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
<Tasty G 전시 리뷰 1>
“예술을 살다간 어른”
- 오승윤: 풍수의 색, 생명의 선율
- 2025년 12월 10일 ~ 2026년 1월 18일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6관
연말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사랑이 다가올 것 같고, 새해가 다가오기에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설레는 연말처럼 선물 같은 전시가 얼어붙은 마음에 사랑과 희망을 칠하고 있다.
사랑이란 이해다. 오승윤 화백은 평생에 걸쳐서 한국의 자연과 오방색(五方色)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예술로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예술은 그가 만물(萬物)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그것에 대해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수행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가 연꽃을 화폭에 담은 두 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오승윤 화백이 연꽃을 주제로 작업한 초기의 작품에는 그가 자신이 이해한 연꽃에 관해서 색으로 표현하려는 흔적이 담겨있다. 반면 이후의 연꽃 작품에서는 그가 연꽃에 관해서 깨달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잎의 숭고한 격려가 있었음을 오승윤 화백은 깨달았을 것이다. 마치 예수의 탄생 소식을 전하기 위해 2년여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동방박사들처럼 자연 속에는 ‘거룩한 낭비’가 스며들어있음을 말이다.
“사회는 너무 냉정하다. 어느곳에서는 인정이 꽃지고 있는데 예술은 나의 목적이었다.” 오승윤 화백의 유언의 일부다. “변화 시대에 맞추어 자기혁신 변화에 거역하지 말고 따라가자. 오직 제작이 중요.” 오승윤 화백의 작가노트의 일부다. 인간성이 상실되어가고 시대가 바쁘게 변하는 데도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망가져 가는 세상을 품었다. 그런 그를 또한 자연이 품었다.
허나 가장 많은 상처는 세상에도 오승윤 화백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많이 입을수록 타인을 깊게 품는 법이니 자연이야말로 반창고투성이다. 상처 많은 자연이고 게다가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인간이 새겨넣은 것이지만 자연은 여전히 사람을 품고 있음도 오승윤 화백은 깨달았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했다지만 오승윤 화백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자연과 함께라면 인간은 언제나 희망적이다.”라는 자연의 전언이 아닐까.
창의성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다. 치열하고 지난 한 논리적 탐구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갖출 수 있는 능력이다. 예술가 또한 치열하고 지난 한 노력이 있어야 창의성을 갖출 수 있다. 그 노력은 우선 대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가의 작품을 모방하는 과정은 곧 기본기를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승윤 화백 작 <대설>은 서양의 극사실주의 회화보다 눈과 추위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낚시꾼의 표정을 감추었기에 오히려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은 낚시꾼의 입김마저 전해지는 것 같다. 또한 <대설>은 오승윤 화백의 기본기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작품이기도 하니 예술가들이 애용해야 할 것이다.
운 좋게도 폴 고갱의 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실물을 감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운은 오승윤 화백의 작 <바람과 물의 역사> 앞에서 명을 다하였다.
부처와 여성의 누드가 함께 담긴 이 작품은 그 누구도 비하하거나 우상시하기를 거부한다. 인간의 내면은 얼마만큼 깊어질 수 있으며 인간의 선함은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끌어내는 <바람과 물의 역사>는 오승윤 화백이 쉼 없는 붓질과 치열한 사유를 통해 성취한 한국의 미에 관한 지고의 경지다.
이번 전시는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작품들로 채워진 명백한 예술 전시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승윤 화백의 예술에서 진정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어른의 표상’이다. 자연과 자연에서 살아가는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며,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예술의 실천으로 삶이 아닌 예술을 살아낸 오승윤 화백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