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없는 홍철팀 같이 웃기다. 하지만 그때는 슬펐다.
**2015년도의 일이라 지금은 많이 다를겁니다.
교통 체증과 전혀 관계없이, 순수 대중교통 이용 시간 1시간 30분(신평->센텀시티)를 뚫고 출근을 한다. 하루에 3시간을 길에 버리면서 살던 시절.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분들 존경합니다.
출근을 하면 각 팀을 돌면서 인사를 하고, 제일 먼저 뉴스 클리핑을 준비한다. 아침 조회에 앞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 각자 뉴스를 준비해서 팀원들과 브리핑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하는 팀도 있고 하지 않는 팀도 있었지만 난 뉴스 클리핑 시간이 너무 좋았다. 어떤 회사에 가게 되든 내가 관리자가 되면 아침 뉴스 클리핑은 꼭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그꿈이 실현될 확률은 0%에 수렴하고 있지만.
뉴스 클리핑을 하면서 간단히 잡담을 나누고 팀 내 주요 광고주 특이사항을 팀원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아침 조회 끝.
조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AE의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당시 우리 팀의 주요 광고주로는 여성의류쇼핑몰 몇개와 닭가슴살 광고주가 있었다(실제 브랜드명을 밝힐 순 없지만, 두 업체 모두 지금은 업계 탑급으로 성장했다).
수습사원의 첫 업무는 이 광고주들의 전날 광고 데이터를 취합해서 일간보고서 혹은 주간보고서를 발송하는 것이었다.
지겨운 숫자 베껴넣기 끝에 일간/주간보고서 코멘트를 작성하여 사수에게 공유하고 컨펌을 받아 발송한다. 이 업무까지 끝나면 대략 10시 30분이나 11시 정도가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지금도 작은 규모의 광고대행사들은 콜 영업을 하는걸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2015년)는 콜 영업의 시대가 거의 저물어가는 끝물 시대였다.
당시 팀장님이나 선배님들이 얘기하는 라떼처럼 하루 100콜 이렇게 막 하지는 않았지만, 매출이 안좋고 눈치보이고 그럴땐 90콜 정도는 했었다.
영업은 거절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클라이언트를 빚어 만드는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클라이언트를 찾아가는 일이다. 어딘가 있다고 끊임없이 자기 세뇌를 하면서 말이다.
난 영업을 정말 못했다. 앞 글에서 내가 그 당시 스피치 능력이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발표문이나 연설문을 악센트 빡빡 줘가며 외워서 말하는 것을 잘했다는 것이지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화는 정말 형편 없었다.
말 그대로 백치 아다다. 오히려 "필요없어요~"하고 끊는 콜드콜이 더 고마웠고 전화를 받은 광고주가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머리가 하얘지고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면서 시야가 흑백으로 변했다. 고통스러웠다.
그 당시 영업 DB를 보면 내가 적어놓은 재밌는 코멘트들이 정말 많다.
"지금이라도 조선소가서 기술 배울까."
"바퀴벌레 취급받는 일을 계속 해야 하나."
"최선을 다해 끊는다."
"전화기를 집어던지듯이 끊는다."
"담당자 휴가갔어요~ 100년 뒤에 와요~"
이 코멘트들은 정말 기발해서 7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재밌다. 그래서 난 한번씩 심심하거나 삶의 동기부여가 필요할때 이 코멘트들을 읽곤 한다.
아무튼 이렇게 18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 성과는 없고 마케팅 담당자와 연결되는 건이 하나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진이 빠진다.
18시 30분이 되면 석회를 한다. 그날 있었던 주요 업무들을 공유하고, 내일 업무에 대해 간단히 논의하고 인사와 함께 해산.
그리고 업무보고 작성의 시간. 주요 광고주 특이 건과 영업 일지 등을 간략히 정리해서 보고한다. 석회 후 바로 업무보고를 작성해서 발송하면 대충 19시 정도가 된다.
그럼 퇴근... 이면 좋겠지만, 퇴근을 할수 없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영업을 했기 때문에 팀의 기존 광고주에 대한 밀린 업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추가라던가 광고문구 수정, 성과의 개선을 위한 기타 제안 등.
지금 보면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이긴 하다. 업무시간에는 영업을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업무 이후에 기존 광고주에 대한 업무를 진행한다.
그 당시에는 팀이 커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기존 광고주에 대한 케어보다는 공격적인 영업이 더 중요한 시기이긴 했다.
월 초 보고서 작성 기간일 경우 야근은 12시 1시를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고, 보고서 기간이 아닌 경우에는 보통 21시에서 22시 정도 퇴근을 했다.
글 서두에 얘기했듯이 출퇴근 거리는 1시간 30분 거리였다. 11시 이전에 마쳐야만 서면에서 막차를 놓치지 않고 환승할 수 있어서, 막차를 타기 위해 뛴 기억도 많다. 입사 초반 1년에는 퇴근 후 부모님이 깨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많이 없었다.
퇴근길 지하철 혹은 심야버스에서는 다음날 영업 무기로 쓸 광고상품의 소개서를 출력해서 읽다가 졸다가 읽다가 졸다가 하면서 집에 갔다.
한번씩 너무 힘든 날에는 "조선소 취업" / "기술전문학원"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서 보면서 집에 가곤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