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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Nov 07. 2023

집밥의무게

내가 어릴 때 하도 안 먹어서

엄마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나도 아기가 잘 먹지 않아서 안 클까 봐

한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저체중아를 낳아서 신경 쓰는 것도 있지만

아이를 잘 먹이는 것이 육아의 주된 업이었다.

매일이 도돌이표같이 반복되는 육아를 하며

눈에 보이는 성취는 비어있는 젖병과 깨끗해진 식판이었다.

아이가 잘 먹어주면 엄마노릇을 잘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오로지 밥을 잘 먹나 안 먹나에 집중하게 됐다.      


혼합수유를 하다가 6개월이 되면 이유식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혔다.

그 이유는 음식을 뭐해줄지 고민하고 만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엄마가 떠나고부터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음식뿐 아니라 크고 작은 집안일들도 전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천지차이로 느껴질 만큼 엄마의 자리가 컸다.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았고, 외식보다는 집밥을 많이 해줬다.

아주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아야 하는 사골국을 자주 끓여줘서

초등시절부터 하얀 국 먹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엄마가 떠나기 전까지 음식을 해본 적이 없고,

스스로 내 방을 청소하는 일도 없었다.

잔소리는 들었지만 엄마가 해주는 게 당연했다.

청소년기와 20대까지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공허감과 원망만 있었지

내가 해야 된다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게 독립해서 혼자 살기 전까지

가끔 아빠와 외식을 할 뿐 집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특별하지 않은 일상 속

가족이 함께 먹는 집밥이 그리웠다.      

혼자 살면서 항상 사 먹을 수는 없으니 요리를 하게 됐다.

보통 한 그릇 요리로 볶음밥, 파스타, 떡볶이를 해 먹다가

집밥 백 선생을 보고 밑반찬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혼자 살다 보니 만들어놓고 다 먹지 못할 때가 많아서

다시 한 그릇 요리로 돌아갔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같이 먹을 신랑이 있어서

다양한 요리를 시도했다.

만들 때마다 레시피를 봐야 하고,

같은 음식을 2-3번 정도 만들어도 매번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아직 요령이 없고, 삼시세끼 집밥을 먹는 게 아니다 보니

1년 넘게 요리를 하면서도 서투름이 묻어난다.

어떨 때는 성공적이다가도 버려야 될 만큼 맛이 없을 때도 있다.

미리 뭘 먹을지 생각하고, 재료를 사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버리기 아까워서

냉장고 파먹기를 위한 요리가 뭐가 있나 생각하는 수고로움이 버겁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수년간 쌓아야 집밥고수가 되겠지?      


내가 생각하는 집밥의 정석은

나물, 밑반찬, 고기, 국 등으로 되어있는 한정식인데

시댁에 가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집밥을 먹게 된다.

남편은 결혼하기 전까지 무려 34년 동안 저녁마다 가족이 모여 집밥을 먹었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시어머니의 수고스러움을 먼저 떠올리기보다 남편이 부러웠다.

30여 년간 집밥을 만들면서 생긴 노하우로

빠른 조리시간과 반찬을 만드시는데 사 먹는 밥보다 훨씬 맛있다.

나는 집밥 결핍이 있기에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마다 감탄하는데

남편은 어릴 때 어머니가 억지로 음식을 먹게 한 기억 때문에 편식하는 음식이 꽤 있다.

그러고 보니 결핍이 있어

직접 만들어주는 정성스러운 음식에 대한 고마움과 따뜻함을 곱절로 느끼는 거 같다.      


나는 아직 집밥의 무게가 무거워 힘들다고 말할 깜냥이 안 되는 초보 엄마이다.

이유식 재료를 사서 칼로 썰고, 데치고, 믹서기로 갈아서 주는 아주 쉬운 요리를 한다.

초기이유식 재료로 곱게 갈린 브로콜리를 먹어보며 부드러움과 느끼한 맛에 놀라고,

매운 양파를 데친 후 매운기가 빠진 양파의 단맛을 처음 맛보며

원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마치 아기가 처음 먹는 것처럼 나도 맛보고 있다.


미음에서 진밥으로 바뀌고,

재료들을 섞어 양념이 된 반찬을 만들어주고, 국도 끓여주게 되겠지?

집밥을 해주는 엄마는 짠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집밥은 수고와 고생이 옵션이 되는 사랑이다.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집밥 고수가 되어있을 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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