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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Nov 21. 2022

나는 썩어 없어지기보단 닳아서 없어지고 싶다

탈수기에서 물기 쫙 빠진 2022년

2022년. 올 한 해는 몸이 부서져라 달려온 해인 것 같다. 시간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하루가 3일 같았고, 일주일이 한 달 같은 1년을 보냈다. 연말까지 남은 짧은 시간마저도 아깝지만, 이제는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살아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1년 동안 내 안에 쌓인 콘텐츠를 풀어내면 최소한 책이 세 권은 뚝딱 나올 것 같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같은 높은 목표를 세우고, 안간힘을 써본 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몸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다 짜낸 것 같았던 올해.


벌써 내년을 이야기하기엔 조금 이르지만, 2023년은 조금은 여유로운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으리란 걸 예감하고 있다. 내게 남은 20대의 시간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울 것 같다. 픽사베이 사이트에 'work hard'라고 검색해서 나온 저 다 죽어가는 개미처럼 살아갈 게 뻔하다. 약간은 가학적으로 꼼꼼하게 설계된 판 위에서 계획들을 하나하나 실현시켜 나가겠지.


나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살아갈 테지만, 종국에 가닿으려는 이상향은 낭만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누구보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있지만, 정반대로 누구보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삶은, 뻔한 말처럼, 결말이 정해진 소설이다.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건, 곧 죽어간다는 말과 같다. 신생아라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걸어간다. 죽으면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겠지.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연의 순환 속으로, 물질의 순환 속으로 환원되는 게 모든 인간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순리이다.


나는 썩어 없어지기보단 닳아서 없어지고 싶다. 건강하기 위해 돈과 여유 시간을 쓰면서 가능한 한 오래 현생을 이어가는 게 인생의 정답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건강을 아예 놔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단순히 삶의 길이를 억지로 늘리는 것보단 삶의 밀도를 높여보고 싶다. 무수히 많은 나이테를 품고 있는 나무처럼 촘촘하고 단단하게 성장해보고 싶다. 나는 1년을 3년 같이, 3년을 9년 같이 살아보고 싶다. 밀도 높은 소화력으로 이 세상을 남김없이 맛보고 싶다. 세상은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걸어온 인생의 길을 긍정하고, 죽음마저도 사랑해보고 싶다. 나의 이 추상적인 바람이 어떤 형태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앞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곳에 연재하면서 구체화될 것이다.


나는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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