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정말 다사다난했네요.
1.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청년"
나는 놀라울 정도로 취업 준비가 되지 않은 취업 준비생이었다. 600점대의 토익과 초등학교 때 취득한 워드프로세서 2급, 1종 보통 운전면허가 달랑 있었고, 그 흔한 컴활이나 MOS도 없었다. 학점도 3.4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1학년 때는 대학생이 되었으니 놀자를 외치며 F 두 개를 포함 무려 2.1이라는 엄청난 학점을 취득했다. 2학년 때는 역전의 복학생으로서 나름 열심히 해서 성적 장학금도 받았으나, 3~4학년 때 학생회를 시작하면서 다시 성적은 나락으로 가기 시작했다. 특히 한창 자소서 쓰고 면접 준비를 해야 할 4학년 2학기 때는 학생회 선거관리위원장까지 맡으면서 학생회에 온몸을 불살랐다.
2. "방황이라 쓰고 고통이라 읽는다"
그때 즈음 친하게 지내는 많은 학생회 선배들이 영업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하여 졸업 후 약 2달간 백수 생활을 하고 얻은 첫 직장은 중소 제약회사 영업직이었다. 3개월 퇴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사무실에서 아침저녁으로 들어야 하는 쌍욕, 비 현실적인 영업 목표, 매일같이 개인 신용카드로 가짜 결제 내역을 만들고, 그걸 회사에 영업 비용으로 청구한 후 빵 봉지 가장 아래 숨겨서 의사에게 바치는 현금.
두 번째 회사는 직원이 5~6명 남짓 있는 무역회사였다. 사실 무역회사는 아니고, 무역회사 대표가 식품 공장(전분)을 인수하여 팀을 세팅하는데 그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팀원은 세 명. 생산본부장(나), 물류본부장(2살 형), 사무 본부장(2살 누나).
출근하면 하루 종일 전분을 물에 담근 후 말리는 작업을 하고, 기계에 넣은 뒤 포대에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자격증 따위 없었지만 지게차도 직접 운전해서 트럭에 물류를 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정말 위험하다. 살아서 퇴사한 게 다행일 정도... 매일매일 전분 가루를 뒤집어썼고 코딱지를 파면 하얀 코딱지가 나왔다. 기침도 이때 많이 늘었다.
하루는 장염에 걸려서 하루 종일 설사하고 열이 났다. 20kg이 넘는 포대를 팔레트에 층층이 쌓는 게 주요 업무인데, 장염에 걸렸으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차마 조퇴한다는 말은 못 하고 병원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대표는 '네가 뭔데 병원을 마음대로 가냐 마냐를 나에게 통보하냐 이 새끼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 통보도 없이 그대로 집으로 갔다.
3. "이렇게 뜬금없이?"
이쯤 되니 정말 답이 없었다. 생각 정리를 위해 혼자서 며칠 여행도 다니고 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웹툰을 보는데, 질풍기획이라는 웹툰이 눈에 띄었다. 광고 회사 이야기였다(물론 현실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정주행을 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웹툰이 "광고"라는 영감을 내게 주었다. 내 비록 이문봉 교수님의 온라인 마케팅 수업은 C+를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광고에 관심은 제법 많았다. 물론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고, 광고를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글쓰기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 간간히 영화 후기 등을 썼고 중학교 때는 인터넷에 판타지 소설을 연재하다 말다 한 적도 있었다. 부산에 광고 회사가 있나? 찾아보는 데 있을 리가... 지금도 부산은 광고 마케팅 업계의 불모지다. 사실 이때도 관심만 슬쩍 가졌을 뿐 본격적으로 도전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스스로 좌절한 상태였다.
그 시절은 학교 5년 선배가 신혼집을 우리 집 근처로 구하면서 한번씩 술을 마시던 시기였다(공교롭게도 이 선배도 학생회 선배다). 몰랐는데 그 선배가 다니던 회사가 규모가 제법 있는 온라인 광고 회사였고,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부산 지사도 제법 크게 확장 중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뜬금없이 웹툰에서 힌트를 얻고, 술 마시러 놀러 간 선배 집에서 입사 지원할만한 광고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되다니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다. 마침 그때 부산 지사에 인력을 한창 채용하던 시기였고, 답도 없는 20대 중반 사회 초년병 시절을 보내던 나는 이 회사에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도전해보기로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