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철학이 묻고 싶은 것

인간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by 박지명

GPT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이제는 학생이라면 GPT를 사용하지 않고 학습한다는 것은 미련하다 못해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 비하여 등재되는 논문의 수가 늘어나는 데에는 분명 GPT의 기여가 있다. 심지어 AI는 신약 개발, 단백질 구조의 분석과 같은 과학 분야는 물론 작곡, 작사에까지 영향을 넓힌지 오래이다. 이제는 개인화된 AI, 특정 도메인에 적합한 AI, 에이전트 AI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과학 그 자체에 관하여 탐구하는 과학철학과는 질적으로 다른 질문으로서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을 발생시키고도 남는 사건이다.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또 인간이 기술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순간부터 밀착되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게 변했음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과학철학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예로, 칼 포퍼(Karl Popper)는 과학적 이론이란 반증 가능한(falsifiable) 것이어야 한다고 정의함으로써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별하였다. 즉, 어떤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관찰 가능한 증거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다. 이에 따르면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명제가 된다. 즉, 현재의 과학 이론이란 반증되지 않고 남은 잠정적인 가설일 뿐이다.


그에 반해 '기술철학'이란 "기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연관된다. 인간은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 이전에,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기술의 발전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그 발전은 어떻게 전개되어야만 하는가? 이런 사실과 당위의 질문은 얽히고 섥히며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향후 본 메거진에서 계속 이해하고자 노력해보겠지만, 이는 단순히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철학은 아니다. 우리가 AI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술은 어떤 미래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은 명시적, 묵시적으로 특정한 기술철학적 전제를 가지고 형성되기 때문에 기술철학은 우리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현대기술을 정의하면서 "모든 존재자를 부품으로 몰아세우는 '닦달[몰아세움]'이라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그 닦달 앞에서 "기술을 한낱 도구로 여기는 단순한 생각을 버리고 우리 시대를 반추"하라고 주문한다. 이런 성찰이 "기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이상 (<<호모 파베르의 미래>> 41쪽 참조).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또한 그토록 AI 시대에 강조되는 '인간다움'의 문제와 연결될 것이다.


'인간다움'의 문제와 기술철학이 만난 가장 명백한 예 중의 하나는 아마 '트랜스휴머니즘'일 것이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어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로 발전하게 되어 인간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나, 최근의 어느 국가 지도자들이 "장기를 바꾸어가면서 150살은 넘게 살 수 있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오디오에 잡힌 사건을 보면, 기술에 대한 기대가 극단적으로 표현된 트랜스휴머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더 이상 극단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무리가 아닌 것처럼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랜스휴머니즘의 가장 큰 설득력은 "실제로 이들이 주장하는 기술 발전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제시된다는 데서 나온다. 나아가 이들의 주장을 기술 발전의 최첨단 고지에 있는 사람들이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가지는 힘"이 곧 설득력이다(같은 책 180쪽 참조). 일론 머스크의 뉴럴 링크는 그가 테슬라와 스페이스 X에서 이룬 성공 위에서 일종의 '도덕적' 정당성마저 가져온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인간다움'에 대해, 그리고 '인간다움'이 반드시 영향을 미치는 '윤리'에 대해 도전을 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설득력'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이러한 기술의 영향력에 대해서 탐구해보고,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 탐구를 이어가보자. 그저 막연한 두려움으로 기술을 배척하거나, 기술만 믿고 다른 모든 '역사'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실수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인간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더 이상 답변거리가 남아있지 않은 우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