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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인데 깨가 안 쏟아지네
By 이하루 . Jun 13. 2017

남편의 문장들

신혼부부, 싸움 전(箋)-13

  남편이 내게 보냈던 첫 번째 문자메시지가 뭐였더라?     

  맞다. 우린 소개팅으로 만났으니까. 아마도      


  ‘안녕하세요. 저는 A 씨에게 소개받고 연락드리는 K라고 합니다. 하루씨와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시간 언제가 괜찮으세요?’    

  

 이런 문장이었을 거다.



     

  남편과 나는 4년 전, 소개팅으로 만났다.
  당시 나의 친구와 남편 친구의 아내가 같은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은 수다를 떨다가, 어떤 주제에서 연결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즉흥적으로 나와 그의 소개팅을 주선하기로 했다. 신난 주선자들은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에게 소개팅 의사를 물었고, 바로 전화번호와 이름까지 보내줬다. 그러나 우리가 연락하게 된 건 일주일 후였다.    


  그때 약속을 잡기 위해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둘 다 서로의 스케줄만 이야기하다가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졌었다. 그저  


  ‘그럼 서로 바쁜 일정 끝나고 다시 약속 잡아보도록 해요.’    


  라며 그가 먼저 대화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우린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과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땐 둘 다 정말 바빴고, 또 둘 다 소개팅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없었다.

  남편과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조차 못 할 뻔했다.    




  “야! 너희들이 뭐 연예인이야? 뭐야?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한 달이 넘게 안 만나고 있어?”  

  

  이런 우리를 만나게 한 건 주선자들이었다. 한 달 넘게 질질 끌던 기대감 없던 만남이 겨우 성사됐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에 휘말렸다, 라면 좋았을 텐데.
  겨우겨우 낮 12시에 만나 커피 한 잔 마시고, 피자 한 판 먹고, 산책하듯 잠깐 걷다가 헤어졌다. 딱 2시간 만에. 게다가 헤어지기 직전에 그는 내게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나는 그때 ‘이 남자,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라고 생각했다. 뭔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 같았지만,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그럼 가보세요.”    


  라고 쿨한 척 대답했다.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만나서 반가웠다’하는 소개팅 후 주선자의 체면을 생각해서 보내는 형식의 문장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조심히 들어가라’는 식상한 답장을 보냈는데, 우리의 연락은 이렇게 또, 뚝 끊어졌다.    




  김 빠지는 소개팅이 있던 3일 후. 그는 늦은 밤 내게 전화했다. 시시콜콜한 안부 문자메시지도 없던 소개팅남이, 이 밤에 왜 전화를 한 걸까? 나는 조금 오버해서 신종 사기까지 생각했다. 그래서 이 전화를 받으면, 그가 내게 갑자기 물건을 권유하거나, 다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것 같았다. 난감함과 당혹감에 좀 냉랭한 목소리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냈어요? 전 지금 회사 마치고 수영장에 왔다가 집에 가는 중인데요. 와, 운동하고 나니까.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네요. 그나저나 혹시 이번 주에 시간 되는 날 있어요? 밥이나 같이 먹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나의 기억도 의심했다. 혹시 내가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이 남자에 대한 중요한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쾌활한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밥 먹자는 이 남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상황이 너무 황당해서 피식 웃어버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 어색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한 거라는데, 글쎄다. 이제까지 알고 지낸 시간을 통틀어 보면, 남편은 그때가 가장 웃기고 어색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큰 반전이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의 만남의 첫 만남의 데자뷰 같았다. 순서만 다를 뿐이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신 후     


  “이제 집에 갈까요?”    


  또 그먼저 말했다. 만난 지 2시간 만에.

  그리고는 연락이 없다가, 또 이틀 뒤에 밥 먹자는 전화가 왔다. 그때 그 남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도대체 이 남자 뭐지?’ 하면서.     


  세 번째 만남도 똑같았다. 밥 먹고 차 마시고 2시간쯤 후에 헤어졌다. 나는 그때 집에 돌아오면서 ‘어쩌면 저 남자는 동화나 만화 속 인물들처럼, 2시간 뒤에 거지가 되거나 추남이 되는 흉측한 저주에 걸린 게 분명하다’는 결론 내렸다. 그날도 역시 헤어지고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12시쯤, 그가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점심 맛있게 먹고, 오늘 하루도 파이팅!” 


  대화를 이어가기 참 모호한 문장이었다.    




  남편은 남중, 남고, 공대를 거쳐 남자 비율이 은 직종에 종사한다. 과거 애인도 있었고, 대학 때는 여자 사람 친구도 있었지만, 이성과 풍부하고 다양한 대화를 나눈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이성과 단둘이 있을 때, 공감될 만한 대화를 끌어내는 일을 어려워했다.


 그리고 첫 만남에서 일이 있어서 집에 가겠다고 했던 건. 진짜 해야 할 일이 있던 것이고. 모든 만남에서 2시간 만에 헤어진 건. 밥을 다 먹으면 식당을 나와야 하고, 커피를 다 마시면 카페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그릇이 바닥을 보이면  꼭 나가자고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어떤 날.

  때는 연애 초반이었고, 우린 카페에서 데이트 중이었다. 커피를 좋아하던 내가 20분 만에 커피잔을 비워내자, 남편이 계산대로 가서 다시 커피를 사 왔다. 라지 사이즈로. 그리고 그 커피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커피는 좀 천천히 마셔요. 그래야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때 나는 그가 쓰는 문장과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됐다.       


      


  

  ‘맛해’

    

  평일 낮 12시쯤. 남편이 내게 보내는 문자메시지다.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4년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비슷한 시간에 꼭 저 세 글자를 써서 보낸다. 처음에는 왜 이리 성의가 없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앞뒤 없는 저런 짧은 문장들이 고맙다. 대답하기 애매한 문장이면 어떻고, 또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문장이면 어떤가. 매일 꾸준히 같은 시간에 나를 생각하쓰는 문장이지 않은가.   

  표현이란 건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특히 소중한 사람과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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