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일상을 계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에 전화를 한 통 받았고, 그 전화가 내 불안감을 멈춰 주었다.
"박성준 씨 형 되시나요? 여기는 금천 경찰서... OOO입니다. 어제...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불안감은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그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언제나 사건보다, 말 보다, 숨소리보다 먼저 찾아오지만, 현실로 일어났을 때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
성준이는 한강의 밤섬에서 발견되었다. 신문에서나, 티브이 뉴스에서나 보아오던 이야기가 눈앞에 그대로 일어나 버렸다. 먼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안치되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덜덜거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담배에 붙을 붙였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가고, 손의 떨림이 조금은 가벼워질 때쯤 성준이의 친구들에게,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께, 그리고 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성준이를 찾았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좀 모셔와 달라고.
눈물은 나지 않았다.
대신 입술 사이로 새는 숨처럼,
작게, 반복해서, 저주 같은 말을 뱉었다.
"씨발… 씨발..."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이 현실 자체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병원에서도 영안실은 구석에 있다. 깊고, 습해 보이는 지하에 있다. 내 기억엔 그랬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갈수록 더 습했고, 더 서늘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스테인리스 침대에 하얀 시트가 덮여 있는 물체가 있었고, 그것이 성준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물속에 있었던 것일까? 성준이는 벌써 퉁퉁 불어 있었다. 호리하고 잘록한 허리도 잔뜩 부풀어 있었고, 나와는 다른 듬직한 어깨는 더 커져 있었다. 며칠을 울어 재낀 사람처럼 눈은 퉁퉁 불어 있었지만, 그곳에 생명의 온기는 없었다. 내가 아는 성준이의 모습은 어디에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략적인 형태가, 성준이였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준이는 24년 동안 하루 세 번씩 인슐린 주사를 맞아왔다. 그것이 2만 6천 번쯤 된다. 허벅지에도 오른쪽 왼쪽 상박에도 성준이에게는 주사로 인해서 볼록해진 흉터가 있다. 하루도 빼먹을 수 없었던 그 주사바늘의 흉터가 그 망가진 모습에서도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니라 우겨봐도 성준이가 맞았다.
잔뜩 부풀어진 몸과 얼굴. 그런데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고, 마치 말을 하는 것 만 같았다. 놀라 괜찮은 거냐 물었더니. 부패가 진행되면 내부에서 생긴 가스가 저렇게 입을 통해 나온다며. 마치 거품을 무는 것 같아 보인다고 으레 벌어지는 일이라는 듯 설명해 주셨다.
내게는 성준이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 생명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성준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한 대 쥐어박아야 할지. 미안하다며 안아주어야 할지. 호되게 혼을 내야 할지 여러 경우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 옵션 중에는 이런 모습은 없었다. 아니 이런 모습으로 성준이를 만날 거라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어느 영화에서도 어느 이야기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 적 없었다.
나는 성준이를 만질 수 없었다. 낯선 냄새와 낯선 모습. 내가 아는 모습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그 모습이 성준이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루만질 수도, 안아줄 수도 없었다.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다시, 또 멈췄다. 차가운 냄새와 낯선 살결. 내가 아는 성준이는 이 안에 없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 그를 안아줄 용기를 끝내 내지 못했다.
서늘한 감촉의 스테인리스 침대 모서리를 움켜잡으며 그저 성준아 성준아라고 바보처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손을 뻗었다가도 거두길 몇 번씩. 내게 하나뿐인 형제의 죽음에서 나는 비겁했다.
나는 내 형제의 죽음을 어루만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동안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내 안의 피가 차가운 사람인 것 같아. 부끄러웠고, 내 스스로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에 그 순간을 말할 수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 순간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병원에서 동생을 확인하고, 담당 경찰서를 찾아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이미 유서와 함께 실종신고가 되어 있었기에 별다른 조사나 혐의 없이 처리되었다. 그 사이 고향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아니 친구가 운전한 차로 부모님을 모셔왔다. 나는 부모님을 영안실에 안내하지 못했다. 그 모습, 그 얼굴은 나만 기억하기를 바랐다. 부모님에게는 우리가 아는 그 얼굴이 마지막 기억이기를 바랐다.
그 모습은 나만 기억하기에도 차고 넘쳤다. 내 부모의 기억 속에 성준이를 그렇게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 마지막 모습은, 나 혼자 짊어지기에도 벅찼다. 그 얼굴이, 우리 부모님의 마지막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어머니의 기억 속 성준이는 웃고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기억 속 성준이는, 따뜻해야 했다. 그건 내가 지켜야 할 몫 같았다.
성준이에게도 처음 겪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도 성준이의 지인들에게도, 나의 부모님에게도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무도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준비하려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처음이었다.
자식이, 친구가, 형제가,
자신의 손으로 삶을 내려놓은 이야기를 들은 건.
그건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고,
어느 책에서도 읽은 적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준비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등을 돌리는 일에 대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음은, 숨이 멎는 고요였다.
자식은 항상 자신보다 뒤에 남아야 한다고 믿었다.
자식의 눈물을 닦아주는 연습은 했지만,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날, 작은 방 안에서 아이의 이름을 수십 번 불러봤다.
대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빠는 등을 돌리고 주먹만 쥐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아무 말 없이 떠났는지,
대체 무엇을 놓친 건지 되짚어보면서도,
도무지 도달하지 못하는 이해의 끝에서
부모는 아이에게조차 용서를 구하게 된다.
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켜내지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없는데, 이 세상에 우리가 남아 있다는 게 미안하다.
그런 말들을 속으로만 삼키며,
첫 아침, 아이 없는 식탁에 앉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손을 잡지도 못한 채
시간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처음이었다, 삶이 이토록 부끄러운 것이.
친구를 잃은 사람의 처음은, 믿지 못함이었다.
웃고, 떠들고, 때로는 울기도 하며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전부 거짓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다”던 그 웃음이,
“잘 지낸다”던 그 말투가
이제 와서는 죄다 신호였던 것만 같아서
머릿속에서 기억을 수천 번 돌려본다.
그날 밤, 내가 먼저 연락했다면.
그날, 조금만 더 붙잡았더라면.
단 한 번만, 진심을 물어봤더라면.
그렇게 ‘만약’이라는 단어들이
매일 밤 가슴 위에 쌓여간다.
장례식장에 앉아 빈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친구는 처음으로 ‘죽음’이 아니라 ‘사라짐’을 알게 된다.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는 원망과
그 원망을 품은 자신이 너무나 야속해서
혼자 남은 삶이 엷게만 느껴진다.
추억이 많은 사이였기에
잊기도 어렵고, 마주하기는 더 힘들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친구는 깨닫는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세상이 사라지는 방식도
그만큼이나 정교하다는 것을.
처음이었다, 사람이 이토록 쉽게 사라지는 걸 보는 것은.
그리고 내가 영원히 ‘남겨진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형제를 잃은 사람의 처음은, 침묵이었다.
그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투고 화내고, 가끔은 연락이 끊겨도
언제든 돌아가면 있을 줄 알았다.
가족이라는 말은,
그 어떤 위기도 버틸 수 있는 방패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형이름은 찢겨졌다.
평생 함께 자란 방, 함께 웃던 추억,
함께 늙어갈 것만 같았던 미래가
모두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장례식장 한편에서,
그는 자꾸만 돌아보았다.
형의 웃음소리, 동생의 장난기,
그 잔소리 같은 게
어디선가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그의 등을 툭 쳐주지도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사라지면,
남은 가족은 다 함께 무너진다.
웃음의 반쪽이 없어지고,
침묵이 늘어지고,
대화가 한 줄로 끊긴다.
형제는 말할 수 없는 고독으로 남는다.
가장 많은 기억을 함께 했기에
가장 큰 침묵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처음이었다, 이름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내 삶 전체의 풍경이 무너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처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끝은,
남겨진 이들의 끝없는 시작이 되었고,
그 시작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