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거북 Mar 16. 2022

5. 잊지못할 나의 첫 관리자

 첫 직장에서 만나는 관리자는 중요하다. 앞으로 직장생활에는 물론, 삶에 쭉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같은 느낌이다. 


 회사에 악명 높은 팀장님이 계셨다. 체육대학 출신에 샤우팅도 자주 친다고 하더라. 업무 강도도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신입사원들은 그 팀은 피하고 싶어 덜덜 떨었다.


 당시 팀 배치 기준에는 MBTI도 있었다. 지금 밈처럼 쓰이는 그거 맞다. 7년 전 기업들은 사람을 판단하기에 주효하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그 팀장님과 상극인 MBTI가 나왔다. 아, 저 팀에 갈 일은 없겠구나.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자기소개 브리핑이 마음에 드셨다는 그 팀장님은 짬으로 다른 팀장들을 누르고 나를 데리고 갔다.


 체대 출신답게 규율과 규칙을 매우 중시하셨다. 로마 군대와 같은 느낌이었다. 출근 시간은 09시 30분이었지만 반드시 09시 20분 안에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보통 10분 정도 일찍 오는게 강제는 아니고 권유 사항이다. 그 분 아래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어길 경우 팀원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돌려야 했다. 점심시간은 13시 까지였는데, 마찬가지로 12시 50분에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아무리 바빠도 얼굴을 맞대고 조회, 석회를 했다. 업무 회의 외에도 뉴스 브리핑 및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잡담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규제(?)들이 있었다. 의자에 외투 걸기 금지, 복장 규정 철저히, 회사 내 슬리퍼 금지, 전화 통화 시 목소리는 크게.


 팀훈이 "신발 정리를 잘하자" 였다. 업무와 실적에 앞서 근무 태도와 기본을 그토록 중시하셨다.


 이런 면모를 회사 직원들 대부분이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좋았다. 다른 팀은 철저히 영업 실적을 우선시했다. 영업 조직이니 어쩔수 없지. 대신 기본적인 부분이 조금 프리했다. 신발 규제나 겉옷 걸기 규제 같은건 상상할수 없었다.


 영업 실적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하라고만 하셨다. 쪼은다고 되는게 아니라 꾸준히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다. 대신 직장 생활의 기본에 대해서 항상 강조하셨고, 실적이 없어 불안에 떨어도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해라."라는 말씀만 하셨다. 이런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1년을 못 버티고 퇴사했을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도 신경을 많이 쓰셨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그 당시 14살 노견을 기르고 있었다. 한달에 두번 정도는 강아지의 안부를 물어보실 정도로 팀원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부서장으로 승진하시고 나서도 팀에 거리낌없이 놀러오셨다. 커피쏘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큰 실수를 저질러 대형 클레임이 발생했다. 멘탈이 터져서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팀에 더 이상 민폐를 끼치기 싫다고 했다. 팀장님은 퇴근길에 날 차에 태우더니 "니가 나가는게 팀에 민폐다 새끼야" 하시며 십수병의 소주와 함께 신혼집에 초대해주셨다. 팀원들도 합류했고 눈물의 술자리를 가졌다. 술기운에 퇴사를 번복했다. 경력을 더 쌓고 승진을 했다. 지금도 광고밥을 먹고 있다.


 지금은 퇴사를 하며 헤어졌지만 그립다. 이런 관리자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의 직장 생활 롤 모델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관리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실제로 2015년 광고대행사에 갓 입사했을 때 팀장님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었다.


 팀원 하나하나의 삶에 신경을 많이 쓰고 그토록 기본을 강조하시던 팀장님. 내가 퇴사하기 직전에 부서장으로 승진하셨다. 지금은 본부 전체를 총괄하는 국장까지 승진하셨다고 한다.


 퇴사 후 많은 관리자들을 만났다. 실적이 없으면 점심을 못먹게 하는 관리자, 허락 받고 퇴근하게 하는 관리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서류를 찢어발기는 관리자, 어떻게든 갈구려고 트집잡기에 혈안인 관리자. 세월이 흐를수록 그 팀장님이 자꾸 생각난다.


 회사는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자는 선택할 수 없다. 글을 읽으실 리는 없겠지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감사했고, 덕분에 커리어를 복 받으며 시작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잘 지내시냐고 카톡이라도 보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4. 광고주가 없는 광고대행사 AE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