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 많은 말띠 Nov 18. 2021

다시, 남해 #3

여전히 백수인 채 다시 남해로





쾌청한 날씨는 남해를 더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 감탄스러운 풍경에 자꾸만 발걸음을 멈춘다. 6월 남해살이 때는 대부분 흐린 날씨였기 때문에 하늘도 바다도 잿빛이었다. 그때 그 바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인상의 바다를 매일, 오래도록 바라본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수평선까지 불규칙하게 떠있는 섬들, 해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내는 바다, 드물게 오가는 배와 그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남기는 하얀 궤적을 아주 느리게 꼭꼭 씹어 먹는 식사처럼 천천히 삼킨다. 
















남해에 온 지 6일 만에 처음으로 모래사장을 밟는다. 이렇게 예쁜 것을 이제야 구경시켜주느냐고 고구마를 타박하면서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모래를 느낀다. 마침 해가 가장 높이 떠있는 시간이라 빛을 골고루 머금은 바다가 이따금씩 옥색을 띠고 다시 푸른색으로 물든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 위에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고 얼굴을 그린다. 저녁에 있을 화상면접이 떠올라서 장이 뒤틀렸다가 밀려나는 파도에 걱정을 던져버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되지 뭐. 사람 사이 별거냐.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면접을 치르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저녁을 먹으러 미조로 향한다. 아직까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잘 될 거라고 용기를 주는 고구마. 화상 면접은 처음이라 뚝딱거리는 내 곁에서 하루 종일 신경 써준 고구마가 고마워서 "면접 본 기념으로 내가 쏜다!" 호기롭게 외쳤는데, 결국 밥도 고구마가 샀다. 숙식제공은 확실하게 해 준다더니 진짜 잘 먹여준다. 첫 외식 메뉴는 삼겹살. 며칠 전 동네 사람이 새로 생긴 삼겹살집이 맛이 좋다며 추천해 줬었다. 식당에는 나이 든 남자 둘이 취기가 오른 채로 열을 올리며 대화중이다. 의견이 맞지 않는지 큰소리를 내다가 한 사람이 말없이 떠나고 곧 남은 한 사람도 자리를 뜬다. 그 상황을 유심히 보던 우리는 '사내들은 꼭 저렇게 술을 마시고 싸운다'며 웃는다. 



고구마와 둘이 마주 앉아 고기를 굽다 보니 옛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앞에는 1인분에 3500원짜리 삼겹살집이 있었다. <밀터>라는 이름의 그 식당은 다른 메뉴보다 직접 빚은 동동주가 치트키였다. 지금까지도 <밀터>의 동동주만큼 맛있는 술은 먹어보지 못했다. 누런 빛깔의 걸쭉한 동동주는 주문 즉시 제빙기에서 떠서 항아리로 옮겨 담아 주었는데 거친 살얼음이 동동 떠있었다. 달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던 그 동동주는 대학 시절 우리의 소울푸드였다. <밀터>가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을 추억한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모였다 하면 늘 옛날이야기를 하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앞으로 쌓을 추억보다 쌓여있는 추억이 더 많은 어른들은 호시절 추억을 먹고 산다. 추억을 나누는 대화가 고달픈 현실을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 한창 추억을 곱씹고 있는데 고구마는 우리가 자리를 뜨기만 기다리는 사장님 부부가 신경 쓰이는지 계속 눈치를 보더니 집에 가잔다. 그래도 시켜 먹을 건 다 먹었으면서. 




취기가 오르니 무서운 줄도 모르고 어둑한 해안 도로를 따라 걷는다. 남해에서 지낸 날들이 많았어도 이런 길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선선해진 밤공기도 새로 알게 된 이 길도 마음에 쏙 든다. 캄캄한 바다는 등대만이 불을 밝히고 항구는 조용하다. 오랜만에 한 외식도, 밤 산책도, 대화도 모든 것이 완벽했던 저녁.














숙취를 안고 깬 아침, 옥상에 나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소리도 없이 또비가 나타나 날 지켜보고 서있다. 몸을 길게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켜더니 발밑에 와서 야옹 소리를 낸다. 아침인사를 하는 건가. 곧 있으면 말을 할 것처럼 옹알거린다. 발밑에서 또 배를 드러내고 발라당 누워 있던 또비가 갑자기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며칠 아는 체를 했다고 이렇게나 가까이 친밀하게 대할 수가 있나. 나는 곧 떠날 사람이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고 여기는 내 집도 아니니까 정을 주기 조심스러운데 그런 나와는 달리 또비는 직진이다. 내 무릎에서 온기를 나누어 주며 한참 동안 제 몸을 핥는다. 통통한 발도, 쫑긋 선 귀도, 털의 무늬도 신기해서 조물대며 만지는데도 가만히 손길을 받아들이는 또비. 내가 조금만 불행했더라면 이 온기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날 찍는 고구마










전에는 비 오는 날 올라왔던 설리 스카이워크. 입장료 때문에 썩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날 좋을 때 한 번 더 가보자는 고구마의 제안에 따라나섰다. 설리 스카이워크 주차장은 밤에 별을 보러 자주 왔는데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와도 풍경이 달라진다. 높은 곳에 올라서 보는 바다는 더 광활하고 바다를 안고 있는 섬의 품이 포근해 보인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고구마는 꽤나 의무적으로 "거기 서봐라. 내 사진 찍어 줄게" 한다. 카메라 앞에서 고장 난 인형처럼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표정이 왜 그라노", "이렇게 서봐라", "이쪽 봐봐라" 채근하면서도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찍어준다. 아무렇게나 나와도 상관없는 무신경한 내 속도 모르고 여기저기 옮겨가며 애를 쓴다. 덕분에 멋진 풍경 속의 어색한 내 모습이 담겼지만.





면접 다음 날,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님은 코찔찔이를 뽑았으니 그 회사는 큰일 났다고 장난치시면서도 잘했다고 다독여주셨다. 어제저녁 귀가하다 만난 고모님께도 소식을 전했다. 




"고모, 축하해 줘. 언지 회사 붙었대." 


"아이고마 잘됐다야. 니 국수 좋아하나? 전복죽은? 낼 점심에 묵으러 가자. 내가 사줄꾸마. 열두 시에 오니라잉." 


"제가 사드려야죠!"


"니 월급도 안 탔다 아이가. 내가 사주께." 


"좋아요! 저 죽 좋아해요. 맛있겠다!" 




남해에 내려와서는 거의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있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으면 저녁까지 버틸만해서 점심은 거르는 편이다. 오늘은 고모님과 점심 약속이 있으니 아침을 거르기로 한다. 아침 식사 대신 공복 운동을 하고 1층에 내려오니 잘 구워진 고구마가 있다. 어제, 다이어트 중인 덕구씨를 위해 삶아 놓은 고구마를 어머님이 다시 구워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고구마(내친구)는 쪄 먹는 게 훨씬 맛있는데 그걸 왜 굽느냐고 어머님을 잡아먹을 듯 타박했다. 반전은 덕구씨도, 나도 구운 고구마가 더 맛있다고 해서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다. 어머님은 "그치~ 구우니까 맛있제?" 하면서 기세등등해지셨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으면 다이어트가 되려나. "어머님! 진짜 맛있어요!" 어머님의 승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군고구마를 처음 먹는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며 먹는다. 수분이 완전히 빠진 달디단 군고구마를 먹으니 진짜 겨울이 오는구나 싶다.







일찍 일을 마치고 옆 동네 공원에 바람 쐬러 가는 길. 남해는 도로가 하나라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길로만 다닐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달리면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 나타난다. 남해에 살고 있는 고구마도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는 새삼 감탄하고 만다는 풍경이다. 주말에는 관광하러 온 차들이 풍경을 감상하느라 거북이처럼 달린다. 2차선 도로인데다 커브도 많아서 초행길인 차들은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기도 하고. 고구마는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달리는 차를 만나면 "쟈 와저라노. 경치 감상하는갑네." 하면서 그 차 뒤를 바짝 붙는다. 주말에는 캠핑카도 종종 보이는데, 고구마는 캠핑카를 제일 싫어한다. 추월할 수도 없고 뒤따라가자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여행 온 사람들이야 바쁠 일이 없겠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한 상황. 여유로운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참기 힘들다. 그 정도 불편은 아무래도 상관없이 이 멋진 풍경 속에 사는 삶이 그저 부러운 서울 사람. 지켜보는 제3자는 그저 풍경이나 감상하면 될 일이다.




"언지야. 마음껏 봐 래이. 이제 회사 들어가면 또 언제 이렇게 길게 와서 살아보겠노."


"그러게. 앞으로 몇 년 간은 없을 일이지. 남해 올 때마다 이렇게 엉덩이 무겁도록 눌러 앉았는데 2박, 3박 그렇게 여행 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고구마야."


"당연하지. 다시 와줘서 고맙다."


"불러줘서 고맙지."













미조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앵강다숲은 야영장과 수영장, 체험장 등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놀이터와 축구장이 있고 숲 안에 넓은 데크를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놓아서 아이들이 있는 가족단위로 이용하기에 제격이다. 고구마와 둘이 그네를 타면서 시끌벅적하게 굴었더니 운동하러 온 동네 주민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초등학생 때는 그네를 높이 타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몸이 크고 나니 더 무섭다. 심장이 콩콩거리는데 서른두 살 먹고 그네 타면서 꺅꺅 소리를 질러대는 고구마와 내 모습이 우스워서 무섭다고 소리치다가도 자꾸 웃음이 터진다. 숨이 차도록 웃고 소리치니 가슴이 시원해진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어렸을 때는 놀이터에서 하루를 다 보냈었다. 풀을 꺾어 적당한 크기의 돌로 쿵쿵 찧어서 밥상을 차리는 소꿉놀이를 하고, 모래에 손을 묻고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를 부르다가 철봉에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작은 놀이터 안에서도 놀 거리가 참 많았다. 익숙하기만 했던 놀이터의 기구들이 이제는 처음인 양 어색하기만 하다. 뱅글뱅글 도는 기구 위에서 발을 구르며 돌다가 "야 이거 우째 멈추노? 내 좀 멈춰봐라!" 하는 고구마를 돕지 않고 웃고만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브레이크를 밟아야제~!" 






























새가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휙휙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삼삼오오 흩어져있던 새들이 주변을 몇 바퀴 휘- 소리를 내며 돌더니 어느새 머릿수가 많아진다. 희고 늘씬한 새부터 참새처럼 작은 새, 오리처럼 무겁게 나는 새에게 차례로 시선을 옮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이렇게 멋진 곳이 얼마나 많을까. 언젠가는 작은 차 한 대를 몰고 전국에 이름 없는 곳들을 꼼꼼하게 훑고 다녀봐야지. 내비게이션도 없이, 흐르는 대로 달리다가 멈추었다가 하면서.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일도 없이 언제 죽더라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는 재미에 빠졌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는 기대로 바뀌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생이 즐겁다.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나를 옭아메고 있던 환경과 감정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럴듯한 껍데기를 탈피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가슴 벅찬 날들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구마는 내가 남해에 내려왔던 첫날, 내 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내 얼굴에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는데 처음으로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마음속 깊이 나를,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얼굴에서부터 드러난다니. 참 무서운 일이다. 





매일 계속되는 고구마와 나의 알맹이 없는 대화는 고구마의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하는 질문과 "딱히.", "글쎄." 하는 나의 시큰둥한 답이다. 새들이 무리 지어 노란 들녘을 맴도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고구마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후보 3개 말해봐라. 내가 정해주께." 선전포고를 했고 나는 애써 전, 보쌈 그리고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싶다고 했다.(사실 전부 그전에 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말했던 메뉴다) 전집은 문을 닫았고 보쌈집은 너무 멀어서 자연스럽게 옥상 바비큐로 정해졌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삼겹살 5만 원어치를 사기로 한다. 너무 많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게 "남으면 냉장고 넣어놓으면 된디" 하면서 5만원을 쥐여준 고구마는 차에서 기다리고 골목길을 걸어서 혼자 정육점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엄마 심부름하는 기분이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작고 통통한 강아지가 따라오기에 "안녕?" 인사를 건넸더니 바로 반응하는 꼬리. 선풍기 스위치를 켜면 날개가 돌아가는 것 같이 빠른 속도로 반응한다. 내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는 동안에도 문 앞에 얌전히 앉아 기다리던 강아지는 골목 어귀쯤에서 갑자기 멈추었다. 더 이상은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지 "잘 있어!" 하는 내 말에도 이제는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우뚝 서서 빤히 쳐다만 본다. 돌아와서 고구마에게 조금 전 만난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하니 친구네 집 강아지란다. 두 다리 건너면 강아지도 아는 사이가 되는 조그만 동네. 
















채소와 김치, 된장찌개 끓일 준비를 해서 옥상에 오른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시간을 맞춰서 석양으로 물드는 하늘을 안주 삼아 즐거운 때를 보낸다.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서 고구마는 겨울 잠바를 꺼내 입고 나온다. 불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래도 견딜만한 추위다. 또비는 옥상이 소란스러워지니 집에서 나와 주변을 맴돌며 바닥에 내려놓은 비닐봉지 속에 머리를 쑥 집어넣었다가 뛰어놀다가 한다. 서울 집에 사는 우리 집 강아지 초코였으면 먹을 것을 달라고 낑낑대며 졸랐을 텐데. 날이 어둑해질 때쯤 퇴근하고 돌아온 덕구씨를 초대한다. 역시 옥상 바이브를 제대로 느끼려면 사람이 많아야 해. 고구마가 된장부터 채소, 두부까지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때려 넣고 팔팔 끓인 된장찌개가 아무 맛도 나지 않아서 어찌 된 영문으로 이토록 맛이 없을 수가 있는지 셋이 한참을 토론하다가 결국 라면 수프와 면을 넣어 끓여먹는다. 도저히 소생이 불가했던 된장찌개는 그렇게 생명을 다했다. 고구마는 어지간히 창피했는지 다음날 "이제부터 된장찌개 얘기할 때마다 벌금 66,000원!" 하고 우리의 입을 막았다. 고구마는 벌금으로 집안 식구들을 호령한다. "아빠, 지금 부정적으로 말한 거 아니에요? 벌금 55,000원" , "엄마 밥시간 안 지키면 벌금 55,000원이에요. 벌금 가지고 오세요." 이런 식이다. 5만 원도 아니고 5만 5천 원이 이상해서 "부가세 포함이야?" 하고 물은 것이 아버님 마음에 드셨는지 고구마가 벌금을 외칠 때마다 "부가세 포함!" 하고 외치신다. 






밭에서 직접 기른 가지, 배추, 시금치로 차려진 아침 밥상. 나는 그중에서도 베트남 언니가 만든 가지 요리를 제일 잘 먹는다. 마당에 풍성하게 자란 가지를 보고 "가지 많다!" 했더니 언니는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가지를 잘라서 반으로 가른 뒤 그 안에 고기를 넣고 조려 먹으면 맛이 좋다고, 베트남식 요리라고 했다. 고구마가 "좋아! 그거 해줘! 맛있겠다" 했더니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그 요리가 등장했다. 다진 고기를 캐스터네츠처럼 가른 가지 속에 넣고 그 가지를 빨갛게 조려낸 요리. 밥도둑 반찬으로,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레시피를 물었지만 서로 언어가 서툴러서 알아듣는 데 한계가 있다. 그냥 언니가 해주는 가지 요리를 지내는 동안 최대한 열심히 먹고 가기로 결심한다. 언니는 올해를 채우고 곧 베트남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온 가족이 걱정이 많다. 언니처럼 마음이 좋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참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 집에 정말 귀한 사람이라고. 어머님은 아쉬운 마음만큼 언니의 칭찬을 입이 닳도록 하신다. 언니가 떠나고 나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더 열심히 "고맙습니다!", "맛있어요!" 크게 말한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남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