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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최대한 목을 아꼈는데도 목이 칼칼하다. 오늘은 정규 수업은 4개였고, 8교시 방과 후가 시작되었다. 수업하는 시간만 일하는 게 아니라,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도 일하는 시간인데, 여전히 학교에서는 수업 준비하기가 정말 힘들다. 연이어 2시간 정도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 갖기가 힘들다. 어제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일을 쫓아가며 처리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 주에는 수업 준비를 조금이라도 해둬서 다음 주는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8교시 수업을 마치자마자 퇴근할까 했지만, 허기져서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올 수 없을 것 같아서 급식소에서 석식을 먹고 왔다.
당장 잠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오늘 했던 수업 하나에 대해서는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학생들의 요구대로, 학교에서 하는 교과서와 부교재를 공부하면 된다. 이번에는 인원이 적은 편이라, 좀 더 세밀하게 봐줄 수 있다. 하지만, 개인별 격차가 크고, 영어 학습의 기초가 많이 부족하다. 단어, 기본 어법, 이런 것들을 모두 다룰 수 없다. 그리고, 자칫 기초를 가르쳐준다는 핑계로 너무 강의로 이어가면 학생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수업하는 나도 피곤하지만, 일주일 동안 매일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피곤하다. 특히나 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이해하는 정도가 적어서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클 수가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최대한 대화식으로 수업을 이끌어 갔으면 했다. 부족한 단어를 공부하고, 어법을 익히고, 문장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대 강의식이 되지 않을 방식을 고민했다.
목적 : 학생들이 좋아하는 단어 찾고 말하기, 영어단어 소리 내어 읽기
방법 : ""~한 ~식"으로 각자의 이름을 만들기로 했다. 그냥 ‘사과’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빨간 사과’ 식으로 짓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온 이름은 다음과 같다. : Pedaless bicycle, Pretty Princess, Winsome White Paper, Pink Pig, Blue Marine. 휴대폰으로 사전을 찾아보거나 자신이 아는 단어로 이름을 정했다. ‘마이클’, ‘제인’ 따위의 이름을 정하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이 활동의 목적은 이름을 정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자기가 쓰고 싶은 영어 단어를 생각해 내는 데 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같이 읽었다. (아주 기초라 생각되는 단어도 제대로 못 읽는 경우가 많다. 어떤 단어가 나오든 같이 읽어봤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따라 읽으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선택한 단어를 읽으면서, 주의해야 할 발음도 다시 알려주고, 단어의 형태에 집중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예를 들면, Pedaless에서 -less는 '~이 없는'의 뜻으로 사용된다. 접미사로 다양한 단어에 붙어서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 hair-less, power-less 등 예를 들고, -less를 이용해서 세상에 없는 단어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학습자라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언어를 처음 배우는 학습자가 반드시 누려야 하는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마음대로 언어를 조작해 보는 활동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은 영어를 공부할 때, 늘 목표가 있어. 외국 사람들에게 영어로 말장난이나 농담하는 거, 그게 내 목표야"라는 말도 하며 영어라는 주제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목적 :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먼저 익숙한 우리글로 읽어서 내용을 숙지한다. 그리고 배우고 외우고 싶은 단어를 학생이 선택한다.
방법 미리 준비한 교과서 해석본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해석본은 번역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수업을 준비할 때, 늘 영어원문을 해석하는데, 적당히 의미단위로 끊고, 그 끊은 호흡에 맞게 직독직해로 써간다. 번역이 아니라, 우리글로는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앞에서 뒤로 가며 영어식으로 해석하면 충분히 알아들을만하다. 총 9개의 문단이다. 나부터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문단을 소리 내어 읽기로 했다. 수업 활동에서는 소리내어 읽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소리 내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 읽게 두면, 정말 수업에 참여하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이번 수업의 인원이 적기 때문에, 돌아가며 읽었을 때에도 충분히 다른 사람이 읽는 소리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문단을 읽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그 (한글로 된) 문단에서, 단어 하나를 골라서 표시하라고 했다. 그렇게 고른 단어는 영어로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의 절반 정도를 모른다. 그러니 한글 해석에서 표시한 단어를 영어 지문에서 보고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글 해석이 직독직해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단어의 위치를 활용해서 영어단어를 찾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원하는 영어단어를 찾기 위해서 영어문장을 Scan 하게 된다. 학생들은 한 단어만 고를 줄 알았는데, '형용사+명사'형태의 '구'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표현을 찾았다면 더 좋다. 단어는 하나를 고립해서 외우는 것보다는 앞뒤 단어와 같이 외우는 게 좋기 때문이다. 표시했던 한글 단어와 찾아낸 영어단어는 내가 미리 준비해둔 플래시카드 크기의 종이에 앞 뒤로 쓴다. 5명의 학생이 9개의 단어를 찾으면 45개의 단어카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학생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어서 오늘은 일단 3 단락까지만 단어를 찾기로 하고, 속도가 좀 빠른 학생은 원한다면 더 찾도록 했다. 일단 15개(3x5)의 단어 카드를 가지고 단어 활동을 했다. 우리말 표현을 먼저 보고, 영어 표현을 읽었다. 그리고 필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to preserve를 찾은 학생도 있었고, perserving을 찾은 학생도 있어서 동사가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목적 : 영어로 하고 싶은 말, 그 말에 대해 생각하고, 그 표현을 영어로 익힌다. 영어의 목적은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 있다. 자기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위한 활동이다.
방법 이때는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위에서 하던 단어 활동카드는 일단 모두 집어넣었다. 그리고 카드 하나를 다시 잡고, "나는 ~를 자주 한다. 나는 ~와 ~하는 것을 좋아한다" 식의 우리말을 쓰도록 했다. 내가 예로 든 문장은 "나는 하루에 커피를 세 잔 마시다."였다. 위의 형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안내했다. 모두 자기가 쓴 문장을 보여주고 읽었다. 번역기를 사용하든 혼자서 써오든 다음 시간까지 영어로 써오기로 했다.
50분의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중간중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할 때 휴대폰처럼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을 근처에 두지 말라고 했다. 멀티태스킹의 폐해에 가장 시달리는 사람은 학생들이 아닐까. 공부하다가 휴대폰을 보고, 해야 할 분량을 하지 못한 채 다시 휴대폰을 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책망하거나 업신여기게 된다. 특히 이 학생들에게는 격려가 필요하고, 가장 가까이서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 학생들 뿐이다.
영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시종일관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오늘 온 학생은 4명이었고 나까지 다섯 명은 책상과 의자를 옮겨서 거의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음 수업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단톡방을 만들어서, 매일 질문을 주거나, 나의 이야기를 영어로 써서 학생들이 '일상적인 영어'에 노출되도록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