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영화기획이란?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멋진 배우들의 로맨스를 보며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에 감정이입하여 마치 자신이 멜로의 주인공이 된 듯 대리만족을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데이트나 휴일을 즐기기 위한 오락의 하나로 영화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아버지의 눈물 나는 고군분투에 감동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더러는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문화예술적 욕구를 충족하려고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기도 한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 모든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재미’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함께 관람한 옆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질문을 하는가? 또는 영화를 선택하려 할 때 자신보다 먼저 그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질문하는가? 대부분은 “그 영화 재미있어?”, “그 영화 어땠어?”라고 질문을 한다.
이 재미있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그 영화가 ‘만족스러웠는지’, ‘감동적인지’, ‘지루하지 않은지’, ‘슬픈지’, ‘무서운지’, ‘웃기는지’, ‘신선한 지’ 등 '재미'라는 한 단어로 우리는 관람 후에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어 그 영화 진짜 재미있어” 또는 “아유~ 재미없어...”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본질은 '재미'를 느끼려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저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면 ‘재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극장까지 가서 재미없는 영화를 보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라. 이는 무척 화나는 일이지 않는가? 티켓을 구입하느라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극장에 가기 위해 들인 시간과 영화를 보며 허비한 시간이 아깝고 그 재미없는 영화 때문에 이후의 데이트와 기분까지 망쳤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부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에 기꺼이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극장으로 달려온다.
영화를 마치고 나올 때 사람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라.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 영화에 대해 신나서 이야기하지만 반대로 영화가 재미없을 때는 말없이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 나온다. 특히 그 영화를 선택해 보자고 조른 사람일 경우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얼굴에 미안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며 나온다. 그리고 함께 관람한 옆 사람은 "그러길래 이거 보지 말자 했지~!" 하는 표정으로 화를 억누르는 듯한 모습을 쉽게 보게 된다. 재미없는 영화 한 편이 만든 데이트 비극이다.
영화는 짧은 단편임에도 보는 내내 조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2시간 반이 넘는 영화이지만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되어 어느덧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즈음이면 그 아쉬움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관람이 찰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몇 시간 같이 아주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는 보는 이유,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보는 사람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지만 영화가 ‘재미’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모두가 동의를 할 것이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즉 제작자, 감독, 작가들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어떤 소재이고 주제이든, 제작비의 규모가 크던 작던, 주연배우가 티켓 파워가 있던 없던, 장편이건 단편이건, 예술영화 독립영화 또는 상업영화이던, 무슨 장르이냐와 상관없이 당신의 영화가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영화 관람이나 제작 양쪽 모두에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이다.
즉 영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미’이다. 관객들은 직관적으로 이 재미를 느끼며 이 재미를 쫓아 영화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명제는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가 스스로 반문하고 반문해야 할 숙제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오락(娛樂, Entertainment)으로 출발했다. 1985년 영화가 세계 최초로 상영된 이래로 지금까지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영화의 초창기에 영화가 예술이냐 비예술이냐라는 논쟁이 있었고 수많은 감독들이 예술로서의 영화를 탐구하고 또 그 노력이 오늘날 영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오락으로서의 영화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 본질에서 벗어난 시도는 번번이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며 오래가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의 기원은 영화의 탄생 즉 출발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과 러시아로 확대되며 기술혁신과 사회, 경제적 구조의 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증기기관의 발명은 이전의 농업 중심사회에서 공업 사회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 에너지는 공장에서 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공장의 출현은 지금까지의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먼저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며 살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공장 부근으로 이주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그 주변으로는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구성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되는 등 근본적인 사회 자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층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공장으로 출근을 했고 이전까지 농사지을 때와는 다르게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이 명확히 구분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는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이 분리되었음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낯선 도시 생활 속에서 생긴 이 잉여 시간 즉 여가 시간을 위한 오락거리들이 필요하였다. 이들에게 여가는 단순히 노는 시간, 잉여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며 생기는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이며 더불어 공장에서의 반복적인 노동으로 지친 삶을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기에 탄생하게 된 것이 ‘영화’이며 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1895년 12월 28일 토요일 뤼미에르 형제는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를 선보이는데 그 영화가 상영된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그랑 카페, 인디언 살롱)였다.
카페의 등장 : 1686년 프랑스의 카페가 처음 생겨난 이래, 정치, 사회, 사상, 문화의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천으로 기능해왔다. 17세기에는 주로 문학을 토론하는 공간으로, 18세기에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 토론의 장이자 혁명 정신의 온상지였고, 19세기에는 시인, 예술가, 철학자들이 문학, 연애, 취미, 철학 등을 토론하는 담론의 장이었고, 예술가들이 화풍을 고민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노동자들이 비좁고 답답한 집을 떠나서 떠들썩하게 사교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중략)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카페는 노동자 계급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다. [프랑스 카페의 역사 (블로그 https://bookedit.tistory.com/724)]
뤼미에르 형제가 자신들의 첫 영화를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하려 선택한 공간이 바로 대중문화의 장인 카페였다는 사실은 영화가 처음부터 오락이자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관객들에게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폐쇄된 어두운 공간으로 안내했고 그 공간 정면에 설치된 하얀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여 여러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게 하였다. 이러한 관람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화의 관람하는 방식 그대로이다.
이어 조르쥬 멜리에스는 영화를 오락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뤼미에르 형제의 아버지와의 친분으로 최초의 영화 상영 현장에서 초대되어 움직이는 영상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마술사였던 그에게 영화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였다. 그는 1902년 지구의 과학자들이 로켓을 만들어 달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스토리를 담은 [달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세계 최초의 SF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그는 달에 사는 원주민이 불꽃과 함께 펑하고 사라져 버리는 장면을 연출하였는데 당시 관객들은 이를 보고 진짜 마술이라고 느끼며 놀랐다 한다. 이전까지 그 누구도 인간이 달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이야기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자 재미이다. 이렇듯 영화는 태동부터 관객들에게 충분한 오락거리를 제공하려 노력하였고 그러한 시도가 영화를 끊임없이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후 영화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하였고 TV의 출현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미디어나 게임과 같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나타날 때마다 더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려 노력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120여 년의 영화의 발달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영화의 정체성은 바로 오락이고 그 오락의 핵심은 '재미'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재미란 무엇인가? 어떠한 재미가 있을까?
'재미'라는 질문을 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재미를 이야기할 것이다. 흔히들 재미라 하면 흥미롭고 웃기거나 즐거운 것을 기대하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재미는 단순히 이러한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주 슬픈 영화를 보고도 우리는 '재미있다'는 표현을 쓴다. 또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주인공의 사연에 깊은 공감이 될 때 또한 재미있다고 표현한다. 그럼 이런 것만 있느냐 더 생각해보면, 액션 영화를 보면 그 액션에 몸을 움찔움찔하며 보기도 하고 어릴 적 홍콩 무협영화를 보고 나와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의 무술을 따라 한다고 이리저리 몸에 힘이 들어가 자세를 취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이렇듯 시원한 액션 영화를 보고 나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따라 하며 "아 너무 재미있어!"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아주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도 재미를 느끼고 역사에 관한 숨겨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에도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이렇듯 재미는 정말로 다양하다. 기쁨, 분노, 사랑, 슬픔, 감동, 공감, 스릴, 새로운 지식, 새로운 발견, 향수, 코믹, 스펙터클, 현란한 볼거리, 공포, 긴장감, 서스펜스, 지적만족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우리는 이런 모든 감정이 느껴질 때 '재미있다'라고 표현한다.
코미디는 웃겨야 하고,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공감과 충분한 감동을 줘서 정서적 만족을 느끼게 해야 하고 슬픈 영화는 눈물이 쏙 빠지게 슬퍼야 하며 무서운 영화는 보는 내내 몸이 아플 정도로 뻣뻣해져 긴장상태를 유지시켜줘야 한다. 이러한 것이 어정쩡하다거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밋밋한 영화 재미없는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재미는 무엇과 관계가 있을까? 도대체 재미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재미는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을 움직여 '공감'할 때 만들어진다. 즉 사람들의 오감을 제대로 자극해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정서적 만족,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누구나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실제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재미를 잘 드러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명제는 절대적이다. 당신은 영화를 만드는 내내 당신이 만드는 영화가 어떤 재미를 추구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그것이 명확하다면 관객들을 재미있는 영화의 세계로 이끌 확률이 높아진다.
'공감'이 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재미'는 도대체 그럼 어디로부터 나올까?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자극될 때 나온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를 성경에서는 '원죄'라고 한다.
그럼 왜 인간은 모든 것이 완벽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이다. 탐욕, 물욕, 성욕, 식욕, 권력욕, 지식욕, 관음 등…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을 볼 때 우리는 쉽게 감정이입하고 공감을 한다.
성공한 Yotube 중에 소위 먹방이나 ASMR과 같은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식욕에 대한 욕망을 비주얼과 사운드로 자극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권력욕 하면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려는 욕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 사회가 크던 작던 그 공동체에서 권력을 쥐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사람들에게 있다.
재미있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재미를 가진 영화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사람마다 그 재미의 관점이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재미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겐 전혀 재미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특히 영화를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 과연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재미있을까? 하는 것을 우리는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내가 느끼는 재미를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느낄지를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작가와 감독들이 제작자나 프로듀서(이후 프로듀서로 통일하여 표기)를 찾아와 자신이 기획한 아이템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설명하며 자신의 영화가 제작되면 마치 곧 대박 날 것처럼 신나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야 정말 좋은 아이템인 걸 당장 계약하자~” 하는 프로듀서는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신나서 말을 끊을 수가 없어 듣다가 "좋네… 그런데~~~" 하고 에둘러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렇게 재미 이야기를 생각했다는 흥분에 밤잠을 못 이루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달려왔는데 정작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일까?
한마디로 당신에게는 재미있지만 상대방에게는 별로 재미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거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가나 감독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품을 설득할 첫 관객이 프로듀서인데 이미 여기서 덜컹거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작품을 바라보는 작가나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의 시각이 다를 수도 있고 감춰진 진짜 재미를 발견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작가와 감독의 이야기가 그리 재미있지 않다고 느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 안에서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공허한 이야기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새로운 시나리오들이 매일 도착하는 할리우드 프로듀서들이나 우리나라 투자사 관계자들이 과연 모든 시나리오를 다 꼼꼼히 살펴볼까? 짐작하듯이 그들이 모든 시나리오를 다 검토해 볼 수가 없다. 1992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The Player]를 보면 잘 묘사되어 있는데 할리우드 스튜디오 부사장 그리핀 밀은 제작자를 찾아온 작가나 시나리오를 쓴 감독을 만나 3분의 시간을 주고 그들의 영화를 설명해 보라고 한다. 너무 많은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하는 제작자로서 모든 시나리오는 다 읽을 수 없을뿐더러 모든 작가나 감독에게 미팅의 기회를 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미팅에서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분 남짓, 그 시간 동안 제작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작품은 영화화되기 힘들어진다. 3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겠는가? 하지만 그 3분 동안에 그들의 영화가 재미있다고 판단된다면 3분은 10분이 될 수도, 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바로 시나리오를 읽어보게 만들 것이다.
명심하라! 그 어떤 프로듀서도 "당신의 이야기는 쓰레기야~ 그만 디벨롭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이런 걸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하며 완곡하게 표현을 한다. 그런데 꽤 많은 작가나 감독들이 이 거절을 '거절이 아니야'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당신 이야기의 재미란 듣는 사람이 재미있게 느낄 것이냐'의 문제이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있어서 이 ‘재미’란 이 작품을 기획하는 당신의 입장에서의 재미가 아니라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관객들과 만날 때 과연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것인가? 어떤 재미를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가? 에 대한 것을 말하며 기획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이 생각하는 재미에서 관객이 느끼게 될 재미로의 명확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분명 작가나 감독 입장에서 당신이 창작한 이야기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부터 이미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확신이 아무런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그 오랜 시간을 버티며 매달리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재미있으면 남들도 재미있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를 기획한다는 것은 주관적인 재미를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즉 '당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관객들도 재미있게 느끼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물론 안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재미는 다양하다. 그중에 하나라도 관객들을 만족시킬 재미를 충족해야 한다. 이점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고 기획 단계에서 관객이 느낄 재미를 명확히 찾지 못했다면 시나리오를 디벨롭시키기 전에 반드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충분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도 시나리오로 잘 옮기기가 어려운데 재미가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