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01 (목) 쉬어가기
아침을 사러 실 포로 향한다. 피자 메뉴가 다양하고 있고 대략 한판이면 두 끼는 족히 먹기 때문에 3~5천 원 가격이면 정말 저렴하다. 그런데 러시아 글자는 알파벳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주문한다. 왜냐면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영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이다.
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밑반찬을 팔듯이 파는 코너가 눈에 들어온다.
나름 영양이 있어 보이는 샐러드로 골라서 푼다. 100그램당의 가격들이 적혀있는데, 양을 조절할 수 없어 대충 서너 개를 찍었고 달아보니 거의 피자 하고 비슷한 가격이 나왔지만 신선해 보여서 만족했다. 나오다 보니, 카페도 있었는데 대충 아메리카노가 800원 즈음하는 것 같았다. 물가가 저렴하다는 기준은, 꼭 가격이 싸다는 것 이외에도 서비스의 질을 어떠했느냐도 포함되는데 이곳은 그 밸런스가 정말 환상적이다. 디지털 노매드가 되어서 살고 싶은 곳에 아무렇게나 산다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샐러드도 먹고, 남은 재료들로 말도 안 되는 요리들도 해 먹으며 편집을 하고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드디어 이 집을 떠나는 날인데 너무너무 아쉽다. 처음에 무심코 호스트한테 8월 2일에 떠날 거라고 했는데, 그 이후는 세를 놓을 생각이라고 한다.
원래는 8월 즈음에 돼서는 우크라이나와 폴라드의 국경마을 리비우에 있을 계획이었다. 어딘가의 길게 머무를 생각은 없었고 생각보다 비쌌던 터키에서 데었던 터라, 얼른 동유럽을 끝내고 이집트 다합을 가려고 했었다. 8월 10일이 생일이니 그 날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원래 알던 폴란드 친구와 보내고 9월 전에 비행기를 타고 다합에 가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여러 가지 인프라와 물가에 반해, 그리고 정말 좋은 호스트들을 만나는 바람에 8월이 된 현재도 우크라이나 키예프 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집은 내일 나가야 하는데, 운이 좋게도 내일 바로 나를 호스트 해준다는 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위치는 대략 봤을 때 역에서 많이 떨어졌지만 영어가 유창했고 유쾌해 보이는 친구였다. 고민하다가 그 친구의 집에서 생일 전까지 머무르고 떠나기로 했다. 사실 별거 아니기도 하지만, 생일을 어디서 보낼지가 많이 신경이 쓰였다. 나이가 들며, 한국이라고 아주 특별히 보냈던 건 아니지만, 외국에서 누구 하나 내 생일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면 진짜 우울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코스를 짜는데 신중해졌다. 더군다나 동유럽에서 점점 서쪽으로 향할수록 물가도 비싸져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을게 뻔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의 일정이 길어지는 건 어찌 보면 내 온몸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 전 여행들과 다르게 영상작업을 하며 움직이기 때문에, 한 번쯤 이렇게 자료를 정리하고 몸도 쉬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여행 중에 내 예산에서 이런 좋은 숙소를 구할 일은 다시없을 것 같았기에 체류일은 나도 모르게 훅훅 흘러간다.
이 호스트는 여자였는데 정말 얼마나 쿨한지 자기 속옷도 다 제대로 치우지 않고 가는 바람에 정말 내가 모든 세간살이를 다 정리해줬다. 그래도 집에 남긴 것 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는 쿨한 그녀 덕분에 이것저것 둘러봤는데 솔직히 가져갈 것은 없다. 중국 친구가 많다고 했는데, 특이한 중국차들이 많았다. 호스텔에 가면 보통 아침에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는데, 카페인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티백을 챙겨가서 차를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해 뒤져보니 모두 유통기한이 기본 1년씩 지나있다. 정말 지독한 그녀다.
그래도 멀쩡한 차 티백 몇 개와 고무줄과 샤오미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겼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정말 득템이었다.
오늘은 오전에 장 본 172흐리브나가 꼴랑 전부였다. 하루 장 거하게 보고 9천 원 쓰고도 이렇게 호의호식할 수 있다니.. 우크라이나는 정말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