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리 미니멀리스트가 또...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세요.
그 반대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니까.
살아볼수록 알게 되는 건데, 미니멀리즘은 스포츠에 가깝다. 우선, 기초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 진이 빠지고 만사가 귀찮은 날에는 옷 한 벌 옷걸이에 걸어 둘 수가 없다. 원룸은 금세 쓰레기장이 되어있다. 다음으론 멘탈. 마음이 허전하면 이것저것 사거나 찔러보거나 배워보고 싶다. 읽지도 않을 책은 왜 사 왔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한번 풀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다이어트처럼 한 번에 훅. 다이어트는 살이라도 빠지지만 이건 뭐 지킨다고 해서 누가 알아봐 주지도 않는다.
입으로만 다이어트하는 사람을 거친 말로, '아가리 다이어터’라고 하더라. 그와 다르지 않게, '아가리 미니멀리스트’인 나의 짠내 나는 생활기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건 얼마 전에 내가 미니멀리즘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미니멀리즘으로 글 써서 돈까지 벌었던 고수께서 무슨 다시 시작이냐고 묻더라. 그러게, 내게 칼럼으로 고료까지 지급해 준 잡지사에는 미안하고 창피한 일이지만, 한동안 미니멀리즘을 잠시 끊고 살았다.
끊었다니까 술, 담배처럼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의식적으로 멈춘 것 같지만, 사실 막사는 게 너무 편해서 잠시 그렇게 살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니멀리즘은 거의 스포츠다. 모든 게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소비와 풍족의 시대. 단조로워지기는 가끔씩 복잡해지기보다 어렵다. 광고와 PR의 범람 속에서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내기는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격언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나 붙어있을 법한 이 말은 미니멀리즘을 거칠지만 잘 요약해준다. 미니멀리즘을 계속 유지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물으신다면, "생각 좀 하면서 살기”는 과연 쉽던가요? 라고 답변하고 싶다. 거짓말과 위선과 잘난체로 도배하고 살다가 갑자기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성공보다 실패가 훨씬 흔하다.
방금 나는 흔하다고 썼다. 포인트는 거기 있다. 실패는 흔할 뿐이지, 그깟 미니멀리즘 한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버리거나 내 삶은 바닥이거나 ... 뭐 그렇지는 않다. 실패는 흔하고 다시 도전하는 것도 딱 실패의 횟수만큼이나 흔하다는 걸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 잠시 정신 팔려 살다보니, 집은 어지럽고 지갑은 비고 삶은 꽉 막혔다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게 한심하다면, 방법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게 필요하지 않은 걸 버리고 또 버리는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매일매일을 초짜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도 좋다. 아무튼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니까. 세상 잘 산다는 건 그렇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가리 미니멀리스트는 또 쓴다. 때려치우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해서 난 지금 미니멀리즘 5회차쯤 되었을라나. 아무튼 나는 지금 가볍게 산다. 두 어깨가 어제보다 더 가볍다고 느껴지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엄격 근엄 진지한 문장을 다시 떠올려보자. 한 문장만 더 보태면 좋을 것 같아 문장을 고치며 마무리 한다.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더라도,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마음을 다 잡으면 된다. 설령 그것조차 실패하더라도, 한번 더.”
오늘로 미니멀리즘 오수생입니다.
삽화 출처: 다음 웹툰 미생 91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