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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Jun 24. 2022

6. 나의 첫 광고주

광고 영업은 광고가 아니라 인품을 파는 것이다

 그날도 아침에 출근해서 광고주 일일 리포트 발송 등의 기본 업무를 하고, 영업DB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바운드 광고주들과 선배들에게 인계받은 소형 광고주들이 몇 군데 있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주로 여행사 카테고리 영업을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수습사원 시절 선배가 여행사 광고주 미팅을 제주도로 갔던 썰을 너무 재밌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버랜드 관광 가이드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도 있어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사들의 콜드콜은 엄청났다. 특히 제주도 쪽 여행사들은 영업 전화를 많이 받아서인지 기상천외한 콜드콜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집요하게 여행사 카테고리를 판 결과 한 유럽 전문 여행사와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회사는 강남에 있었다. 첫 서울 외근이었다. 월 광고비 소진액이 천만원이 넘어야 서울로 외근을 갈 수 있었다. 그 여행사는 꾸준히 월 천만원을 쓰는 광고주는 아니었지만 많이 쓸 때는 1,500~2,000만원까지 집행한 이력이 있어 팀장님의 출장 컨펌을 받았다. 그 당시 내가 관리하던 경기도에 위치한 고양이 사료 업체와 엮어서 두 군데 출장을 다녀오라고 했다.


 6월 말, 여름이었다.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영업 미팅이면 복장에서 어느 정도 통밥이 있는 척을 할줄 알아야 하는데, 그딴거 없이 장그래처럼 풀 정장을 갖춰입고 갔다. 아주 신입 사원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대표님을 만났다. 생각보다 젊고 유럽 배낭여행 업계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이었다. 내가 제안했던 페이스북 광고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브리핑을 했다. 전날 전체 팀 전체와 함께 모의 브리핑 및 질의응답을 했기 때문에 쉬웠다. 


 그 자리에서 쿨하게 광고 이관을 허락해주셨고, 나는 처음으로 광고주를 내 힘으로 수주하게 되었다. 경기도에 추가 미팅을 갔다가 부산에 내려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오전 10시 미팅을 위해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올라갔으니 부산역에서 출발해서 부산역으로 돌아오는데 16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다음날 출근해서 이관 작업을 하고 광고 계정 셋팅 등 새 광고주를 위한 업무도 한가득 쌓여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성과를 내고,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며 이 맛에 영업을 하는구나 싶었다.


 광고를 집행하는데 내 돈 1천만원을 집행한다면 어떨까? 생판 남에게 그 비용을 온전히 맡길 수 있을까? 그 당시 몸 담았던 광고대행사의 대표님은 "광고 영업은 광고를 파는 것이 아니라 인품을 파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 말의 무게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 내 동기들은 월 1천만원 정도 광고주는 주머니속 물건 꺼내듯이 가져오고, 월 6천만원 수준의 쇼핑몰 업체들을 컨택하고 선배들과 제안서를 쓰던 시기였다. 그래서 심적으로 더욱 괴롭고 매일 화장실에서 조선소 취업 등을 검색하곤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동기들 대비 초반 실적이 너무 떨어져서 초기에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 당시 그렇게 앞서서 치고 나가던 동기들은 6개월만에 모두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이 광고주를 시작으로 여행사 관리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나름 규모가 있는 여행사 광고주를 관리하게 되었고, 후배가 영업하여 물어온 다른 광고주 또한 제안서 작업 및 미팅에 참여하고 관리하게 됨으로서 그 당시 본부에서 여행사 카테고리 레퍼런스가 가장 많은 직원이 되었다.


 3개월은 버티겠나 싶었던 광고 대행사에서 3년간의 커리어를 쌓게 해준 참 고마운 광고주이다. 지금은 대표님도 바뀌었고 아예 다른 회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에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유럽여행을 갈 일이 혹시라도 생기면 반드시 이 여행사를 통해서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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