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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의 빛

by 안녕

종종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지하철로 달려갑니다.


에일 듯한 바람이 매서운데

얇게 입은 옷이 아쉬운

오늘입니다.


아이의 피아노 학원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

문득, 오늘만큼은 아주 잠깐

나를 위한 무언가를 사면

좋겠다,

아니 사야 되겠다, 하는 생각에

멈추고야 맙니다.


역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작은 케이크 하나를 집어

포장합니다.


초는 필요 없어요.

빛나는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케이크 위에서

불타오르는 초는

보기 힘들더라고요.

어느덧, 제 나이는

초를 꽂기만 해도 활활,

타오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손등이 다 터질 것 같은데도

포장된 상자 놓칠세라

부지런히 걸어

피아노 학원 앞에 도착합니다.


집에 가면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도 부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으로

슬며시 기분 좋아집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습니다.

들어간 수업에서

아이들은 열심이었고

저는 오늘만큼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 않게끔

적당히 꾀도 부려가며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생긴 5교시의 여유 속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습니다.


준비했던 회의는 일찍 마무리되었고

마침 J를 불러

꼭, 해주고픈 이야기를 건네곤

헤어지기도 했고요.


나무랄 데 없는 하루.

부족함 없는 하루였어요.


예전엔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한 선물,

나를 위한 축하,

나를 위한 하루.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보내는 일상이

그저 평온함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빛나는 불꽃같은 하루보다는

잔잔하게 비추는 등불 같은 하루가,

값지다는 생각이 들자,


기념일에만 행복하자, 보다는

그날에도 행복하자, 는 마음으로

바뀌어 갑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매일의 행복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자정을 훌쩍 넘긴 지금,

살짝 고백하자면

어제는

제 생일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제 생일이 저는, 참 좋은데요.

하루 종일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그거면

저는, 충분합니다.


:-)


참, 스타벅스에서 사 온

케이크는 제가 차린 생일상에

밀려 냉장고 신세가 되었네요.

내일 아침엔 커피에 케이크를 먹고

출근하기로 합니다.


어머, 벌써 내일의 행복까지

미리 준비가 되었네요.


훗.


다들, 평온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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