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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영웅의 귀환: 스토아와 스트레이 키즈

by 김태라
나는 거인이다
저열한 것을 쓸어버리기
낮은 세계를 부숴버리기
I'm a giant
Brushing off the lows
Crushing worlds below

―Stray Kids, <Giant>


영웅은 왜 귀환하는가?

동굴 밖의 빛을 본 자는 왜 어둠의 동굴로 돌아가는가?

깨달음의 지복 속에 완성된 자가 왜 낮은 세상으로 내려가야 하는가?


어제의 <삶과 철학> 수업 주제였다. 이에 대한 대답을 나는 ‘표현’이라 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타인을 깨우기 위해 귀환하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바깥’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저’ 동굴 속은 영원한 어둠이다. 왜? 바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나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나의 세계만이 빛으로 채워진다. 존재하는 것은 나뿐이고 나는 빛이기 때문이다. 나의 세계는 언제나 극락이고 왕국이다. 왜? 내가 왕이기 때문이다. 왕이 왕국을 낳는 것이지 왕국이 왕을 낳는 게 아니다.


왕이 귀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빛의 발산이다. 일종의 영토 확장이다. 태양은 자신의 빛과 에너지를 감출 수 없다. 발산하고 확장되는 것이 빛의 존재 방식이다. 따라서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무욕의 디오게네스와 “두려움을 정복한 자가 세상을 정복한다”는 욕망의 화신 알렉산더 대왕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된다. 태양은 ‘세상을 위해’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로 존재할 뿐이다. 그 존재가 세상에 빛이 되는 것이다. 빛은 비물질적 에너지이기에 그 ‘영토 확장’이 타자 정복이 아닌 만유 살림이 된다.


나는 나를 표현한다. 내부의 것은 외적 구현으로 완성된다. 완성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버려진다는 것이다.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발산/표현되면 유(有)가 되는데 유는 무로 돌아간다. 결국 무가 되는 것, 버리기, 비우기(空)가 행위의 목적이다. 영토가 확장됐다는 것은 그만큼을 내 안에서 비웠다는 뜻이다. 빈(free) 것은 자유(free)다. 비움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 놓여나는 것. 놓아버림. Letting Go. 가게 하기.


가는 것을 붙잡으려 하는 데서 정념이 발생한다. 부동심(不動心)을 주장한 스토아학파는 정념(감정)을 악으로 보았다. 나는 철저한 스토아주의자인데 기질적으로는 감정에 동하는 인간이다. 직과 공 능력이 크게 발달한 정 매니페스터이다. 이 감(感)이라는 것, 느낌, feeling은 존재를 살아있게 한다. 생명을 흐르게 한다. ‘感’이라는 단어는 ‘모조리/다함(咸)’과 ‘마음(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이란 ‘마음을 모조리 다하는’ 것이다. 사랑이다. 쏟아붓는 것, 빛의 발산이다.


쏟아붓고 나면 내부가 비워진다. 비워졌으니 흔들릴 것이 없다. 스토아적 부동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를 형용하는 말로 부동심의 원어인 ‘아파테이아(apatheia)’는 부족하다. ‘apatheia’는 ‘파토스(정념) 없음’이란 뜻인데, 공(空)의 의식을 통해 득하는 부동의 내면은 아파테이아보다 ‘휘포메네인(hupomenein)’에 가깝다. 종교 용어인 휘포메네인은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의 중심에 머무는 것이다. 그 어떤 외부의 것도, 어떤 타자도, 어떤 감정도 침입할 수 없는 존재의 핵, 그것에 정박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 매니페스터는 (사랑)을 완전히 비움(표현함)으로써 결국 무감정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무감정적 사랑이 아가페(agape)이다. 아가페는 자기애의 극치이다. 자기를 극단적으로 사랑하면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다. 나는 만유, 온 우주가 된다. 우주는 space, 빈 것(空)이다.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 이는 사랑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 신이 정박한 상태이며 절대평정의 아파테이아이자 휘포메네인이다.


이런 존재 상태로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를 들으며 아침 산책을 한다. 파워풀한 에너지 속에서 나의 세계, 빛의 왕국을 누비며 누린다. 스트레이 키즈가 노래하는 “쓸어버리고 부숴버릴” 저열한 것, 낮은 세계는 거인의 왕국엔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은 빛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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