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달님과 우체통

나의 창작동화...

by 탁 진




달님과 우체통



네 거리 모퉁이에 있는 우체국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우체통은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지난밤에 불자동차 소리에 잠을 설쳐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우체통은

속이 허전했습니다. 어제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거두어 간

뒤로는 아직 한 통의 우편물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매일같이 우체통 가득 우편물들이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우체통에다 편지를 넣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우체통은 또 하품이 나와 입을 쩍 벌렸습니다.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아가씨가 우체통의 입 안에 편지를 한 통 쑥 넣고 총총 걸어갔습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괜스레 쑥스러워 빨간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우체통은 뱃속에 들어온 편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받는 사람의 주소란에 강원도의 군부대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도 군에 간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모양입니다. 우체통은 첫 편지를 인쇄된 우편물이 아닌 손으로 쓴 편지를 받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체통은 오늘 하루 종일 쓰레기를 먹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체국 직원에게 받아 놓았던 우편물들을 건네주었습니다.


우체통은 빵빵거리는 경적소리에 놀라 눈을 떴습니다. 날이 밝았나 봅니다. 거리에는 벌써 차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우체통 앞을 지나갔습니다.


우체통은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켜다가 뱃속이 이상해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안경집 하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안경집 겉에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오마니에게'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우체통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자기 어머니에게 안경을 보내려고 하는가 본데, 받는 사람의 주소가 없으니 분명 우체부 아저씨는 배달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역시 우편물을 가지러 온 우체부 아저씨는 안경집을 발견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다른 우편물들과 함께 우체국 안으로 가져갔습니다.


우체통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그냥 장난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며칠 뒤, 우체통이 잠자는 사이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들어왔습니다. 고무신의

옆구리에 '오마니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체통은 누가 이런 일을 하는지

알아보려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지켜보았지만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흘 뒤, 또다시 '오마니에게'라고 적힌 여자옷이, 그다음에는 양말 한 켤레가, 또 그다음 날에는 장갑과 목도리가 들어왔습니다. 모두들 누가 쓰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두 '오마니에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우체통의 뱃속을 열어본 우체부 아저씨는 그 이상한 우편물들을 버리지 않고 모두 챙겨서 우체국 안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나오더니 우체국 앞에 있는 게시판에다 커다란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알립니다. 오마니에게 물건들을 보내시는 분은 우체국 안으로 들어오셔서 물건들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소불명이라 보내드릴 수가 없어 죄송합니다.'


그러나, 안내문을 붙인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도 물건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난밤 사이에 또 누가 우체통의 뱃속에다 털실로 짠 모자를 넣고 갔습니다. 모자에는 어김없이 '오마니에게'란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굴까? 우체통은 오후 내내 턱을 고이며 생각에 잠겨 보았지만 가슴만 답답해졌습니다. 우편물을 가지러 온 우체부 아저씨가 모자를 꺼내 또 한 참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도 난감하기는 우체통과 다름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 우리 엄마 모자네?"


우체통 앞을 지나가던 소년이 우체부 아저씨가 들고 있는 모자를 보며 말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소년을 불러 물었습니다.


"꼬마야, 너 이 모자 아니?"


소년은 다시 한번 모자를 들여다 보고는 말했습니다.


"예, 맞아요. 오늘 아침에 우리 엄마가 모자가 없어졌다고 온 집안을 뒤졌거든요. 그런데 왜 이게 여기에 있지?"


우체부 아저씨는 소년과 모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꼬마야, 지금 너희 집에 가서 너희 엄마에게 우체국에 좀 나오시라고 해 줄래?"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체국 옆 골목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우편물과 모자를 챙겨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소년과 아주머니가 골목에서 나와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체통은 드디어 이상한 우편물들을 보낸 사람의 정체가 밝혀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소년과 아주머니가 우체국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의 손에는 그동안 우체통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담긴 봉지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엄마. 치매가 뭐야?"


소년이 제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치매란 나이가 많이 들어 뇌세포가 죽는 병을 말한단다. 그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어 어린아이처럼 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단다. 지금 너희 할아버지가 그런 병에 걸리셨단다. 얼마 전부터 이북에 계신 당신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하시더니만... 벌써 돌아가셨을지도 모르는데. 후유, 아무튼 앞으로 큰 일이다."


우체통은 그제야 여러 가지 물건들을 자기 뱃속에 넣은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기는커녕 편지나 소포 하나 보낼 수 없는 곳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우체통은 코가 찡 해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서 편지라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부터 잔뜩 하늘이 머리 위에 내려와 있더니만 저녁이 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체통은 입을 꾹 다물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잠을 청했습니다.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렸습니다. 바람도 불고 간혹 천둥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비 오는 밤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체통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입에다 무엇을 넣는 것을 느끼고 어슴프레 눈을 떠 보았습니다. 주위는 온통 깜깜했습니다. 내리치는 빗방울들 때문에 우체통은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눈을 떠 어둠 속을 쳐다보았습니다. 누군가 우산을 쓰고 저만치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누굴까? 누가 이 비바람 치는 밤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하지만, 우체통은 쏟아지는 잠 때문에 이내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체통은 맑게 개인 아침 햇살을 받으며 눈을 떴습니다. 혹시나 간밤의 비에 우편물들이 젖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뱃속을 들여다보았지만 다행히도 젖은 우편물들은 없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 뒤여서 그런지 날씨는 더 추워졌습니다.


오후에 우체국 아저씨가 우편물들을 가져갔는데도 우체통은 왠지 기분이 상쾌하지가 않았습니다. 뭔가 뱃속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어 다시 한번 뱃속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체통은 갸우뚱거렸습니다.


우체통은 그 개운하지 못한 원인을 비로소 찾았습니다. 그날도 하루 종일 받아 놓은 우편물들을 우체부 아저씨에게 건네주고도 기분이 영 찜찜하여 우체통은 자기의 뱃속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우체통의 기분을 개운치 않게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뱃속의 한쪽 귀퉁이 벽면에 작은 종이조각이 붙어 있었습니다. 우체통은 조심스레 그 종이를 떼어 보았습니다.


종이는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웃고 서 있었습니다. 우체통은 할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우체통은 사진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뒷면에는 까만 볼펜으로 써진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마니에게. 오마니, 지섭이야요. 통일이 될 때까지만 살아 계시라요. 꼭 가갓시요.'


우체통은 사진 속의 할아버지가 그동안 주소불명의 물건들을 자기 뱃속에 넣은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날도 우체부 아저씨는 사진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우편물들만 꺼내 갔습니다.


우체통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울음소리는 저 쪽 골목길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 가에 대기하고 있는 영구차를 보았습니다. 누가 돌아가셨나 봅니다.


차츰 울음소리가 커지더니 하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골목에서 나왔습니다.


제일 앞에 조그만 소년이 가슴에 영정(죽은 사람의 얼굴 사진)을 안고 울먹이는 얼굴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그 뒤를 따라 관을 맨 사람들이 나오고 사람들이 울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우체통은 소년이 안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바로 우체통이 가지고 있는 사진 속의 할아버지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지난번에 우체국에 물건을 찾으러 왔던 아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결국 통일이 될 때까지 사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북에 계신 당신의 오마니에게 한 장의 편지도, 고무신이나 장갑들을 단 하나도 보내 드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우체통은 목에 뭔가 걸려 넘어가지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우체통은 자기가 할아버지를 위해 한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더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우체통의 임무가 그리운 사람의 소식을 전하는 것인데 할아버지의 오마니에게만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우체통은 답답한 가슴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끙끙 속을 태웠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하늘에는 하나 둘 별들이 반짝이며 나타났습니다. 우체통은 해가 지고 난 뒤부터 계속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 찾고 있었습니다.


아주 깊은 밤이 되어서 멀리 빌딩 너머로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우체통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님아, 달님아. 나의 소원을 하나만 들어줄래?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단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보낼 수가 없구나. 너의 도움이 필요하단다. 제발 한 번만 나의 소원, 아니,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려무나."


우체통은 보름달을 향해 할아버지의 사진을 꺼내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기도를 했습니다. 보름달은 말없이 우체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기도를 듣고 있던 보름달의 환한 얼굴에 희미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점점 뚜렷해졌습니다. 보름달의 얼굴에 그려진 그림은 다름 아닌 우체통이 가지고 있는 사진 속의 할아버지 얼굴이었습니다.


보름달 속의 할아버지는 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우체통은 이제 됐다는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보름달은 우체통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북 쪽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고맙다, 달님아. 북 쪽 하늘로 날아가 할아버지의 고향에 계신 오마니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드리렴. 아마도 할아버지의 오마니께서도 달님을 바라보며 남쪽에 있는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또 할아버지도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고향을 내려다보시면 기뻐하실 거야..."


우체통은 그제야 목에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우체통은 몸이 나른해지며 잠이 왔습니다. 그동안 할아버지의 이상한 우편물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그랬나 봅니다. 우체통은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체통은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한번 하고는 스르르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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