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서 벗어났던 날
가수 싸이는 공연 내내 여러 번 말했다. 올 한 해 가장 행복한 날을, 행복한 추억을 선사해드리고 싶다고.
딱히 싸이라는 가수를 좋아한 적도 없고, 팬이었던 적도 없었다.
싸이 흠뻑 쇼 같은 특이한(?) 콘셉트의 콘서트를 하는지조차 몰랐다.
우연찮은 기회로 그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도 크게 흥분되지는 않았다.
'강남스타일'말고 내가 아는 싸이 노래가 뭐더라?
혼자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전 세계적인 강남스타일 흥행 이후로 또 신곡을 낸 것 같기도 하던데.
사실 강남스타일 이전에는 그저 좀 특이하고 엉뚱한 콘셉트의,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가수라는 이미지만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군대를 두 번 갔다 온 불운의 사나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그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를 연예인으로서도 딱히 호감을 가져본 적도 없는 내가 우연히 가게 된 그의 공연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싸이와 댄서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순간적으로 나조차도 감지하지 못했던 묵은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올라와서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차올랐다.
다행히 공연 특성상 수시로 물을 뿌려대는 통에 내 눈물은 주변 사람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왜 나는 목이 메어와서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을까.
너무 행복해서, 너무 감격에 겨워서 그때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이 없이, 남편 없이 혼자 집을 나와 다른 사람들과 가게 된 그 공연에서, 참 희한하게도 주체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껴버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예전에,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공연 보러 다니는 거 참 좋아했는데.
가수들 콘서트도 부지런히 예매해서 보러 다니고,
뮤지컬도 연극 공연도 자주 봤었는데,
마지막으로 이런 공연에 와본 게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건
내 일상의 많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가장 사랑하고,
내 모든 걸 헌신하고 희생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주고 있는 내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 아닌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고 즐겨 다니던 가수 콘서트를 와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던 것이다.
일종의 죄책감도 몰려왔다.
왜 나는 가족과 함께 하지 않았던 순간에 너무나 행복했을까.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
딱히 남편과 불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도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나 혼자서 마음껏 즐기고 흥에 겨워 춤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흠뻑 젖어드는 그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던 건 아닐까.
가끔씩 이런 한눈파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가족에게 다시 돌아와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된다.
생각해 보면 저번 주말, 모처럼 친한 친구들과 약속이 생겨 나가게 된 남편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어쩌면 결혼하고 아이 낳은 부부에게 정말 필요한 건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는 잠깐의 시간들 인지도 모르겠다.
왜 싸이의 그 수많은 히트곡 중 유독 '뉴 페이스'만이 머릿속에 남아 자꾸 흥얼거려지는지, 남편 몰래 듣게 되는지 이유는 모르고 싶다.
싸이흠뻑쇼 말도 많고 탈도 많던데..
아. 그래도 격렬하게 또 가고 싶다.
<사진 출처: Google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