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신고 '분수령'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로 불리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이 6~7월 사이 실명계좌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오는 9월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의 이용 및 보고에 관한 법률(특금법)' 직전에 이루어지는 재계약이기 때문에 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금법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계좌를 요구하고 있다. 시중은행과 거래소 간 실명계좌 재계약은 지난 2018년 1월부터 실시된 가상자산 거래 실명제에 따른 것이다. 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맺고 있는 국내 4대 거래소는 6개월 단위로 은행과 실명계좌 재계약을 맺고 있다.
업비트는 지난해 6월부터 케이뱅크로부터 실명계좌를 공급받고 있다. 케이뱅크는 업비트와의 계약 이후 사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가상자산 '불장'이 시작된 올해초부터 사용자 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4월 케이뱅크의 안드로이드와 iOS 사용자를 모두 합친 월간사용자수(MAU)는 470만명으로 나타났다. MAU가 49만명이었던 지난해 4월 비해 10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를 이유로 관련 업계는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실명계좌 재계약이 무난히 성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실명계좌 계약 기간은 공개한 적이 없다"며 "계약 기간이나 재계약 시점은 계약 의무상 알려드릴 수 없다"고 전했다.
지난 2018년부터 NH농협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고 있는 빗썸과 코인원도 오는 7월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먼저 코인원은 지난주부터 농협은행의 서류실사가 진행중이다. 코인원 관계자는 "현재 은행 서류 실사를 진행중"이라며 "은행 측에서 요구하는 여러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코인원은 오프라인 고객센터 설립, 안전거래 캠페인 진행, 인공지능(AI) 솔루션 동입 등 다양한 방면에서 특금법을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빗썸도 실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빗썸 관계자는 "서류 상으로 실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협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3년째 이어왔다"며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라 보완하면서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농협은행 관계자는 "평가안이 새로 재정비되고 일부 은행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평가안을 기반으로 실사해 다각도로 평가중이다"라고 전했다.
넥슨의 지주회사 NXC가 운영하는 코빗도 실명계좌 재계약을 위해 신한은행의 실사를 받고 있다. 다만 신한은행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공개하지 않고 자료만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알려졌다.
코빗 관계자는 "이제 막 실사를 시작해 재계약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신한은행의 자료 제출 요구에 착실히 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빗은 신한은행과 지난 2018년부터 실명계좌 계약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 1위 거래소도, 은행과 오랜 기간 계약을 이어온 거래소도 재계약을 자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의지와 가상자산 가격하락이 맞물려 4대 거래소의 실명계좌 재발급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또 금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내 금융사가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공급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했을 때 얻는 수수료 수익보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금융 사고 위험부담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아직 시중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지 못한 소위 중견 거래소들 역시 실명계좌 신규계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명계좌 발급이 유력해 사전등록 이벤트까지 했던 중견거래소 고팍스와 지닥도 부정적인 업계 분위기에 실명계좌 계약을 미루고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다만 고팍스 관계자는 "계약서가 오고가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간 곳이 여러 군데"라며 "실효성 있는 대화를 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명계좌 확보 상황이 나빠지진 않았다"며 "시장의 불안 요소가 사라지면 좋은 소식 들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지닥 관계자도 "여러 은행들과 이야기가 잘 돼 연동 테스트까지 마쳤다"며 "실명계좌 확보에 변동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혼란의 원인으로 업권법의 부재를 꼽는다. 구체적인 법안이 없기 때문에 은행들이 선뜻 나서길 꺼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관련 법제도 형성에 손을 놓고 있다보니 가상자산 관련 가이드라인을 은행연합회가 만들어 배포한 상황이다.
국회에선 가상자산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업권법보다는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발의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안'부터 4년전 비트코인 가격 급등락 당시 나온 법안까지 모두 규제에 대한 내용이다. 법제처가 발행한 '가상화폐(암호통화) 관련 의원 발의 법안'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총 10개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10개의 법안부터 최근 양경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까지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한편 정부는 지난 28일 오후 불법행위 피해예방을 위해 가상자산 관리체계와 각 분야 소관부처를 정한 '가상자산 거래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오는 9월 24일 이전 리스크 선제적 관리를 위해 조속한 신고유도 및 컨설팅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조속한 신고를 위해 신고 요건 및 필요한 보완사항에 대한 컨설팅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공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거래소들 간 속도 경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거래소 관계자는 첫번째 등록업체라는 타이틀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4대 거래소의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의 실사가 끝나고 6월쯤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을 진행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