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노트_ 맨발걷기
아침의 나라 동해 추암해변 새벽은 늘 새롭다. 600일 차 해변 맨발 걷기다. 여명은 붉은빛과 분홍빛의 결을 풀어내며 수평선을 물들였으나, 일출은 두터운 구름에 삼켜져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신 구름이 흡수한 빛이 바다 위에 스며들어, 파도의 결마다 은근한 불빛이 어른거린다. 마치 그곳이 감춰진 부재(不在)가 또 다른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해변 기온은 영상 21도, 가을바람은 차갑지 않고 서늘하게 피부를 스친다. 가끔씩 내리는 가을비 한 방울, 두 방울은 리듬을 이루듯 오락가락한다. 이 미묘한 변화는 자연이 가진 ‘불확정성의 미학’을 보여준다. 우리가 기대한 장엄한 일출은 사라졌지만, 대신 구름과 빛, 바람과 파도가 조율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는 ‘자연을 어떻게 해석하고 경험할 것인가’라는 문화적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추암해변 맨발 걷기는 일반 신체적 운동과는 차이가 있다. 맨발이 모래와 바닷물에 닿는 순간,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흐려지고, 몸은 생태적 감각의 일부가 된다. 600일간의 실천은 개인의 습관을 넘어선 ‘지속성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한다는 것(Bauen, Wohnen, Denken)’이 결국 땅과 더불어 존재하는 삶의 태도라면, 맨발 걷기는 현대인이 자연과 다시 호흡하는 작고도 깊은 거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과 같은 여명의 풍경은 ‘결핍을 통한 충만’을 일깨운다. 해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 부재 속에서 더 넓은 하늘빛을 발견한다. 이는 지역학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해안의 일출은 ‘해가 뜬다’는 시각적 사건보다 매일 다른 빛과 기운으로 지역민의 삶과 정서를 형성해 왔다. 따라서 추암에서의 맨발 걷기는 지역성과 일상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철학적 교류를 아우르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다.
600일 차의 기록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변주하는 자연 앞에서 멈추지 않는 발걸음의 증거이자,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문화적 실천이다. 오늘 구름이 삼킨 일출처럼, 우리는 때로 결여 속에서 더 큰 의미를 마주한다. 오늘 추암의 새벽은 마치 나의 모습을 닮은듯하며 그 사실을 몸으로 증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