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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랑 하루종일 함께하는거 왜 힘들죠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괴감

by 레이첼쌤

요새 방학이라 편하기는 하다.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나도 되고, 아이를 깨워서 제시간에 아침 먹이고 등교준비하는 일들도 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좀 마음이 편하고 느슨해질 수 있어 좋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두어 개 정도 학원을 매일 다니기는 하지만 아이 특성상 아직 오랫동안 붙잡고 공부시켜주는 학습학원에는 보내지를 못하고 예체능이나 발달센터 위주라 한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제 막 학원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끝날 시간이 온다.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그 꿀 같은 휴식시간에는 마음껏 유튜브도 보고 넷플릭스도 보며 늘어진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가 너무 힘들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딱히 아이를 데리고 운동이나 야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매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처럼 놀이목록을 보며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놀이를 한다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지쳐서 그런 것조차 하기 싫어져서 그냥 안 한다. 끝없는 그 노오오력을 이제는 정말 하기가 싫어졌다.


아이랑 같이 있으면 그래도 최소한 내가 노력하는 것 중 한 가지는 나 스스로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애 앞에서 유튜브나 SNS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며 이 스마트기기 중독시대에 아이를 보호할 방편인 것 같아서 그건 신경 쓰는 편이다. 핸드폰도 못 보고 도파민 자극을 애써 자제하면서 애 비위 맞춰주고 챙겨주다 보면 정말 기가 빨린다. 편하게 놀 친구가 없으니 나 어릴 적처럼 방학이라고 밖에 나가 놀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라 그런지 아침밥 차려주고 뒤처리 하고 나면 바로 또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크려고 그렇겠지 하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먹을 간식도 마땅치 않은데 뭘 또 해먹여야하나 싶고, 누구 하나 나 챙겨주는 사람은 없는데 하루종일 애 먹일 거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정말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잘도 견뎌내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 자식이랑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럴 거면 자식을 왜 낳았소, 하며 나를 비난하며 돌을 던진다면 어쩔 수 없다. 이제껏 짧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도 아이 낳고 하루종일 24시간 신생아를 돌보며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야만 했던 때다.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돌 것 같았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그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아이가 좀 컸어도 하루종일 같이 치대며 있는 건 여전히 내게 난도 높은 일상이다.


나같이 이렇게 육아가 힘들고 고난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애당초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른 동네 엄마들은 애가 스스로도 잘 놀고 친구들이랑도 잘 노니 카페에 그들끼리 모여 커피도 마시고 운동도 다니며 여유도 부리던데, 나로서는 아직 그런 우아한 일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이랑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게 행복한 엄마는 과연 몇이나 될까. 설문조사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내 경험으로는 각자 하루 스케줄 끝나고 늦은 오후에 만나서 너 다섯 시 간 정도 함께할 때가 가장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더불어 끼니 챙기는 것도 맥시멈 두 끼일 때가 좋다. 매일을 주말처럼 보내야 하는 방학은 나처럼 타고난 엄마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육아서적을 수십 권 탐독하고 공부하며 최선을 다해보자고 스스로를 채찍찔하고 노력해 봐도, 여전히 힘들고 낯설기만 하다.


방학은, 느슨해질 수 있어 반갑고 좋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시험대에 올라야만 하는, 그래서 그 자체로 무척 싫은 그야말로 애증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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