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고쳐 쓴 사전 문답지
오늘은 지역라디오 방송에 녹음이 있는 날입니다. '마포FM'의 '세상에 이런 일(JOB)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거든요. 1시간 동안 녹음하고, 방송은 목요일 오전 10시에 나갑니다. 1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이야기 나누는 것은 유튜브 라이브로 나갈 예정입니다.
지난 주 사전 질문지를 받아들고 주말동안 고심해서 답변을 미리 써보았습니다. 과연 이대로 방송이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은 양을 써서 좀 아깝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것도 어찌보면 글쓰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아래는 제가 쓴 답변지입니다.
긴장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저는 회사원이자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호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똥꾸 안녕~!!! 아빠 라디오 나왔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금융회사로 ~~~~ 인 회사입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하는 일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제휴마케팅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저희 회사의 서비스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 접점이 모바일 플랫폼일 수도 있고, 오프라인일 수도 있고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 제휴처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도 해오고 있는데요, 브런치스토리에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출판사와 계약이 되어서 얼마 전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좀 힘들긴 합니다. 주로 주말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간혹 원고 마감일이 임박했을 때는 회사에 연차를 쓰고 하루 종일 글을 쓰거나 해서 진도를 빼기도 하고요. 아직 작가라는 호칭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오늘은 주로 회사 이야기보다는 책과 작가활동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작가 경력이 좀 길다면야 에피소드라고 소개드릴 만한 것이 많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리 경력이 길지 않다 보니 말씀드릴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네요. 그래도 하나 떠오르는 것은 처음에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 이야기가 있는데요.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어요. 꽤 장문의 이메일이었는데, 제가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칭찬을 잔뜩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는 책을 출간해 보자는 제의가 쓰여있었어요. 저는 그 메일을 받자마자 ‘이건 사기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저 같은 아마추어 중에 아마추어한테 이런 제의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저는 이른바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나오지도 않았고요, 기자나 출판업계 종사자처럼 글 쓰기를 가까이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죠. 문학 공모전 같은 데에서 입상 근처도 가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취미로 글을 쓰던 수준이었는데 출간이라니요.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비 출판 같은 것을 제의하는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거절하겠다’고 회신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 그런 게 아니라 정식 기획 출판을 제안드린 것이라며 회신이 왔죠.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미팅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출판사 사무실로 제가 직접 찾아가서 미팅을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파주에 있는 출판사까지 찾아가서 미팅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하게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출판사 사무실이 실재하는지를 제 눈으로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직접 만나서 미팅을 갖는데, 대표님이 직접 미팅에 참석하시더라고요. 유명한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신 분이었는데, 저에게 출간 제의를 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비전을 차분하게 잘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때 비로소 모든 의심이 신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표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참 공감이 많이 되었고 지금도 그 방향성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뭐라고 하셨냐면, 우리나라의 출판계는 이른바 대형 출판사와 그들만의 리그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작가로 등단하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대략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출판사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마추어인 작가들 중에서 독자들의 공감과 호응을 잘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분들을 발굴해서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본인께서는 생각하신다는 거였어요. 너무 감사했죠.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문창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거든요. 기존의 출판업계의 틀대로라면 저 같은 사람은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겠죠. 하지만, 브런치스토리에서도 제가 썼던 글들은 의외로 많은 분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었거든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을 테지만, 반면에 읽기 쉽고 공감이 잘 되는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 같은 것을 예를 들어서 보더라도, 작품성이 뛰어나서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그런 영화가 있는가 하면,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있잖아요.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북이나 웹소설 같은 쪽의 가파른 성장세만 보더라도 그런 독자들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저는 앞으로 저만의 개성 있는 글을 추구할 생각이고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제 글로 인해 공감과 재미를 많이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써나가야겠다는 방향성을 갖게 된 그런 에피소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외국계 은행에 들어갔고요. 지점에서 약 1년 정도 있다가 본사로 들어갔는데 대리쯤 되었을 때 대학원에 다니면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땄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는 맨날 은행 선배들 야근하고 있을 때 수업 가야 한다고 빠져나오느라 눈치 봤던 것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고요, 대학시절에는 재미있는 일 들이 많았습니다. 주로 술 먹고 실수한 것들, 학교 수업 빼먹고 놀러 다닌 기억들이지만요.
군대에 가기 전에는 매일 수업 빼먹고 술 먹고 놀기만 했어요. 동기들 사이에서 쓰레기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하게 바뀌더라고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걱정이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그래서 복학하고부터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러자 동기 중 한 명이 저한테 ‘쓰레기가 공부를 다 하네’ 그러는 거예요. 왠지 기분이 안 좋았죠. 그런데 아무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어요. 그냥 제가 마음먹은 대로 공부에 몰두했죠. 그렇게 복학 이후에는 남은 학기에 거의 성적우수 장학금을 매번 받게 되었죠. 주변에서 모두가 놀랐어요. 그러다 한 번은 저에게 ‘쓰레기가 공부한다’며 뭐라고 했던 그 동기 녀석이 전공 수업 노트필기한 것을 빌리러 온 거예요. 그때 좀 뭔가 제대로 복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좀 짜릿했죠.
제 책 <퇴근의 맛>에서 언급된 적 있는 곡을 하나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 변호사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노래입니다. 비틀스, 롤링스톤즈와 동시대에 활동한 ‘The Who’라는 영국 밴드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음악사적으로는 비틀스 못지않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밴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결성되어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장수 밴드이기도 합니다. ‘The who’의 노래 중 오늘 소개드릴 곡의 제목은 ‘Eminence front’라는 곡입니다. 의역하자면 ‘명성의 겉모습’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실상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1982년도에 발표된 곡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루브가 엄청납니다.
책 제목은 <퇴근의 맛>입니다. 장르를 따지자면 소설입니다. 20가지 짧은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무 명이 각자의 직업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맛있는 저녁 식사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 스토리가 마무리됩니다. 그렇게 총 스무 가지의 이야기 속에 스무 가지의 직업이 나오고, 스무 가지의 음식이 등장합니다.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각자의 서사와 상황이 다 다릅니다. 미혼인 간호사의 실연당한 이야기, 미혼인 요리사의 짝사랑 이야기도 있고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한국에서 꿈을 키워가는 다문화가정의 이야기, 딸을 둔 아빠이자 형사가 성범죄자를 체포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10대 고등학생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연령대도 다양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금수저나 재벌 3세 같은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보통 사람들의 보통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이고 그 대가로 경제적 급부를 받게 되지요. 다시 말해, 내 에너지를 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나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우리는 그 에너지를 다시 회복해야 하죠. 먹는 것으로 말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에너지를 회복하는 것인데 몸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마음의 에너지도 회복합니다. 이렇게 회복을 하기 위해 돈을 쓰죠. 반드시 식당에 돈을 내고 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만들어먹는 음식이라도 어쨌든 식재료나 이런 것들을 구입해야 하니까 돈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일하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뻔한 이야기지만 이런 메커니즘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에 나오는 직업들을 전부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감 있게 쓰기 위해서 직업에 대한 사전 조사도 많이 하고, 이곳저곳에 문의도 하고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지인을 통해서 그 직업을 갖고 계신 분을 소개받기도 했는데 어느 시점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냈는데, 그게 바로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분들께 도움을 받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브런치스토리에는 전업 작가분들도 계시지만, 본업을 가지고 계시면서 취미로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래서 제 책에 등장하는 직업을 갖고 계신 브런치 작가분들께 제 책의 추천사를 부탁드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이메일을 드려보고 읽씹도 당해보고를 반복했더니 감사하게도 도움을 주신 분들이 계셨고 그분들의 추천사가 제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추천사를 받으면서 직업과 관련된 현실고증의 오류는 없는지 검수도 함께 부탁드렸죠. 그렇게 직업에 대한 조사의 한계를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퇴근의 맛>에는 맛집 식당에 대한 정보들도 깨알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퇴근 후에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 그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작가의 단상’이라는 작은 코너에서 제가 꼽은 햄버거 맛집을 알려드리는 식입니다. 이런 맛집들은 제가 직접 다녀보고 먹어보고 한 검증된 곳들이기 때문에 <퇴근의 맛>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직접 방문해서 맛을 보셔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만한 곳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분들이나 브런치구독자 분들이 물어보시곤 했던 질문이 있었는데, 책 속 직업이랑 음식이랑은 어떤 연관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원의 우동’이다 하면 회사원과 우동이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이었죠. 사실 아무런 관련은 없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 말이죠. 그날 기분에 따라 ‘오늘은 뭐가 당기네’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매번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꼭 특정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책 속 인물들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음식을 먹습니다.
다만, 마라탕이나 떡볶이 같은 음식은 의도적으로 설정한 부분이 조금 있기도 합니다. 우선, 마라탕이라는 음식이 주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요, 마라탕집에 가보면 어린 여학생들부터 젊은 직장인 여성들까지, 남성들보다도 여성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야간 근무로 몸도 지치고 감정적으로도 예민해져 있는 간호사가 힐링하는 음식으로 마라탕이 제격이라고 생각했죠.
떡볶이도 비슷합니다. 야근으로 늦는 남편 대신 독박 육아에 지친 엄마가 아기를 겨우 재워놓고 매운 떡볶이를 배달시켜서 먹는 장면이 있거든요. 거실에 앉아 TV 드라마를 보면서 떡볶이와 시원한 맥주를 먹습니다. 완전한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매운맛이 빠질 수 없죠.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좋아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음식 중 하나가 떡볶이죠. 이 설정에서 떡볶이 말고 다른 음식은 생각할 수 없었죠.
출간 전과 후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출퇴근 길에 책을 읽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주말에 가족과 시간 보내고, 글을 쓰는 루틴은 계속됩니다. 이 루틴이 전제된 가운데 책 홍보를 위해 쓰는 시간을 조금씩 더 할애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모르는 책은 출간되지 않은 책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 원고 제출 기한을 미뤄가면서까지 홍보에 시간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출판사와 준비 중인 재미있는 마케팅이 몇 가지 있는데요. ‘미식 북토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퇴근의 맛>에 소개된 맛집 식당에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식사를 하며 북토크를 진행하는 콘셉트입니다. 기존의 북토크 형식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고요, 독자분들과도 편한 분위기에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기획 단계이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까지 이 자리에서 다 할 수는 없지만 그 외에도 <퇴근의 맛>을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구상 중이고 지속적으로 시도해 나갈 생각입니다. 저는 작품을 쓰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책을 더 잘 알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그런 방향으로 출판사와 협업해가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준비 중인 작품은, 조금 색다른 소재의 오컬트 소설인데요. 현시대의 사회 문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불러주세요.
인생의 책이라면 저는 단연코 성경을 꼽겠습니다만, 너무 종교적인 것 아니냐는 청취자 분들의 지적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성경 다음으로 가는 인생 책을 꼽겠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책들이 많이 있는데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같은 훌륭한 책들도 떠오르지만 저에게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인데요, 저는 영화를 먼저 봤다가 나중에 책을 읽게 되었어요. 아주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독서를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그가 쓴 거의 모든 책을 다 읽게 되었고 그 이후로 매년 많은 양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창 많이 읽을 때는 이틀에 한 권 정도 읽었었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한 두 권 정도 읽습니다. 주로 장리소설 위주로 많이 읽고 있고요, 범죄, 법정, 추리 같은 장리를 즐겨 읽는 편입니다. 국내 작품들이나 유럽/영미권 소설도 간혹 읽긴 하는데 저는 자연적으로 일본 소설 쪽으로 손이 많이 가게 되더라고요. 일본 쪽은 장르 소설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보니 최근에 나온 작품들일수록 묘사보다는 서술에 집중하는 스토리텔링이 강한 편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내 문학계는 서술보다는 묘사가 강한 것 같고, 문장의 심미적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재미보다는 작품성이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 같고요.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보면 문장이 간결하고 쉽게 잘 읽힙니다. 더욱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 직업이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작품 속에 과학 기술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제가 이런 그의 작품세계에 탐닉하게 된 계기가 바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 한 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확연하게 늘어난 독서량의 덕을 보았다고 할까요. 글을 써봐야겠다는 데까지 이르게 한 것이지요.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 자신의 삶과 경험을 쓰는 에세이를 많이들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저의 개인적인 일상을 남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좀 꺼려지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픽션을 써봐야겠다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와 여러 일본 작가들의 장르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안 읽어보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짤막하게 내용을 소개해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천재 수학자가 이웃에 사는 한 이혼녀를 짝사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남편이 이 이혼녀의 집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하고 실랑이 끝에 이혼녀는 그 전남편을 죽이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천재 수학자가 그 사건을 덮고 그녀에게 혐의가 돌아가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두뇌를 사용합니다. 한편 이를 수사하는 형사는 대학의 물리학 교수의 조언을 얻어 그 수학자의 트릭을 풀어갑니다. 그렇게 천재수학자 대 물리학 교수의 두뇌 대결이 펼쳐집니다. 결론은 스포 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대중적으로 알려진 책을 꼽아서 행여 어떤 분들은 김샌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있어 보이는 책을 꼽고 그 얘기를 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그래도 청취자 여러분들께 솔직하게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책을 소개드리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책과 글쓰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저에게 책과 글쓰기를 시작하게 만든 책,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었습니다.
계획이나 목표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바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계획이나 목표 같은 말은 꼭 이루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이 잔뜩 담겨 있는 느낌이라서요. 그것보다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느낌, 즉 바람 정도로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굳이 생각해 보자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 첫 번째 바람은, 저희 아들이 올해 고3이거든요. 좋은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저는 아이가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가 무엇이 되었건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열심히 한다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열심히는 상대적인 기준입니다. 10만큼 열심히 하는 것보다 20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딱 있습니다. 말 그대로 MAX값인 거죠. 누구나 개인차는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이 바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시기에 그 최선을 다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바람이라면, 이번에 출간한 <퇴근의 맛>이 보다 많은 독자분들께 읽혔으면 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재밌어서 홍보만 잘 되면 많이 팔릴 것 같다’는 주변의 피드백들도 있었다 보니 왠지 모를 기대감 같은 것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짜 작가에게 출간의 기회를 준 출판사 쪽에도 폐가 되지 않으려면 좋은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책을 알릴 수 있는 것들을 사부작사부작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목표가 아닌 바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나머지 부분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의미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욕망이라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욕망, 욕구라는 것을 충족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무리수를 두고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합니다.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건강한 것 밀테니지만 욕망이 정도를 넘어서면 스스로를 잡아먹게 되거든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욕망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행복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본인이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말하자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죽기 전까지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욕망에 노예가 되지 말기.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무엇을 갖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자세를 가지면 저절로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남들과 다른 나를 잃지 말기.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는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국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게 되고 그렇게 따라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대신 남이 내린 판단을 따라 하는 것은 저는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유하는 것은 모든 지구상의 생물체들 가운데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거든요. 저는 지금도 나중에도 계속 인갑답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과 다르고 싶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눈치 보지 말기. 그렇게 되려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아야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값지고 귀하게 쓰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많이들 이야기하는 쇼펜하우어스럽다고 하실 수도 있겠네요. 저는 쇼펜하우어 팬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경험하고 느낀 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론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뭐, 그렇습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저희 때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20대나 30대의 저라면 지금의 2~30대 젊은 친구들처럼 스마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친구들은 사회와 인류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요. 그런데 세상이 이 젊은 친구들에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합니다. 원래 20대 30대 시절은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감을 갖고, 목표를 위해 정진하고 발전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저희 때보다 살기 힘든 거죠. 훨씬 더 불확실하고 암울하고, 경쟁은 치열하고 그러니까 더 불안감이 듭니다.
그런데 꼰대들은 그 나이엔 원래 다 그런 거다 하면서 택도 없는 소리들이나 지껄이고들 있죠. 정말 그딴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해대는 어른들은 그만 좀 닥쳐줬으면 좋겠어요. 대신 저는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선택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본인들의 인생은 본인들이 제일 잘 알죠.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본인이 내린 선택이라면 아무리 불안감이 밀려오더라도 그 선택을 믿고 쭈욱 밀고 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차가 막히는 도로 위에서 운전할 때를 생각해 보죠. 내가 지금 있는 차선보다 옆에 차선이 더 잘 가는 것 같이 느껴져요. 그러면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에 차선을 바꿉니다. 그런데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그렇게 옮겨간 차선이 계속 그렇게 잘 빠지는 건 또 아니에요. 그러면 또다시 다른 차선으로 옮겨갑니다. 계속 그러기를 반복하면 과연 엄청나게 빨리 도착하게 되던가요? 사실은 아니거든요. 별로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도 왠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거죠. 남들은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고, 나는 뒤처지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렇지만 그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가볍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면 끝까지 밀고 나가보세요. 인생은 하루 이틀, 혹은 몇 달 만에 판가름 나지 않습니다. 자꾸만 이직을 하고, 진로를 재수정하고 할수록 본인에게 가중되는 스트레스는 더 커집니다. 경로를 수정한 만큼 시간을 허비했으니 더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커지는 것이죠. 그렇지만, 한 길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은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차근차근 쌓이고 쌓이면 엄청나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리저리 차선을 옮겨 다니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에너지를 쓰는 대신, 여유 있게 라디오도 듣고 함께 타고 있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해서,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아서 같은 이유로 직장을 옮기고 진로를 수정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그래서 이 한 마디를 해주고 싶어요. 그 심정은 이해되지만 결코 그것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본인이 내린 선택을 믿어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퇴근의 맛>과 잘 어울리는 곡을 하나 골랐습니다. ‘모찌멜로디’의 ‘퇴근송’이라는 곡을 함께 듣고 싶습니다. 퇴근을 갈망하는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가사가 아주 공감이 많이 갑니다. 여러분들도 매일매일 즐거운 퇴근, 즐퇴하시길 바랍니다.
꽤 많은 분량의 답변을 준비하긴 했는데, 생각만큼 각본대로 흘러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진행자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즐겁게 녹음했던 것 같아요. 라디오로 나갈 방송이지만 녹음하는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으로도 내보냈어요.
본 방송은 7/17(목) 오전 10시 재방송은 7/20(일) 오전 11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