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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08. 2019

엄마를 인터뷰했던 밤

따분한 24일 차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보였다. 늘 ‘서울의 밤’을 화려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의 서울은 고요했다. 엄마와 함께 본 ‘서울의 첫 야경’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곳이 알코올 냄새가 은은하게 진동하는 2인 병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밤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서울의 잔잔한 풍경은 ‘수술을 기다리는 엄마’에게 무엇이든 묻고 싶게 만들었다.     


  “엄마, 무서워?”

  “...”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뇌수술’이란 단어가 주는 공포를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이 상황을 자신보다 딸이 더 무서워하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수술한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20대 후반이었던 딸은 그렇게 철이 없었고. 담담하지도 못했다.     


  “나 한 번도 머리 밀어본 적 없는데, 걱정이다. 못생겨 보일까 봐.”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늘 딸보다 여성스럽고, 딸보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엄마였다. 그러나 나는 눈치가 좀 있는 편이다. 엄마는 머리 모양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무섭다는 표현을 저렇게 한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엄만 왜 맨날 짧은 스타일만 고집해? 단발도, 긴 머리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엄마의 시선이 창문에서 내게로 옮겨졌다.     


  “어쩐지 긴 머리는 주책맞아 보이기도 하고. 근데 나는 얼굴이 예뻐서, 짧은 머리도 자신 있.”     


  기억을 되짚어보니. 정말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없었다. 친구에게는 다양한 스타일을 권하는 내가, 20년 넘게 한결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는 엄마에게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니. 당황스럽게도 그 지점에서 나는 ‘불효자’ 임을 인정하게 됐다.         




  엄마에게 묻지 않은 것이 참 많았다. 수술하기 3주 전에도 그랬다. 지방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땐, 밤 11시였다. 깜깜한 거실을 지나 방으로 가려던 찰나. 잔뜩 화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터뷰 중에 걸려왔던 엄마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들어올 때 두통약을 사 오라는 문자에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안하진 않았다. 오히려 집 바로 앞에만 두 개의 약국이 있는데, 굳이 새벽부터 지방 출장을 간 딸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왔어.”    


  이마를 짚고 있던 엄마는 내 말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식탁 구석에는 거칠게 뜯긴 타이레 상자가 보였다. 잠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어떤 말이건. 엄마는 화를 낼 것만 같았다. 무척 피곤한 하루였다. 그냥 방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야! 이 나쁜 계집애야! 넌 어떻게 엄마한테 왜 아프냐? 아직 아프냐? 어디가 아프냐? 이런 걸 안 물어보냐? 저것도 자식이라고! 너 낳고 미역국 먹은 내가 불쌍하다.”    


  엄마의 목소리는 깨지는 유리처럼 날카로웠고.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반응이 좀 지나치다고 느꼈다.     


  “새벽부터 지방 내려가서, 목이 아플 정도로 계속 사람들 인터뷰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꼭 그렇게 나한테 화풀이해야겠어?”    


  마음 한쪽이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욱신거렸다. 그래서 더 크게 소리 질렀고. 더 세게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엄마의 뇌혈관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됐다. 아빠와 함께 들어간 진료실에서였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 내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화를 내거나, 흥분하거나, 충격을 받았을 때, 부풀어 올라있는 이 뇌혈관이 터지면 정말 위험해요. 최악의 경우 사망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일찍 알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수술은 잘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화를 냈던 그 밤의 기억이, 내 입을 잠가버린 것만 같았다.    


  엄마가 수술하기 전날. 퇴근하고 병원에 갔다. 아빠 대신 엄마 옆에 있기 위해서였다. 말없이 불을 끄고, 엄마 침대 밑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다가. 일어나 창을 내다봤다. 솔직히 조용한 병실에서 내려다본 서울 야경은 참 예뻤다. 정말 예뻤다. 그래서 순간 겁이났다. 친구들과 질리도록 봤던 서울의 야경을, 엄마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엄마도 ‘서울의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무엇이든 묻고 싶었다. 이 밤이 아니면 엄마를 인터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의 인터뷰는 자정이 넘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질문들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의 마지막 대답은 이랬다.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까. 여기 침대로 올라와서 엄마랑 같이 자자.”    




  당연한 관계, 다 안다고 믿는 관계, 언제든 내 편인 관계. 사실 ‘진짜 질문’이 필요한 건 이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관계는 다. 소중할수록, 사랑할수록,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대답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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