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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로 되돌아간 기분을 느낀 방법

인연을 소중히 할 것

by 레이첼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나 지인들에게 웬만하면 먼저 연락하지 않는 편이다. 천성이 게으름이 많고 귀찮아하는 내 성격 탓도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간 주변에 사람이 적지 않은 편이기도 했고 직장생활을 계속해나갈 때는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서 그런지, 굳이 먼저 연락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장기간 아이 돌보느라 직장과도 멀어지고, 남편 직장 때문에 이사까지 오게 되면서 예전 인연들과 더 멀어진 계기가 되었다. 다들 결혼과 육아를 거치다 보니 각자의 삶이 바빠서 더욱 연락이 뜸해졌다. 가까이 살았다면 그래도 이 정도로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다 보니 나의 20대 인연들과는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다.


며칠 전에 20대 시절 친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건너 건너 아는 지인들이 새로 만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공통분모가 하필 나였고, 덕분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참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한창 젊었던 그 시절 각기 다른 공간에서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된 것도 신기하고, 누군가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내가 거론됐다는 사실도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살짝 업되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오랜만에 연락이 온 지인과 한참을 떠들어대며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몇 년만이어서 어색할 법도 한데, 그래도 함께 공유했던 시간의 힘이 커서 그런지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 날밤은 다른 날보다 더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왠지 행복한 꿈을 꿀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내친김에 그 시절 친했지만 연락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다른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친했던 친구, 아는 언니, 직장 동료 등과 차례차례 연락을 해나갔다. 하나같이 반갑게 받아주었다. 마치 내 연락을 기다렸다듯이 너무나 반갑게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대화하는 내내 시종일관 웃음이 뻥뻥 터져 나왔다. 다분히 성인의 나이였음에도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철없기 짝이 없던 내 20대 시절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들과의 연락은, 참으로 유쾌했다. 마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때 그 마음 그대로인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을까 궁금할 지경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친하게 된 인연들도 참 많지만 만나도 대화의 주제는 나 자신보다는 육아나 남편 혹은 시댁 이야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상할 게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 인연들과 대화할 때는 이상하게 단 한 번도 남편이나 자식 얘기는 없었다. 서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 너, 그때의 우리 이야기뿐이다. 누가 더 철이 없었는지 경쟁하듯 그때의 에피소드들로 점철되었다.


현재의 내 근심과 걱정이 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파민이 팍팍 방출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이 드신 어머니들이 왜 여고 동창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는지, 그런 기분마저 이해가 되었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분들의 주변환경을 그들이 젊었을 적 시절 80년대 분위기로 확 바꾸었더니 갑자기 관절이 튼튼해지고 실제 건강을 되찾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걸 본 적이 있다. 마치 내가 벌써 그와 비슷한 걸 경험한 기분이다.


왜 진작 이 사람들과 더 자주 연락하지 않았을까. 나는 나대로 내 삶에 주어진 과제를 해내느라 바빴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 여유를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히 먼저 연락해 준 지인 덕분에 나는 요 며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의 20대는 참 행복하고 아름다웠구나, 새삼 되돌아보며 그때를 추억했다. 그 시절에도 나름대로 걱정과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하고 쓸데없는 걱정들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심각했을까 싶다. 아름답지만 그게 청춘의 아름다움이라는 걸 모른다는 게 진정 청춘의 묘미겠지만 말이다.


너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그 시절 인연들과 연락하면서 지내야겠다. 내 20대를 기억해 주고 같은 기억을 공유해 준다는 건 생각보다 삶에 새로운 환기가 되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에너지까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인지한 것보다 인연이란 참 힘이 센가 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인연을 이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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