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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작전 가방

내 가방에 내가 없다 4화

by 김수다

후광이라는 게 진짜 있는 거였구나.


주일 예배 후 성가 연습 시간, 연습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성가대 관현악단 단원 중에 유난히 빛이 나는 사람이 있었다.

첼로를 애인처럼 품에 안고 춤을 추듯 연주하던 사람. 주님께 집중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어쩔 수 없이 성가곡 악보보다 그 사람을 더 많이 쳐다봤다.

성가대 팀장 집사님께 슬쩍 물어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알아냈다.

이제 작전 시작.

흔하지 않은 이름 덕분에 싸이월드에서 첼로오빠의 미니홈피를 금방 찾아냈다. 그때의 희열이란. 하지만 특별히 게시된 사진이나 글이 없어서 여자친구 유무나 사는 곳 같은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해 애가 탔다.

그때 책의 한 페이지 사진과 함께 ‘인생수업 중에서‘라는 짧은 문장이 보였다. 나는 곧장 서점으로 뛰어갔고 들이 마시 듯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날 이후 교회에 갈 때면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치장을 하고 커다란 가방에 그 책을 챙겨갔다.

성가대 연습실 책상 위에 성경책과 그 책을 나란히 올려두고는 일부러 큰 소리로 옆 자리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오빠가 나를 쳐다볼까 싶어서. 이 책을 보고 아는 척을 해주지는 않을까. 갑자기 말을 걸어오면 어쩌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이 두근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첼로오빠와의 인연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설렘과 긴장으로 오빠의 눈길만 기다린 지 두세 달쯤 지났을까.

가뜩이나 성경책도 무거운 데 매주 이 책까지 가져오느라 큰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결국 나는 그 책을 들고 무작정 첼로오빠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니홈피 파도 타다가 우연히 봤는데, 저랑 같은 교회 다니시더라고요. 그리고 저랑 같은 책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자다가 이불 걷어찰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첼로오빠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오빠와의 첫 데이트, 뼈해장국 한 그릇에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오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가끔 첼로오빠의 연주회 광고가 나와 두근거릴 때가 있다.

여전히 멋진 첼로오빠의 공연 포스터를 볼 때면 제목만 겨우 기억나는 그 책과, 인연 만들기 작전을 짜던 앙큼함과 귀여움을 함께 담았던 큰 가방이 떠오른다.


좋아해.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했던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스물다섯이 그립다.


<함께 하는 작가들>

지혜여니 https://brunch.co.kr/@youni1006

따름 https://brunch.co.kr/@blueprint22

다정한 태쁘 https://brunch.co.kr/@taei2411

김수다 https://brunch.co.kr/@talksomething

바람꽃 https://brunch.co.kr/@baramflower-jin

아델린 https://brunch.co.kr/@adeline

한빛나 https://brunch.co.kr/@growdream

새봄 https://brunch.co.kr/@spring-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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