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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11. 2024

어쩌다 온실 속 화초로 키웠을까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않으려면

사전에서 '온실 속의 화초'를 찾아보았다.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지 아니하고 그저 곱게만 자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이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했다. 학부모 상담쯤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완벽한 아이를 키울 줄 알았던 어리석은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이제 상담만 앞두면 숨이 막힐 듯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답답해진다. 유치원 때 상담 트라우마 덕분이다. 내가 모르는 아이의 학교 생활이 너무나 궁금했다. 가장 궁금한 건 다름 아닌 사회성, 교우관계 영역이다.


20여 년 차 교직 경력이 대변해 주듯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교육 전문가답게 아이의 말과 행동을 정확하게 캐치해 주셨다. 아이의 특정 행동에 의문이 들었던 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모두 다 아이가 가진 약점과 부족한 점으로부터 야기된 일들이라 할 말이 없었다. 증상의 원인을 몰랐던 유치원 때에 비하면 상담에 임하는 나의 각오와 마음 자세에도 맷집이 생겼지만 여전히 편하지는 않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최대한 자세히 전달해 주셨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 나 또한 학부모로서 드릴 수 있는 아이에 대한 정보를 드리려고 애썼다. 단, 아이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지 않을 한계선을 자의적으로 정해서 전달 드렸다.  영유아기의 언어발달지연 진단처럼 지금은 덜 티가 나는 암흑의 과거는 덮어둔 채 지금 현재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부족할 수 있는 점들 위주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20여분 간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선 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한 마디는, '아이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것 같아요'였다.

온실 속의 화초라.. 어찌하여 아이는 온실 속 화초로 자라게 된 걸까. 아니, 왜 나는 그렇게 키우고 말았는가.


철없는 어린 시절에는 나도 온실 속 화초란 말이 웬지 멋있어 보였다. 양갓집 규수처럼 곱게 자라 보는 게 소원이었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서 엄마, 아빠의 무한한 사랑받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공부 못해도 유학 가서 돈 펑펑 쓰면서 살 수 있는 그런 화초 말이다. 그때의 나에게 온실 속 화초라는 말은 다분히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데 지금의 내 아이가 그런 이미지가 되었다고 하니, 과히 좋은 의미로 여겨지지가 않는다.






온실 속 화초의 정의는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지 아니하고 그저 곱게만 자란 사람이다.


내 아이가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지 않았다고? 되려 그 반대다. 발달지연 증상으로 인해서 유아시기는 상당히 암울했다. 말이 제때에 터지지 않아서 저도 자기표현이 안되니까 답답한 마음을 울음과 떼라는 극단적인 의사표현만 하느라 애도 나도 힘들었다. 그 시절에는 정말 외출조차 힘들어서 어디 맘 편히 데리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병원 진료를 볼 때는 하기 싫다면서 의사 선생님을 있는 힘껏 발로 내질러 차면서 온몸으로 거부했다. 이 녀석 때문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던 순간을 나열하자면, 수백 번 이상의 에피소드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이야기할 수 있다.


말이 느려 답답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인 나도 힘들지만, 아이 저도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애는 뭐 언어를 습득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ADHD 증상으로 인해서 청각적 주의력이 낮은 탓에 자연스러운 언어습득이 어려워진 건데, 나야 뒤늦게라도 그 이유를 알았지만 애는 이유도 모른 채 지냈던 거다.


유치원 시기에는 한창 또래관계가 발달해야 할 시기에 느린 언어능력 탓에 사회성 저하까지 찾아와서 더더욱 힘들었다. 친구들과 소통이 안 되는 아이는 담임선생님에게 의지하고 선생님하고만 겨우 소통을 했지, 나머지 시간에는 거의 혼자만의 놀이 속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하원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일을 때려치우고 유치원 등원도 중단시킨 채 치료와 가정보육에만 집중했다면 소아우울증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럴 용기도 없었고 상황도 허락지 않았다.


느린 사회성이지만 어떻게든 따라 잡아가보려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단지 놀이터를 데리고 나갔다. 유아기까지만 해도 좀 친절한 여자친구들은 놀이에 끼워주기도 했다. 서로 엄마들이랑 친했기 때문에 간식도 자주 준비해서 나눠주면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같이 어울리게 해 보려고 노력했다. 10번 중에 한두 번은 정말 함께 놀기도 했다. 그 한 번의 순간을 보기 위해서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머지는 고난과 역경이었다. 애는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어 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려보고 싶어 했지만 끼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옆에서 매번 내가 도와주었지만 엄마 도움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았다. 놀다가 감정조절이 안돼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해서 상대 엄마들에게 몇 번이나 고개 숙이고 사과를 했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놀이터 다시는 애 데리고 나가나 봐라 다짐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사회성 수업은 없다는 생각으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아득바득 데리고 나갔다.


상처받고 돌아서서 울고, 또 상처받고 울고 아이도 나도 반복의 순환이었다. 아이는 결코 기관에서든 놀이터에서든 곱게만, 편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불편했고, 답답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이가 온실 속 화초로 보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느린 사회성과 눈치 없음이 순진하고 순수한 성격으로 비친 것 같고 여자친구에게 맞은 공 때문에 아프다며 우는 행동, 즉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과 같은 ADHD로 기인한 제반의 행동 양식이 '너무 귀하게만 자란 아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만든 것 같다.


외동이라서 나도 남편도 아이만 오로지 바라보며 키운 것도 맞고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로만 키웠다 하기엔 나 스스로도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악쓰면서 화를 낸 적도 많고, 애 앞에서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방치하며 저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둔 적도 많다. 결정적으로 최근에는 놀이터에도 따라 나가지 않고 또래 친구들에게 상처 받든 말든 알아서 처신하겠지, 그것도 경험이야 하는 마음으로 모른 척한 적도 적지 않다.  


고민해 보았다. 앞으로 아이를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스스로 무언가를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주어야겠다는 육아서에서 볼법한 뻔한 답 이외에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무얼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무엇을 꼭 해주기보다 아이에게 그만 집착하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게 더 나을까? 자꾸 애를 위해서 뭘 해주려고 하다 보니 점점 온실 속의 화초가 된 건 아닌가.


아니면 아이의 어리숙한 모습을 담임선생님께서 최대한 에두른 표현으로 '온실 속의 화초'라고 격상해서 표현해준 것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오늘도 풀리지 않는 양육 고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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