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피터가 출근길의 나에게 건네는 말

—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황정민 배우의 목소리로 듣고

by 생각의 여백
“나는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출구 하나면 충분했다.”


1. 자유가 아니라, 출구가 필요했다
이어폰 너머 배우 황정민의 목소리는 매끈한 낭독보다 ‘눌린 숨’에 가까웠다.
원숭이 피터가 학술원 앞에서 내뱉는 고백. 그건 낯선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늘 거창한 자유를 꿈꾼다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찾는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당장 오늘을 버티게 해 줄 작은 숨구멍, 즉 ‘출구’다.
퇴근 후 맥주 한 잔, 주말의 짧은 여행.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 부르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한 탈출구일 뿐이다.

2. 살아남기 위한 흉내
피터는 인간을 배운다.
인간처럼 침을 뱉고, 술을 마시는 법을 익히고, “안녕”이라 말하며 인간 사회로 스며든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어른의 말투를 배우고, 감정을 숨기는 법을 익히며 어느 순간 그 세계의 일원이 된다.
흉내 내다 보니 그렇게 된 걸까, 되고 싶어서 흉내 낸 걸까.
원치 않는 독주를 억지로 삼키며 살아남으려 애쓰는 피터의 모습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며 ‘사회화’라 믿고 사는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
그건 적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나를 조금씩 포기하는 일이었다.

3. 샤워기 아래에서 마주하는 질문
그럼에도 완전히 길들여지지는 않는다.
출근 전 샤워기 아래 서 있을 때,
혹은 불 꺼진 방 안의 정적 속에서 문득 질문이 스친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에게 출구는 도망치는 곳이 아니다.
나로 돌아가는 시간, 즉 내 안의 호기심을 따라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다.
피터의 보고서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인간을 흉내 내는 중인가.
어쩌면 그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유럽 화풍으로 AI(GPT)가 묘사한 ‘인간을 배우는 원숭이,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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