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신뢰 시스템
운전을 하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했다.
여름휴가로 제천을 들렀다가 부산을 갔다 오는 긴 장거리 여행길. 제천과 부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처음 가는 곳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헤매는 것 없이 잘 찾아다닐 수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어떤 곳은 지도로는 도저히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했는데, 운전만 집중해도 될 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받았다.
일주일 내내 운전하는 피곤함보다는 좋은 경험이었나 보다.
그러다 문득 부산의 어느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지켜보게 되었다. 좌회전하는 차들, 옆 차선을 쌩하니 지나가는 차, 그리고 신호등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운전이란 신뢰 기반의 시스템이다
신호, 차선, 표지판 등 수많은 규칙들이 도로 위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차들과 운전 스타일들이 이 도로에 나오면 각양각색의 스타일을 만든다. 빨리, 천천히, 과감하게, 조심조심 등 이 많은 변수들이 문제없이 흘러가는 건 단지 교통과 관련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은 '신뢰' 덕분이다. 운전을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보통 신호를 쳐다본다고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뒷 유리에 '초보운전'이라고 붙인 차들이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쳐갈 것이다. 이렇게 운전을 시작하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배려심이라는 흔치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점점 경험치가 쌓이면 운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앞차 달리는 속도를 보니 시속 40~50km 정도 속도로 달릴 거라는 믿음, 그리고 깜빡이를 넣어서 들어가고 싶다는 표시를 미리 넣어주면 양보해 줄 거라는 믿음, 이런 믿음이 더해져야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신뢰를 깨뜨리는 차들을 종종 발견한다. 깜빡이 없이 차선을 들어오는 차, 갑자기 뒤에서 맹렬하게 쫓아오는 차, 좌회전 차선이 아닌 옆 차선에서 바로 좌회전을 하는 차 등 이런 상황에 맞닥드리다보면 규칙과 이를 지키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귀중해진다.
규율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율.
목적지를 가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가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는 관계. 이런 신뢰 기반의 시스템도 결국은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문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