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형 E가 된 I엄마
나는 MBTI I, 내향형 인간이다.
내향인들끼리 있을 땐 외향인이 되기에 100% 내향은 아니지만,
외출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에,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에는 즐겁지만 모임이 끝나면 늘 방전되는..
그런 내가 틈만 나면 집 밖을 나가고 싶어졌다.
육아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육아 겨우 11개월 차인데 벌써)
출산 준비물을 빼곡히 적어두고 하나 둘 마련할 때에도
디럭스, 절충형 유모차는 마련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작은 아기를 데리고 나갈 마음도 용기도 없었으므로
실제로 나는 아기가 태어나고 외출을 많이 안 했다.
안 했다기보단.. 못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아기와 함께 한다는 건
'예측 불가한 일'의 연속이었다.
계획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결혼 전에도 삶은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닌 걸 알지만
예측 가능해야 마음이 편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육아란,
예측 불가함의 끝...
한 번 외출을 하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몇 시에 먹을 때니까 그때 먹이고 소화 좀 시키고
옷 갈아입혀서..
옷은 뭘 입히지? 얇은 옷 여러 겹? 두꺼운 패딩?
실내에 들어가서 아기가 더워하면 어떡하지?
아기띠를 풀어서 옷을 벗기고 다시 안아야 하는데
아기띠를 풀면 아기를 어디에 두지?
아기는 얇게 입히고 담요를 두르고 내 외투를 두껍게 입을까?
아기가 울면 바로 쪽쪽이 물려야 하는데
쪽쪽이가 더러워지면 어떡하지?
쪽쪽이 5개 챙겨가야겠다.
만약에 아기가 토를 한다면?
손수건으로? 물티슈로?
아기가 내 옷에 토를 한다면?
아기가 실내에서 너무 울면 어떡하지?
바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집에 와야 하나?
카시트가 없는데 택시를 어떻게 타지?
걸어와야 하나?
.
.
.
거의 외출이 불가하다고 보면 된다.
디럭스, 절충형 유모차 나에겐 정말로 필요 없던 것.
첫 외출은 집 근처 카페에서
조리원 동기와 그 아기를 함께 만난 건데
생각보다 아기는 잘 자 주었다.
집 가는 길에 폭우가 쏟아져 이게 비인지 내 땀인지 모를 만큼 긴장하고 귀가했지만 ㅎㅎ
그래도 하늘이 나를 영 버리진 않은 것 같았던 게
조리원에서, 그리고 당근거래 하며 알게 된 또래의 아기 엄마들이 모두 E였다!
종종 용감하게 외출하는 그녀들이 부러우면서
그러지 못한 내가 나약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법!
각성하고 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아기랑 외출하는 게 너무 무서워.. 외출 연습 스파르타로 같이 도와주라'
고맙게도 나와 같은 초보 엄마인 그녀들이 흔쾌히 손을 잡아줬다.
외출이 두려운 날 위해 그 작은 아기를 태워 매번 우리 집으로 와주기도 하고,
잔뜩 쫄아서 카페에 도착한 나를 본인도 긴장될 텐데 천천히 하라며 진정시켜 주고,
자신의 힘듦도 선뜻 공유해 주고,
자꾸만 나오라고 부추겨도 주었다.
덕분에, 정말로 덕분에
외출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대망의 6개월,
드디어 준비해 뒀던 휴대용 유모차를 태울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역시 어렵다.
ㅋㅋㅋㅋ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서도 헛웃음이 나는데,
아기띠를 하고 남편과 산책하며 미리 '유모차 산책로'를 구상했다.
'유모차 산책로'라 함은
높은 턱이 없는 곳,
바닥에 움푹 파인 곳이 없는 곳,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곳,
좌우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곳(유모차 핸들링이 어려울까봐),
위아래 경사 역시 가파르지 않은 곳
등이 있다.
아기가 평생 잘 닦인 길로만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유모차 산책로를 잘 알아두고
몇 번 나가봤을 때쯤
봄이 왔다.
호시탐탐 미세먼지 좋은 날만 노렸다.
산책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유모차 산책 연습하려고.
나도 참 나다..^^
집 앞 천을 몇 번이나 나갔는지 모른다.
자주 나가려는 다짐 첫 번째로
유모차도 태우기 쉽게
중문 열자마자 유모차 시트를 두었다.
정말 옷 입히고 문 열고 앉히면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절대 다른 길로 새지도 않았다.
새어 봐야 천으로 가는 길에 있는 슈퍼 정도?
질리도록 천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후로 용기를 넘어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활동 반경을 넓히다가
이제는 유모차 끌고 택시도 탄다.
혼자 아기랑 서울도 다녀왔다.
이렇게 I 엄마의 어려움과 노력들을 되짚어가며 적다 보니
나 녀석 제법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한여름이라
면허가 없는 나는 아기와의 외출이 어렵다.
그래서 남편 쉬는 날에 시도 때도 없이 나가자고 한다.
어머님이 아기 자주 데리고 나가다 보면
'아기가 콧바람이 들어 맨날 나가자고 한다' 하셨는데
콧바람이 든 건 내 쪽 인 것 같다.
아기가 걷게 되면 같이 갈 수 있는 새로운 곳들도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까..
교훈적 마무리로 끝내야 할 것 만 같은..
아기 키우다 보면 부모가 큰다는데
참 맞는 말이다.
유난히 나의 부족함이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육아.
그래서 좌절도 하고 내가 미울 때도 많지만
별 수 있나? 아기를 키워야 하니 하게 된다.
외출과 집콕을 모두 좋아하게 된
I엄마의 기록이었다!
* 6개월에 유모차 처음 태운 우리 아기의 부작용
: 11개월인 지금도 유모차에서 거의 못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