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하는 아이를 본 남편의 반응

느린 아이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

by 레이첼쌤

작년까지는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면 곧 죽어도 따라다니는 편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열 살 정도면 아이들끼리 놀아도 괜찮은 때라 여겨지는지 저학년까지만 해도 거의 동행하던 다른 부모들은 도 거의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미취학 시기부터 초등 저학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놀이터에서 겪었던 일들만 가지고 책을 쓰라면 한 권을 써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부정적인 경험이다. 말이 느리고 또래에 비해 상황 대처 능력, 대근육 소근육 다 느린 아이였으니 애초에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터는 최고의 사회성 학습의 장이였기에 안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동네에서 가끔 만나 노는 친구들이 생겨서 아이만 내보내기 시작했다. 실로 엄청난 발전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이나 했던가. 자전거를 가지고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친구와 연락을 해서 만나 함께 한두 시간 놀고 오는 이 단순하고도 평범한 일상은 내가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꿈꾸고 염원했던 순간이다. 다이어리에 꼭 언젠가 이런 날이 오게 해 달라고 쓰고 또 쓰면서 간절히 빌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지 않아도 돼서 많이 편해지긴 했지만, 남편은 아직 마음을 나보다 놓지를 못했다. 예전부터 밖에서 놀다가 아이가 상처받은 경험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다분히 경험에서 나온 불안감이었다. 또래 아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놀이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자신감이 없고 위축된 태도 때문에, 내 킥보드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해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아이는 무시당했고 울어야 했고 수모 아닌 수모를 겪었다.


단지 사회성발달이 느리다는 이유로 또래 관계 내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어마어마했다. 같이 어울린 또래 아이들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다. 그 아이들 또한 정상발달이라 하더라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한 면이 많기에 같이 답답한 아이에게 함부로 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아이가 몇몇 친구와 어울려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기에, 이번에는 남편이 데리고 나갔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벤치에 앉아 함께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씩씩대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아이보다 훨씬 더 어린 동생한테 당한 것 같았다. 저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어렵지 않게 상황이 짐작이 갔다. 하지만 조금 놀라운 건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그 동생은 형인 아이에게 함부로 대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생이 정말로 어렸기에 남의 아빠가 있든 말든 별생각 없이 행동한 것 같았다.


중요한 건, 그 동생뻘인 아이는 내 아이를 마음속으로 만만하게 여기고 있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같이 놀고 있는 다른 형들에게는 안 할법한 행동을 유독 내 아이에게만 멋대로 무시하며 행동했으니, 몹시 기분 나쁠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울던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을 아이인데 용케도 좀 성장했는지 기분 나쁜 티를 내고 화를 내며 와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내 아이가 화를 내봤자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그 동생 녀석도 별로 신경 쓰지 않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놀고 있었다고 했다.


그 장면을 오롯이 목격하게 된 남편은 그 동생 녀석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와 또래도 아니고 그래도 본인이 어른인데 나서서 한 마디 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냥 와버렸다고 했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남편은 아이를 향해 그런 애한테 신경 쓰지 말라며, 웬만하면 다시는 놀지도 말라고 일러주었다.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남편의 뒤끝 아닌 뒤끝은.


그동안 수도 없이 남편에게 말해왔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또래들에게 무시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그 수많은 상황들을.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상처받았고 트라우마처럼 그 장면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했다. 당한 건 아이인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 일을 똑같이 당한 것처럼 느껴져서 며칠 동안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잊어보려 했지만 아이를 향한 정상발달의 또래 아이들의 무시하는 듯한 눈빛, 함부로 하는 태도가 잊히지 않고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떠올라서 나를 괴롭혔다.


아마도 아이와 나를 동일시했기에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호소할 사람은 남편뿐이었기에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물론 공감은 해주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솔직히 이전에 당했던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이번 일은 그렇게 수위가 높다고 볼 수도 없는데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이가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겪을 수많은 상처와 무시가 예상되서였는지, 아니면 그 상황에서 그 동생아이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못한 게 한이 된 건지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잊을만하면 아이에게 그 따위 일은 잊어버려라, 그 동생 녀석 참 싹수없더라, 그렇게 약한 사람한테 함부로 하는 녀석들은 상대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그 놀이터에는 나가 놀지도 말아라, 등 옆에 있는 내가 들어도 너무 유치한 표현들이 난무했다. 웃긴 건 아이는 이미 그 상황을 잊은 것 같은데 잊을만하면 그 이야기를 계속 꺼내서 상기시키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서서 이제 그 정도면 됐다고 적당히 하라고 했다. 전에는 더 심한 일을 수없이 당했고 자주 이야기했었는데 왜 이 정도 일 가지고 그 난리냐고, 애가 더 트라우마 되겠다고 한마디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그만하겠다고 다짐하더니 몇 시간 가지 않아 또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그런 아이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똑같은 말을.


생각해 보니 처음이었다. 남편 앞에서 아이가 대놓고 무시당하는 일을 본 것은. 그것도 이제 또래가 아니라 더 어린아이에게. 늘 바쁜 남편 덕에 육아는 내 차지였고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는 것도 내 몫이었다. 특히나 동네 놀이터는 주로 내가 데리고 다녔으니 남편은 딱히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처음 목격한 것이다.


매번 나를 통해 전달받아 들을 때는 이렇게까지 공감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 본인이 직접 그 자리에서 상황을 겪어보니 굉장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 것처럼.


그런 남편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과거의 내 모습을 회상했다. 이틀 걸러 이런 비슷한 일을 겪던 나는 어떻게 극복해 냈을까. 동네 엄마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 모습, 놀이터 구석에서 눈물이 나오는 걸 참는 내 모습, 애들 놀라 하고 즐겁게 수다 떠는 엄마들 사이에서 불안하게 아이를 바라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참 힘들었다. 그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견뎌냈다는 게 맞다. 나는 견뎌내기 위해서 애썼다.


그래서 나 자신이 대견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멘탈은 의도치 않게 강해진 것 같다. 정신적으로 성숙했다고나 할까. 물론 원치 않는 성숙이고 일부러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삶의 스펙트럼이지만,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내면이 더 강해진 것은 틀림없다.


이번 일을 겪었을 때도 남편처럼 강펀치 맞은 것처럼 크게 힘들지 않았다. 또 그랬구나 하면서 다음엔 이렇게 저렇게 대처해 보자고 아이에게 동요하는 모습 없이 차분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되려 아이가 큰소리치며 이제 아빠 그만 좀 하라고 다 잊었는데 또 이야기하냐며 혼을 낼 지경이다.


부모가 좀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매번 상처받고 무너지고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로서는 별로 배울 게 없다. 원치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조금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아주 조금은 강해진 것 같다. 앞으로 더 강해지고 싶다. 강철 멘탈을 갖춘 멋있는 부모,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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