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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Jul 09. 2024

한의대, 중어중문과, 호텔경영과

이들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읽었다.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미래시대와 각 개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책이다. 인공지능 시스템과 디지털 도구가 주가 된 세상에서 개인이 어떻게 적응해야하는지, 해결책을 대놓고 제시한다기보다 그가 관찰한 사회적 현상에서 느낀 영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새로운 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 짚어주었다.



나는 좀 B급 감성을 가진 사람인듯하다. 어떤 책을 읽다가도 그 책을 관통하는 주제에 관해 영감을 받기보다 저자가 스쳐지나가듯 언급한 내용, 다른 사람이라면 가볍게 지나칠만한, 하나의 예시나 사례에 불과한 내용에 눈이 가고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엄한 부분에 꽂힐 때가 굉장히 많다.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아무튼 미래시대와 핵개인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고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의외로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자녀 진로 교육에 관한 챕터였다. 엄청나게 공감이 가서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다.


"제가 대학을 갈 때 선생님이 유전공학을 해야한다고 하셨어요. 대학에 가서 선후배들을 보니 그들은 다 지금 뭐가 뜨는 학문인지 이야기하며 그 방향을 따라갔어요. 사회가 당장 이런 인력을 요구한다는 거죠. 그런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요. 떴다가 사라지는 학과도 많았고요."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어떤 사람의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고3 수험생이나 재수생이 대학에 갈 때 한창 뜨는 학문분야, 학과가 있다. 내가 대학에 갈 때쯤에 한창 뜨던 학과는 호텔경영학과, 중어중문과, 그리고 한의대였다.


과거에 드라마 허준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다. 아빠는 드라마 허준을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시청한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곤 했다. 한창 내가 공부를 상당히 잘한다고 착각하던 중학생 시절 나의 꿈 역시 자연스럽게 한의사였다. 하지만 당시 잘 나가는 한의대는 의대를 뺨칠 정도로 엄청나게 점수가 높았다. 그 때에 한의대와 의대를 두고 극심하게 고민하다가 의대를 선택했는데, 그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송윤아와 배용준이 주인공으로 나온 <호텔리어>라는 드라마 덕분에 호텔경영과도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요즘에도 호텔경영과가 그 때만큼의 인기를 얻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문과에서도 상당히 상위권에 위치해있어야 입학 가능했다.


이런 전공을 하면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고 했던 계보는 죽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해양공학, 원자력공학, 유전공학, 반도체공학.. 가장 큰 문제는 특별한 근거 없어 서로 이 계통이 뜬다라는 알맹이 없는 정보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한중 수교를 한다고 하니 중국이 뜨겠네 정도의 생각으로 중문과에 들어가는 식입니다. 청년들은 떠밀리듯 뜨는 과에 입학했습니다. 정보의 전파 과정이 치열한 고민 없이 이루어졌고, 그마저도 너무 성급했습니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작가는 이것에 대해서 지적한다. 아이들이 내 삶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뜨는 전공에 밀리듯 입학하는 현상 말이다.

부모로서 의견을 준것이지 너의 인생이고 판단에 대한 책임은 너 스스로라고 말했다고 해도 자식은 부모의 의견을 거스르기 힘든게 사실이다. 아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탐색하고 추구하는 과정은 생략되고 부모와 주변의 말만 믿고 우르르 쫓아갔다가 낭패를 보면 서로가 억울해할 수 밖에 없다.


부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인생을 바쳤고 특히 학군지의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엄청나게 치열한 삶을 산다. 자식이 실수할까봐 미리 가려서, 최선을 골라준다는 선의는 결국 자식의 인생을 나의 인생으로 착각하고 통제를 합리화하게 된다.


부모의 발빠른 정보력으로 중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은 조선족 중국인과 경쟁해야 하고, 통번역 대학원도 태어날때부터 이중 언어 구사자인 네이티브들과 경쟁하게 된다.


송길영 작가는 이 모든 광경이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간 결과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먼저 살았다는 이유 때문에 아는 척해야하는 책무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차라리 부모 스스로가 '나도 잘 모르니 함께 탐색해보자'라는 자세를 가지는게 낫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의 단서만으로 미래를 단정지어 진로를 이야기 하지 말고 사회 변화와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고민해야한다고.


이 내용을 읽고 나는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아이보다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나고,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내가 과연 아이의 미래를 열어줄 정도로, 아이의 진로에 대한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척척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자격을 가진 사람인지 되돌아보았다. '어설프게 흘려듣고 주먹구구식으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지금은 그게 대세고 앞으로 트렌드가 될테니까 그 길로 나아가라'라고 무책임한 조언을 해대는 부모가 되버릴까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나 스스로가 최첨단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도 못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겨우 낙오되지 않을 정도로 뒤따라가는 기분으로 사는 느낌인데, 이런 내가 앞으로 아이가 살 세상을 어떻게 예측하고 어떤 의미있고 가치있는 조언을 해준단 말인가.


결국 대학에 갈 때즈음에는 아이 스스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개척할 수 있어야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신감, 독립심, 동기, 의욕, 목표의식, 설사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거라고 당당하게 설득할 수 있는 용기가 갖춰줘야한다. 김미경 강사도 언니처럼 가까운 지방국립대에 가라는 부모님을 온갖 논리를 들어서 설득시켰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내 아이를 과연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19살이 되면 애가 스스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다고, 어떤 길로 가고 싶다고 결정하고 자기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지금은 초등학생이라 먼 미래 같지만 생각해보면 채 10년도 남지 않은 멀지 않은 미래다.


장님이 되어 또 다른 장님을 이끄는 우는 범하고 싶지 않다.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도 키워주고 싶고, 나도 아이 인생에 답안지를 정해두고 이래라, 저래라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나중에 후회하려거든 차라리 부모의 강압보다 스스로의 선택 이후에 후회하는게 더 낫다.


아이의 타고난 adhd 증상 덕분에 전두엽 뇌발달이 특별히 느린 편이다. 아마 스무살이 넘어가도 완전히 성인의 뇌가 되지 못하고 남보다 천천히, 느리게 성장의 단계를 거쳐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무살에 원하는 대학을 멋지게 입학한다는 기대는 조금 미뤄두는게 나을 것 같다. 뒤늦게 공부에 의욕이 생겨서 재수, 삼수를 하든지 편입을 하든지 당장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건전한 방황을 하다가 자기 길을 찾아가게 되지 않을까.


스무 살이 되면 해야할 일, 서른 정도면 해야할 일 정해두고 아이를 몰아치고 싶지 않다. 지금도 늘 또래발달에 기준을 두고 아이를 판단하고 있지만, 그게 꼭 나쁜 방식은 아니지만, 내 아이는 조금 천천히 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열심히 사는 태도만 갖춘 청년으로만 자라도 반은 성공한것 아닌가. 꼭 스무살에 현역으로 의대를 가야만 성공한 인생은 아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여유를 가지고 아이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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