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새

2025년을 살아 낸 그대에게

by 조호진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라이너 쿤체의 '뒤처진 새' 전문)


2025년 올해도 달리고 달리셨지요. 힘들면 힘든 대로 달리고 아프면 아픈 대로 달리셨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생존경쟁에 쫓기어 달리다보니 쌓이는 건 갈등과 다툼, 미움의 잔해들이 먼지보다 더 수북하게 쌓였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한 해가 저무는데, 가면 다시 오지 못할 한 해의 생이 저무는데 이대로 달려야 하는가. 회한과 자책이 밀려드는 2025년의 끄트머리에서 가뿐 숨을 잠시 멈추고 한 편의 시를 읽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詩 '뒤처진 새'를 읽고 난 후, 우리들의 아픔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새삼 곱씹으며 겨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저렇게 넓은데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아프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프면 아픔을 치료받아야 하는데 아픈 곳이 드러나면 그 아픈 곳만 집중 공격하고 그래서 상대 선수가 KO 당하면 승리의 두 팔을 벌리는 살벌한 링 같은 세상에서의 생존법은 쓰러질 것인가? 쓰러뜨릴 것인가? 양자 택일 밖에 없는가. 서로 보듬고 일으켜주면서 살 수는 없는가.


연말정산만큼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것이 아닐까요. 쓰러지려는 이웃을 보듬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쓰러지는 나를 보듬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해달라면서 화해의 등불을 켜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마음이 환해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아픈 몸이 낫지 않을까요?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세상사, 끊을 수도 이을 수도 없는 인연의 끈, 용서하고 화해하고 싶지만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아픈 몸과 마음을 낫게 해주소서, 저만 말고, 미워하는 그 사람도 부디 낫게 해주소서!


라이너 쿤체의 詩 '뒤처진 새'와 배우 한지민씨의 시 낭송을 연말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때론 보잘 것 없는 것이 비싸고 화려한 것보다 더 잔잔한 위로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준비했습니다. 흑배 영상속의 한지민씨가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낭송을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듣다보면 뒤처진 나와 이웃들을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라이너 쿤체 소개 바로 아래에 한지민 시낭송을 링크했습니다.


2025년을 사느라,

살아 내느라 수고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내느라 애쓰고 수고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안아주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신을 위로해주는 연말이 되시길…!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시인은 1933년 구동독 윌스니츠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철학과 언론학을 전공했으며 강의도 했다. 프라하의 봄 이후 정치적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 했고 자물쇠공 보조로 일하다가 1962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동독작가연맹에서 제명당하여 1977년 서독으로 넘어왔다. 서독으로 온 후 파사후 근처의 작은 마을 에를라우에 정착하여 시작(詩作)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푸른 소인이 찍힌 편지』, 『민감한 길』, 『자신의 희망에 부쳐』, 『보리수의 밤』 등의 시집과 산문집 『참 아름다운 날들』과 동화 『사자 레오폴드』를 비롯해 동시집들이 있다. 지극히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섬세한 감성이 어우러진 시들로 뷔히너 상, 휠덜린 상, 트라클 상 등 독일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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