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다

83. 지역N문화

by 조연섭

출장을 준비하며 컴퓨터를 켰다. 펼쳐진 영상에서는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모 정치인이 오랜 정치 경험으로 말한다. “역사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정의의 편이다.”라고


그렇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오래된 것처럼 말한다. 제도라는 외투를 입고, 숫자와 절차를 앞세워 스스로를 합리라 부른다. 그러나 역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 역사는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해, 침묵 속에서 울린 목소리를 기록한다. 권력이 남긴 문장이 아니라, 정의가 남긴 흔적을 채집한다.


정의는 대체로 조용하다. 확성기를 들지 않고, 다수결의 박수에도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으로 남는다. “그 결정은 누구의 삶을 바꾸었는가.” “그 침묵은 누구의 시간을 빼앗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권력은 종종 말을 잃는다. 역사는 바로 그 침묵을 증거로 삼는다.


권력은 현재를 장악하지만, 역사는 시간을 다룬다. 현재의 승패는 기록의 잉크가 마르기 전까지는 불확실하다. 오늘의 명령이 내일의 오판으로 번역되는 일은 흔하다. 반대로 오늘의 고립이 내일의 기준이 되는 순간도 잦다. 정의는 즉각적 보상을 약속하지 않지만, 지속의 심사를 통과한다. 그래서 역사는 정의를 신뢰한다.


정의는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 숫자 뒤에 숨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 그 작은 이름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될 때, 역사는 방향을 바꾼다. 강자의 연설보다 약자의 일기장이 더 오래 남는 이유다. 권력은 기념비를 세우지만, 정의는 삶을 남긴다. 역사는 결국 삶을 택한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지금의 선택이 안전한가.” 그러나 역사가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이 선택이 옳은가.” 안전은 현재의 언어이고, 옳음은 시간의 언어다. 권력은 안전을 관리하지만, 정의는 옳음을 요구한다. 역사는 후자의 편에 선다.

프롬프트_ 조연섭

그러므로 역사를 믿는다는 것은 오늘의 판단을 견디게 하는 기준을 믿는 일이다. 권력이 흔들릴 때 정의를 붙드는 선택, 그 선택이 당장은 외로울지라도 기록은 반드시 그쪽으로 기운다. 역사는 권력의 편이 아니다. 정의의 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늘, 시간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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