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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너는_어떻게 2주를 보냈을까?

by 성준

민수의 전화를 받고 성준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이미 엉망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던 건 오히려 그 모습이 성준이 방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깨끗이 정리되거나 정돈된 방이었으면 더 놀랬을지도 모른다. 그 방에 민수도 와있고, 내토도 와 있었다. 내토는 본명은 아닌데 고향의 옛 지명을 예명으로 쓰는 녀석이 있었다. 모두 표정이 영 개운치가 않다. 아니 모두 눈동자를 자꾸 떤다.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나를 본다.


"형님.. 저기 저희가 먼저 와서 좀 찾아봤는데요..."


민수는 쭈뼛거리며 전화기를 하나 내민다. 성준이의 핸드폰이다. 성준이는 핸드폰을 두고 다니지 않는다. 응급실에 실려갈 때도 잊어버리지 않는 게 핸드폰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내미는 데 이걸 왜 내게 주는지 모르겠다. 도미노 피자.


민수는 내게 도미노 피자 박스를 내밀었다. 먹으라는 건가? 왜 이걸...


"형님.. 여기에..."


민수를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표정으로 피자 박스를 열었다. 먹다 남은 식어 버린 말라비틀어진 피자 한 조각이 있다. 왜 이걸 내게 주는 걸까? 먹으라는 건가? 그런 의미라기엔 너무도 표정이 진지하고, 상황이 아니다. 어딘가 이유가 있을 거다. 답은 반대편에 있었다. 피자 박스 뚜껑에는 금세 알아볼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랬다. 성준이는 성준이답게 피자 박스 뚜껑에다 자신의 출사표를 던지고 나선 것이었다. 어떤 마음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보고 나서도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농담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몇 번이나 글자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도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고, 피자 박스는 점점 더 무겁게 내 손을 짓눌렀다.


사람이 간사하다. 그때 그 순간에는 평생이 지나도 이 것을 가슴에 품고 살 줄 알았다. 그 순간의 냄새 충격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슬픔과 동시에 밀려오는 분노와 걱정들. 그랬다. 성준이는 피자 박스 뚜껑에다가 유서를 썼다. 그런 잊지 못할 기억들도 십 년이 지나니 이제는 가물 거린다. 성준이가 쓴 내용도 어렴풋하고, 성준이의 방의 모습도. 그 골목도. 그 비린내도 이제는 가물가물 하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이런 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딘가에서, 그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잠시 가출 같은 걸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이 서른셋에 가출이라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성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바랬다. 그랬기를 바랐다. 나와 민수와 내토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성준이의 전화는 이곳에 있으니 어디 연락을 할 곳은 없고, 이 넓은 서울 어디부터 찾아야 할지 우리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것이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시트콤의 어느 에피소드처럼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그러면 훗날 어느 술자리에 성준이의 뒤통수를 한 대 치면서 웃으며 꺼낼 수 있을 이야기가 될 텐데 하고 바랬다.


성준이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혹 돌아오더라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들어오지 않을까 봐 방에 불을 껐다. 그리고 성준이 방이 올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범인을 기다리는 형사가 되어 잠복근무를 하듯 집 앞에서 기다렸다. 다시 그 방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정리되지 않아 지저분한 그곳. 성준이의 삶이 남아있는 그곳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불이 꺼진 그 방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만약 돌아온다면, 나는 무슨 얼굴로 그를 맞을 수 있을까? 밤이 깊도록 집 앞에서 기다리다 막차가 끊어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저녁이 되면 다시 성준이 동네로 향했다.


성인 남자의 가출은 그리 위협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서를 발견한 다음날 경찰에 신고를 했도 무엇하나 쉬이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핸드폰을 두고 나갔기에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었다. 성인 남성의 실종신고는 단순 가출쯤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특정할만한 범죄의 증거가 있지 않는 한 경찰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물며 정말 나쁜 마음으로 나갔더라 하더라도, 타인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찰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뭐 그 보다 더 바쁜 일이 수두룩하다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그기간동안 몇 번 경찰서를 방문하고 나서야 조사관과 함께 주변 CCTV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늦은 밤 원룸을 나서는 성준이의 어깨와 발걸음.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 그의 걸음은 대로변 어딘가에서 끊어졌고, 어디로 향한 것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찾지 못했다. 그저 그 모습이 내가 본 성준이의 생애 마지막 흔적이었다.


최초 실종 신고 당시에는 그 어디에도 성준이를 연상시킬만한 변사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아직 어딘가에서 성준이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 소식에 우리는 조금 더 기운을 냈고, 성준이의 친구들은 회사를 퇴근하면 성준이와 함께 놀 던 곳들을 뒤졌다. 홍대로 강남으로, 강변으로, 다리 위로 성준이 친구들은 참 열심히도 움직였다. 친구들이 조를 나누고, 구역을 나누어 찾았다. 그리고는 밤이 늦어지면 성준이 집으로 모여 어느 곳을 다녔는지 서로 확인하고, 또 계획을 나누었다. 민수는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다녔고, 내토는 수첩에 성준이랑 함께 갔던 장소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우리는 그렇게, 성준의 시간이 흘러간 자리를 따라 걸었다.어느 곳을 찾아야 할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추억을 꺼내어 내었고, 성준이의 지나간 인연들에게 전화를 해 혹여나 연락이 왔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그 사라진 시간 이주일 동안을 두 손 모아 기도하셨고, 그러던 어느 날 깜빡 잠이 드셨던지. 잠시 멍하게 계셨던지 하던 그때 집 밖에서 엄마! 하는 성준의 목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부리나케 집 문을 열었지만, 서 있을 리 없는 성준이의 모습과 싸늘한 그 냉기에 목덜미에 소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셨다고 했다.


‘엄마!’

너무 생생해서 문을 열었다가, 그 앞에서 주저앉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이 어머니에게는 성준이의 제삿날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같은 날 성준이를 찾아가지 않는다.


집을 나갔다는 그 날도,

어머니의 귓가에 들렸다는 그 날도,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그 날도


어느 하나 우리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그 2주일의 기간 내내 우리는 시계의 모래가 무너지듯 서서히 무너져 갔다. 시간은 모래처럼 무심히 흘렀고, 동생이 없는 하루가 한 겹, 또 한 겹 쌓였다. 그렇게 나는, 점점 무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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