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18 공유 1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나는 계약직입니다
By 하루에 . Mar 16. 2017

25. ‘혼밥’하려고 도시락 쌉니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어,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다


  나는 도시락이 싫었다.

  남들은 ‘도시락’하면 엄마의 정성이나 고마움이 먼저 떠오른다던데. 나는 ‘무겁다’는 단어부터 생각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여름이건 겨울이건 엄마는 꼭 보온도시락에 점심을 싸줬다. 그러나 매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20분쯤 걸어야 하는, 체구 작은 14살의 사춘기 여학생에겐, 스타일 망치는 건 물론, 무겁기까지 한 '보온도시락'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그냥 작은 플라스틱 도시락으로 바꿔 달라고, 짜증도 내고 부탁도 하고 했는데. 나는 급식이 생기기 전까지 보온도시락을 들어야 했다. 한국사람은 밥 먹을 때 꼭 국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밥에 대한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콩나물국, 시래기 된장국, 부대찌개, 뭇국, 어묵탕 등. 지금 생각하면 군침이 돌지만, 그땐 참 맛있으면서, 내 일상을 귀찮게 하는 것이, 도시락이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된 급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젠 무거운 도시락과 이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20여 년 전 도시락과 행복한 이별을 했던 내가, 다시 도시락과 마주하게 됐다. 이젠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기분 좋게 도시락을 챙긴다. 물론 도시락과 함께 하는 출근길이 마냥 좋아진 건 아니다. 매일 노트북을 넣은 배낭을 들고 출근하는 내게, 한쪽 어깨에 걸친 도시락 가방은 귀찮은 존재다. 다행인 건, 엄마가 좋아하던 돌덩이 같은 보온도시락이 아닌, 아주 가벼운 소재의 플라스틱 소재의 도시락 통을 구매했다는 것, 뿐이다.




  예전에 외근이 잦은 일을 한 탓에, 혼자서 점심을 먹는 일이 많았다. 그 뒤로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계약직으로 일할 때도, 대부분 그랬다. 회사 밖에서 일할 때가 많아서, 점심은 먹고 싶을 때, 혼자 식당에 가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온전히 나의 속도에 맞춰, 해결하는 끼니였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특권이자 자유였는데, 그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아무튼 그러다가 지금의 회사로 온 뒤로, 나의 점심 끼니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고, 시간이 됐다고, 무작정 점심을 먹으러 갈 수가 없었다. 12시가 지나도 팀장이 일을 하고 있으면 대기해야 했다. 내가 일이 있을 땐 접고 일어서야 하지만... 아무튼 점심시간이 되면 팀원 전체가 우르르 거리로 나선다. 회사 식당이 없어서, 매일매일이 외식인데, 즐겁지가 않다. 내 돈으로 먹는데, 먹고 싶은 메뉴가 있어도, 먼저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늘 점심 메뉴는 이런 식으로 정해졌다.

# 상황 1
  회사 건물 밖 거리. 팀장과 과장은 담배를 태우고 있고, 다른 직원들은 그 옆에 뻘쭘하게 서 있다. 그때 과장이 (짬뽕 마니아)팀장의 좋지 않은 안색을 살피며 묻는다.

  과장: 팀장님, 오늘 점심은 어디로 갈까요?
  팀장: 어제 과음을 했더니, 속이 안 좋네.
  과장: 그럼 오늘은 짬뽕집으로 갈까요?
  팀장: 다들 짬뽕 괜찮아? 그럼 가지 뭐.


# 상황 2
  회사 건물 현관에 모여있는 팀원들 모습이 보이고, 먼저 나가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고 돌아오는 기분 좋은 (짬뽕 마니아)팀장과 과장. 과장은 팀원들을 바라보며, 팀장에게 묻는다.

  과장: 팀장님. 오늘 점심은 어디로 갈까요?
  팀장: 글쎄. 오늘은 우리 막내가 추천하는 곳으로 가볼까? **씨 뭐 먹고 싶어?
  막내: 저기 건너편에 피자가게가 새로 생겼더라고요.
  팀장: 피자? 한국 사람이 쌀을 먹어야지. 밀가루 먹고 힘이 나겠어?
  막내: 그럼 쌀국수집 갈까요?
  팀장: 쌀국수? **씨는 한식을 안 좋아하나 보네.
  과장: 그럼 짬뽕 어떠세요?
  팀장: 오늘은 막내가 먹고 싶은 거 먹자니까. **씨 짬뽕 어때?
  막내: 네? 아, 네. 좋습니다.
  팀장: 그럼 가자고. 짬뽕집으로.  


  짬뽕을 한식으로 착각하는 팀장에게, 그 피자가게의 피자는 ‘쌀 피자’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참았다. 막내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거다. 게다가 난 전날 저녁식사로 짬뽕을 먹었지만. 팀장에게 밉상으로 찍히고 싶지 않아, 아주 오랜만에 짬뽕을 먹는 것처럼, 후루룩후루룩, 힘차게 입 안으로 면을 끌어당겼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불편한 점심시간을 만드는 팀장의 질문이 문제다.


   “참! 하루 씨! 어제 이야기한 기획안 다 끝냈어? 내일 아침까지 전략팀 보내줘야 하는데… 어떻게 쓰고 있어? 이야기 좀 해봐 (사이) 아무튼 밥 먹고 들어가서 좀 보여줄래?


  아니 이럴 거, 왜 근무시간은 8시간이라고 뻥을 쳤고 채용 담당자에게 따지고 싶다. 점심시간도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면,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달라! 강력히 외치고 싶지만, 파견직 계약 연장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아. 입을 꾹 닫는다. 그저 점심식사 후 거울을 보며 분노의 양치질을 하는 것이 나름 나만의 화풀이다.





  “하루씨. 밥 혼자 먹는 거 심심하지 않아? 사람이 너무 부지런해도 문제야 문제!”    


  점심시간에 도시락으로 혼밥을 먹겠다고 선언한 뒤로 팀장은 내게 이틀에 한 번 꼴로 저런 말을 던졌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 점심시간이 회사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락은 일주일에 3번 정도만 가져간다. 물론 밥을 어떻게 먹건, 이건 개인의 자유지만,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하기로 결심했을 때, 팀장이 가장 많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팀장이, 나의 결정을 듣고, 제재하지 못하도록, 팀원들이 모여 분위기 좋게 수다를 떠는 순간을 공략했다.


  “요즘 살이 너무 쪘어요. (한숨 3번 쉬고) 저 당분간 도시락이나 좀 싸서 다니려고요”  


  물론 내가 점심시간에 따로 이탈하겠다는 메시지를 날렸을 때, 팀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하루씨. 운동을 해. 운동을. 내가 하루씨 도시락 며칠이나 싸오는지 두고 보겠어!”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번, 나는 도시락을 들고 회사로 출근한다. 점심시간이면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혼밥'을 하는 것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거나, 바빠서 보지 못했던 드라마나 책을 보면서, 나의 속도에 맞춰 밥을 먹는다. 시간이 넉넉하게 남을 땐, 혼자 산책도 다녀온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이런 잠깐의 이탈이 좋다.



  

  아이쿠. '혼밥'이 아닌 '직장인 도시락'에 대한 장점 없이 글이 마무리될 뻔했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어서, 매일 일반 식당을 찾아 헤매는 직장인에게 '도시락'은 시간과 돈을 절약해 준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면 한 달에 15만 원쯤 아끼는 것 같은데, 나는 일주일에 3번 정도만 도시락을 먹기 때문에, 10만 원 정도 절약을 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 큰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매달 이 돈으로 책도 사고, 옷도 사고, 강의도 신청하고, 주말에는 맛집도 간다. 소소하지만 삶의 질이 조금이나마,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다.




 


 

keyword
magazine 나는 계약직입니다
사표는 대체 언제 쓰나
lizmare84@gmail.com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