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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Oct 13. 2021

2. 광고업계, 우당탕탕 도전!-2

돌이켜보니 정말 다사다난했네요

**1부의 내용 : https://brunch.co.kr/@taimiz11/47


 회사의 광고영업(AE) 채용공고를 확인한 나는 야심 차게 노트북을 켜고 채용 페이지에 들어갔다. 인적사항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신중히 기입해 나갔다. 


 학점을 입력하고 자격증 및 활동사항을 입력할 때의 그 씁쓸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교내 캠퍼스 정화 운동" 이런 거 말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나의 능력을 인증해줬다고 할만한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학이나 자격증 등등.


 그런 항목들은 참 적기 편하다. 그냥 자격증 이름 몇 글자 적고 "취득" 혹은 옆에 점수를 적으면 되니까. 하지만 난 아니었다. 물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놀며 보낸 것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주관하는 해피무브 단원으로 중국에 봉사활동도 다녀왔고, 학과 동아리 대표로 학술제에 발표자로 나가 대상도 받아봤다. 


 단과대학 부학생회장을 할 때는 학생회 중점 사업으로 "공부는 학생의 본분"을 외치며 단과대학 사이즈, 학장상으로 진행되던 교내 학술제를 대학교 전체 규모, 총장상으로 볼륨업을 시킨 경험도 있었다. 


 토익 8~900점대의 대학생들은 널려 있어도 교수님, 교직원들과 우당탕탕 부딪히며 이런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을 가진 대학생이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나름 나쁘지 않았네? 아무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연들은 사연일 뿐 스펙이 될 수 없었다. 구구절절 적어야 했고 공신력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그 회사의 자기소개서 분량은 무려 8,000자에 달했다.


 정말 충격적인 분량이다. 보통 4~5개 항목에 각 500자 제한으로 2,000자~2,500자 정도가 되는데, 광고회사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각 항목당 2,000자 제한으로 총 8,000자의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었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 같았으면 자기소개서 글자 수 제한을 보고 기겁을 했을 테지만, 나에겐 그 여유로운 글자 수 제한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자 마지막 기회처럼 보였다. 


 빈칸 투성이인 이력서를 과감히 뒤로하고 자기소개서 작성에 매달렸다. 이틀 정도를 꼬박 매달렸던 것 같다. 거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모든 항목 8,000자를 가득 채웠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자소서를 꽉꽉 눌러쓴다고 능사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나의 경험과 강점들을 조금이라도 어필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해서 정말 혼을 갈아 넣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다행히도 서류 전형은 통과했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는데, 신평이라는 곳에 살았었다. 그 당시 도시철도 1호선 종점이었다(지금은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연장되었다). 회사의 위치는 해운대구 센텀시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 하루에 출퇴근으로만 3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극악의 조건.


 회사 채용 정보를 알려준 형님 출근길에 차를 얻어 타고 센텀시티까지 갔다. 회사 1층에는 스타벅스가 있어서, 거기서 신문을 읽고 나름의 면접 시뮬레이션을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지루하고 긴장되는 대기의 시간이 지나가고, 면접을 3:3으로 보았다. 지원자 세명과 국장님, 기획부서장님, 영업부서장님. 나는 취업준비 과정에서 총 스무 번 정도 면접을 본 것 같다. 이 광고대행사 면접은 내가 태어나서 본 면접 중 가장 질문을 받지 못한 면접일 것이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인사팀에서 합격시킨 인원들 면접을 보는데, 사람도 처음 보고 이력서도 처음 본다. 면접관도 사람인지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이력서 항목을 보고 질문하지, 자기소개서를 구체적으로 읽진 않았을 것이다.


 이력서가 비어있었기 때문일까. 한참 동안 질문을 받지 못한 나에게 국장님께서 드디어 처음으로 질문을 해주셨다. 예의상 한다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두한 씨는 이력서를 보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거의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 어떤 걸 하셨나요?"


 "국장님, 제 이력서만 보시면 학교를 다니며 한 게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겨 자기소개서를 봐주시겠습니까. 합격 불합격 여부, 점수로 대변되는 스펙은 비록 부족할지라도, 봉사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일반적인 스펙을 가진 지원자들에게는 없는 경험이 있습니다. 광고는 그 어떤 업종보다 가보지 못한 길을 걸을 줄 아는 용기와 창의력이 필요한 업종이고, 영업은 그 어떤 직군보다 끈기와 인내심, 목표를 이루어내는 추진력이 필요합니다. 자격증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저의 경험들을 활용해서 회사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대략 이런 식으로 답변한 기억이 난다. 사실 정말 억지 답변이다. 면접은 사실 첫인상과 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스펙을 갖고 비슷한 답변을 하는 지원자들이 지겨워질 찰나 내가 뜬금없이 저런 패기 넘치는 대답을 해서 신선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추가로 난 20대 중반에 스피치 능력이 정말 좋았다... 고 생각한다(물론 지금은 망했다. 백치 아다다). 학술제에 발표자로 나서서 대상을 수상하고, 그 해 바로 학생회장에 출마하였으며 그다음 해에는 단과대학 부학생회장으로 출마했으니까. 물론 결과는 모두 당선.


 남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말하는 게 학교생활의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아르바이트도 관광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관광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했었구나. 아무튼 나의 대답이 신선했을 수도 있고, 그 당시 나름 절정이던 스피치 능력을 좋게 평가해주셨을지도 모르겠다.


 면접관 분들과 연락이 끊긴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합격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한 번쯤 물어볼 걸 그랬네. 아무튼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는 일주일 후 최종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2015년 3월. 졸업한 지 딱 1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끝(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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