 방향을 되집어보는 그런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FAQ는 말 그대로 이 제품에 대한 첫 설명을 듣는 사람들이 갖게 될 질문들과 답변들을 적어놓은 것들이다. 아마존의 글에서는 항상 FAQ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뻔한 질문들로 시간 낭비하기 아까우니 누가 봐도 물어볼 것과 같은 내용들을 적음으로 바로 깊이 있는 토론을 가능케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아마존 제품들은 PRFAQ가 있고, 개발 중인 제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타 부서에서도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 PRFAQ이다.


아마존의 회의 역시 워드에서 시작된다.

임원 회의이든 타 부서와의 미팅이든 우리는 항상 "doc"을 가지고 미팅을 시작한다. 간단한 구두 회의를 제외한 모든 회의에는 관련 서류가 준비되어 있고, 이를 회의 주관자가 사전에 공유한다. 미팅이 시작되면 약 10분의 시간을 갖고 오로지 글만 읽는다. 처음 내 글을 읽어야 하는 회의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 정적이 얼마나 긴장되는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왜 아마존은 PPT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걸까? 이제 조금 주관적인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글을 적으면 PPT를 작성할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다. 문법에는 문제가 없는지, 문장 간의 흐름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혹시라도 어려운 표현이 있어 이 글을 접하는 사람이 어려워하지는 않을지. 이와 같이 글에 대한 신경도 쓰지만 또한 이 글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적다 보니 제품의 단점이나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보충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아마존에서PRFAQ를 적다가 아이디어를 접은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글을 적는다는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한 더 깊은 고민과 확신을 주는 작업이다. 두 번째로 글에는 숨을 곳이 없다. 언변이 좋은 사람들에게 PPT는 더할 나위 없는 매개체이다. 그들은 때로는 논리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듣는 입장에서도 동일한데 생각을 정리하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발표하는 사람의 생각에 끌려가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덕분에 미팅이 끝난 후 반론하고자 하는 내용이 생각날 수도 있고, 나중에 제품이 완성된 후에 이게 말이 되지 않았구나 라며 후회하는 케이스들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크게 외향적인 사람 (extrovert)과 내향적인 사람 (introvert)으로 나뉘는데, 비즈니스 매거진들 (특히 Havard Business Review)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야 말로 조직이 건강한 토론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자주 언급한다. 



삼성, 아니 적어도 내가 근무했던 부서는 전형적인 PPT의 문화였다. 물론 주간보고를 하는 경우에 한글과 컴퓨터를 사용하긴 했지만 (워드로 바뀌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료는 PPT로 제작하고 임원 발표 역시 PPT를 통해서 진행되었다. 물론 PPT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경험을 해보니 글을 쓰는 문화가 생각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오늘 이 글을 적는 것이다. 물론 글에도 단점은 있다. 언변이 좋지 않은 사람처럼 글을 잘 적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많은 글을 적게 되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공대생들이 적응하기에는 쉽지 않다. 때로는 하루 종일 글을 적다가 퇴근하는 날도 있다. 그 덕분에 글을 읽거나 쓰는 게 피곤해져서 티비만 보다가 잠드는 날도 허다하다.


오늘은 삼성보다 타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국내 처음으로 "No powerpoint" 문화를 시작한 회사인데, 굳이 회사명은 언급하지 않겠다. 실리콘밸리의 사내 문화를 트렌디하고 빠르게 적용해나가던 이 회사는 필자가 생각해도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해당 문화를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제로 근무하시는 분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다. "뉴스에서 봤어요. 회사에서 더 이상 파워포인트를 사용 안 한다고 하던데 어떠세요?"라는 질문에 그분은 큰 한숨을 쉬셨다. 회사에서 파워포인트를 금지한 이유는 많은 직원들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업무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와 열을 맞추고, 폰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반려를 하는 케이스들을 없애기 위해서 아예 노 파워포인트 문화를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후였다. 글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은 상사들이 되려 워드를 사용해서 파워포인트와 같은 문서를 요청한 것이다. 말 그대로 혹을 떼려다가 하다 더 붙인 격이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약 4년 전이었는데, 현재 그 기업의 문화는 어떤지 궁금하다. 이를 보면서 느꼈던 것이 회사 문화를 변화하기 위해서는 윗사람의 마인드도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글을 쓰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얼마나 칼날 같은 분석할 수 있느냐이다. 예전에 유럽/아시아를 담당하는 임원분과 첫 분기 보고를 하고 나서 소름 끼친 적이 있었다. 약 25장 정도 되는 문서를 30분 동안 읽은 후 그에게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수많은 국가들과 수많은 제품들의 현 상황 보고를 받고 그는 질문들을 나열했는데, 수 많은 질문 중 가장 중요한 질문들로 추리고 우선순위를 내려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질문들이 너무 날카로워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베일 것 같았다. 제품들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었고 수준 높은 질문들 덕분에 담당자들도 식은 땀을 흘리며 "아 그 부분은 생각을 하지 못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요즘 국내 많은 기업들이 PPT를 없애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윗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내 정책을 바꾼다고 문화가 무조건 변하지 않는다. 모두가 글을 자주 읽고 핵심 내용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야만 회사가 전체적으로 글을 쓰는 문화를 포용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이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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