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어록
AI 에듀테크 적용 수업이다 해서 시대가 변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중학교는 아침에 등교하면 각자 핸드폰을 제출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수업시간에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AIDT 수업이 대세네 마네 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래도 스마트기기 의존 없이 아날로그적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쓰고 답을 찾아보는 수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 아니어도 이미 아이들은 방과후 시간에 주말에 얼마든지 스마트한 세상에 충분히 노출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쯤은 큰 마음 먹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준 뒤 에듀테크 사이트를 활용한 퀴즈 게임 등을 시도한다. 일단 아이들이 매우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 막상 해보면 이것만큼 시간이 잘 가는 활동도 없다. 최대한 그 단원에서 배웠던 내용 복습할 수 있는 학습 내용을 구현해서 적용해 보려고 신경쓴다.
평소 수업시간에 자거나 무기력한 아이들,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것조차 버거웠던 아이들도 옆에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가면서 열심히도 단어게임에 참여하다. 무섭기까지 한 스마트기기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 날도 핸드폰을 나눠주며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핸드폰 사용 하기 전 다른 SNS나 카톡 사용 금지 등 유의사항을 열심히 설명해도 이미 아이들은 눈은 자신의 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빨리 켜서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그득해보였다.
이런 반응을 노리고서 준비한 수업이니 그러려니 한다. 정말 단 한 명도 자는 학생 없는 100퍼센트 참여형 수업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데 이와중에 한 학생이 다가오더니 자기는 핸드폰을 오늘 안가지고 왔단다. 그래서 게임에 참여 못한다고 전혀 아쉬움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할 수 없으니 친구랑 같이 앉아서 해보라고 했다. 같이 했어도 결과가 좋으면 도장 점수도 부여하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로서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더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저, 반에 친구 없는데요."
"...."
속으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서 어쩌라고 였다. 그 순간 교사로서 해줄 말이 전혀 없었다. 아이는 무심하게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시간 내내 친구들이 신나게 폰으로 게임하는 장면만 바라보았다. 다른 책을 보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그 상황이 불편했다. 정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반에 친구가 없으니 같이 앉아서 폰게임을 할 친구도 없으니까 나는 수업 참여 못하겠소,라고 선언하는 아이에게 별달리 해결방안이 없었다. 담임도 아닌데 아이를 데려다가 교우관계나 평소 교실 생활에 대해서 낱낱이 물어볼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가 없다는 말은 자기 좀 도와달라는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같이 편하게 지낼 친구가 없으니까 자기 좀 봐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동안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해서 힘들었다는 뜻 아닐까.
그 아이의 말이 하루 종일 귓전에 맴돌았다. 쉬는 시간에 어디 복도를 돌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수업 시간 이외에 그 아이를 만날 수도 없었다. 운 좋게 지나가다가 다른 선생님에게 숙제 제출하던 녀석을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잠깐만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붙잡았다.
일대일로 대화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였다. 나에게 반항할 의도도 아니었고, 걱정을 끼칠 생각도 없었다고 그냥 별 생각없이 한 말이라고 했다. 되려 예의 바르고 점잖은 모습이 더 눈에 띄는 아이였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걱정했던 것 보다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교실에서는 같이 어울리는 이렇다할 친구 하나 없이 그야말로 하루 종일 혼자서 지내다 가는 아이들이 한 둘씩 보인다. 중학교라서 그런지 혼자 지내는게 이미 학습되고 적응이 되어버려서 노력해도 어차피 안된다는 무기력감도 보인다. 때로는 학습능력이 뒤쳐지는것보다 더 걱정되는 모습이다. 공부가 재미없고 성적이 낮아도, 같이 재미있게 어울릴 친구가 있으면 학교 생활은 결코 고통스럽지 않다.
대화 한 두마디 편하게 나눌 친구 없이 학교 생활을 한다는건, 본성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간들 아닐까. 그게 평일 일과시간 하루종일 이어져야한다면. 이 아이들이 혹시 다른 반에, 아니면 다른 학교에라도 방과후에 어울릴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그것에 의존해서 지낼 수가 있다. 마치 친부모가 없어도 보살펴주는 친척이나 보호자가 있으면 잘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경각심을 가지고 아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내 아이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부분이다. 교사가 친구를 만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중학생 정도 되면 성향별로, 취향별로 또래 관계는 또렷하게 그룹이 형성된다. 다툼이나 갈등이 있었을 때 중재해줄 수는 있어도, 억지로 친하게 만들어가며 친구관계를 형성시켜준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냥 잘 지내는지 주의깊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다음 시간에도 그 아이를 눈여겨봐야겠다. 잘 지내는지, 별 일은 없는지 표정 변화도 주시해서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그건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살고자 하는 작은 메세지였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