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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by 누구 Oct 24. 2017

'누구'에게 쓰는 편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2016년 12월 31일은 아침부터 엄청 바빴다. 전날 밤 잠들 기 직전, 괴로운 일로 가득했던 한 해가 끝나간다는 안도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는 설렘, 무엇보다 이 지옥 같았던 시간들을 버텨낸 나 스스로에게 어떠한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래, 아듀 2016 나 홀로 파티를 하자!' 문득 든 이 생각 하나로 2016년의 마지막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나 홀로 그렇게나 바빴다


 먼저 꽃을 사 왔다. 꽃집을 들렀더니 첫눈에 알록달록한 양귀비가 눈에 들어왔고 곧장 '이거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곤 평소라면 살찔까 봐 고민하던 디저트도 큰 맘먹고 주문했다. 오는 길엔 마트를 들러 '겨울엔 딸기!'라는 생각으로 비싸지만 제일 예쁘게 생긴 걸로 한 박스 담았다. 2016년 가장 가깝게 지낸 알코올도 쟁여왔다. 메인 메뉴로 근처 초밥 가게에서 가장 비싼 초밥 세트까지 샀으니 어느새 나 홀로 파티 준비는 꽤 그럴싸해졌다. 시간을 들여 좋아하는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담고, 티브이에는 그 해 제일 좋았던 영화도 틀었다. 아껴뒀던 향초도 켜고 사 온 음식들을 예쁜 그릇에 담아 하나 둘 세팅하니 책상 위는 그렇게 나만의 작은 파티장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 홀로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맛있는 걸 먹었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적당히 취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다 문득, 2016년을 보내는 그 순간을 어떤 글로든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든 지금의 좋은 기분을 기억하고 싶었고, 한 편으론 2016년이 내가 쓰는 글로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곧 하얀 백지장을 마주하니 정작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랫동안 아무 말을 쓰다 지우다 반복하다 금방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화면 속 활자가 되어 담아지기엔 그때의 마음들은 훨씬 진중했고 아프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오랜만에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문득 서랍장 어딘가 편지지가 있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편지지를 꺼냈고, 다 마른 만년필의 잉크를 채워서 글 쓸 준비를 마치고 나니 꼭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작했다. 2016년의 마지막 날,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말이다. 


 잘 가라 2016 다신 보지 말자! 파티


 정확히 그 편지는 '나'에게 쓴 편지가 아니었다. 정말 수취인 불명의 '누구'에게 쓰는 하소연 같았다. 나를 힘들게 했던 2016년이 여과 없이 쓰였고 거기서 받은 상처들에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고스란히 새겨졌다. 그럴 때마다 이 편지의 수취인인 '누구'는 계속해서 바뀌어갔다. 헤어진 전 남자 친구로 시작하여 가족을 거쳐 아주 사소한 상처를 줬던 사람까지. 그렇게 길어지는 글만큼 수취인 수도 늘어만 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팔이 저리다는 걸 느낀 순간, 그 수취인은 오롯이 '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누구'로 시작된 내 편지는 결국 '내'게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 힘들었던 순간들을 감내해낸 내가 대단했다고. 다가올 2017년의 너는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누구'가 '내'가 된 순간부터 어느덧 갈 곳 없는 사과와 화들이 응원과 용기가 되어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물론 편지의 마지막 인사를 쓰곤 다시금 그 편지를 읽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이 좋았다. 분명 마음속 무언가가 명확해진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을 느낀 이후로 '누구'에게 쓰는 편지는 내 작은 습관이 되었다.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그 대화가 스스로 정리되지 않을 때 나는 그 당사자에게, 혹은 내게 쓰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 보면 단어로만 연결되었던 '하고 싶은 말'의 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이렇게 끝마친 편지의 본 의미가 내가 처음 하려고 했던 말과 정말 다르다는 걸 깨달을 때였다. 말이 얼마나 쉬운지, 그래서 그 말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더불어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얼마 전, 자기 자신에 강박이 심한 친구와 대화를 하다 아주 오랜만에 '누구'에게 편지를 썼다. 회사 선배로부터 '그만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에게 '뭐랄까? 가까이서 널 지켜보는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넌 정작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데 매 순간 100m 달리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야'라고 말했다. 친구는 그 선배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순간, 그 친구에 대해 하고 싶은 '어떤 말'이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랐다. 정작 눈 앞에 있는 친구에게 했던 말은 '덜 열심히 해-' 정도의 아주 표면적인 말 뿐이었으니 말이다. 착한 내 친구는 '응, 덜 열심히 할게'라고 했지만 그래, 정작 내가 원하는 말은 그게 아니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으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내가 알고 있는 친구의 상황과 그의 배경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참의 글들을 뱉어내고 나니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말'이 명확해졌다.


 '... 주제넘은 말일지 모르지만 나와 네 선배는 너라는 사람의 에너지가 네가 쓴 노력과 그 성취로 이뤄져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 하지만 세상엔 그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행여나 그것들로 인해 네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운 거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명료해졌다. 그리고 이 말은 역시나 '덜 열심히 해-'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네가 노력으로 인한 성취감 말고도 훨씬 많은 곳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 노력하지 않아도 작은 마음과 말 한마디, 그날의 분위기와 눈빛들 만으로도 네가 충분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길 바라.'


 문득 내가 12월 31일, 일기를 쓰면서 느꼈던 그 어떤 명료함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많은 이벤트와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혹은 생각들을 제대로 꺼내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들을 발견하기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고 충분히 전체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 말이다. 


 그날, 내게 용기를 줬던 그 명료함은 결국 그 정성 들인 시간들에서 나왔던 것이다. 결국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는 내가 들이는 정성과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작은 행위라는 것을 나는 또다시 '너'에게 편지를 쓰며 알게 되었고, 더불어 마음이 좋아졌다. 그날 밤처럼 말이다.


 앞으로 나는 자주 '누구'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그 누군가가 '너'일 수도,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그리고 '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편지를 쓰는 사람이 오롯한 '나'이기에, 이 편지 쓰기는 좀 더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나'를 위한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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