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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부인 Nov 06. 2020

볼로네즈 파스타가 그렇게 슬플 일인가?

길 위에서 113일째 되던 날

길 위에서 113일째, 이탈리아 북부 내륙에 있는 볼로냐에 도착했다.  

호스텔 체크인을 마치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대학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거리에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활기찬 분위기의 볼로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본격적으로 도시 구경에 앞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했다. 볼로냐에 왔다면 볼로네즈 파스타 한 그릇은 먹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마침 가까운 곳에 가격도 저렴하고 구글평도 좋은 식당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현지인들로 가득 찬 가게 안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맛집을 잘 골랐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가게에는 영어 메뉴판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분도 안 계셨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구글 번역기를 돌려 메뉴를 고르고 어렵사리 식사를 주문했다. 남편 파스타, 샐러드 그리고 내 스프, 이렇게 세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며칠 전부터 속이 별로 좋지 않은 나는 아쉽지만 파스타 대신 스프를 먹기로 했다.) 

직원 아저씨는 샐러드를 두 개로 나눠줄까 물어보았고 우리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사실 아주 간단한 질문과 답이 오갔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위에 대화는 꽤 오랜 바디랭귀지를 필요로 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이좋게 나눠 먹기 좋게 두 접시로 나눠 나온 샐러드와 스프 그리고 파스타도 두 접시가 나왔다. 아저씨가 샐러드도 파스타처럼 두 접시에 나눠 준 것이라 생각했다. 속이 좋지 않은 나는 파스타를 조금 맛보고 모두 오빠한테 주었다. 현지에서 먹는 볼로네즈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샐러드도 스프도 하나같이 다 맛이 좋았다. 즐거운 식사였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받아 든 계산서에는 파스타가 2개로 나와있었다.

음.... 아마 주문받으신 분이 당연히 1인 1 파스타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파스타도 두 접시가 나온 것이고... 사이좋게 먹으라 나눠주신 것이 아닌....... 

시무룩해진 얼굴을 보고 남편은 맛있게 잘 먹었으니 괜찮다며 나를 다독인다. 하지만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온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멈출 수 없었다. 파스타가 두 접시 나왔을 때 확인했더라면, 주문할 때 한 번 더 확인했더라면.... 그렇다면 6유로를 더 쓰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볼로네즈 파스타 집 앞에서 웬 동양인 여자는 영수증을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백 원, 이백 원 아껴가며 여행하는 배낭여행자에게 6유로는 6유로가 가지는 보통의 가치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큰돈을 헛으로 사용한 것 같은 상황이니 속상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밥값으로 사용한 이 상황에 이렇게 속상해하는 내 모습이 속상하기도 한 것이었다. 속상함이 속상함을 줄줄이 몰고 온 것이다. 

남편은 맛있게 잘 먹은 이 식당에서의 시간이 6유로 때문에 속상함으로 물들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다. 

맞는 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돈 때문에 망쳐버릴 수는 없다. 돈 때문에 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하며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6유로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볼로네즈 파스타도 맛보고 값진 가르침도 얻었으니 이 정도면 본전은 뽑은 것 아닌가..?



P.s 이후로도 종종 작은 돈 때문에 시무룩해지는 일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려고 애쓰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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