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철학적 논의
철학적 탐구의 대상에서 형이상학을 배제하여온 현대 영국과 미국의 많은 분석철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주제의 하나가 될 죽음의 문제는 논외로 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오히려 죽음의 문제는 오히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에 의하여 다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죽음의 문제가 철학적 관심의 영역에서는 어떤 객관적인 지식도 줄 수 없다고 여겨왔다. 그 이유는 죽음이, 특히 죽음에 대한 사유의 단서가 되는 ‘나의 죽음’이 검증 가능한 경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엄밀하게 보아 우리가 직접, 그리고 안에서부터 겪게 되는 확실한 죽음은 나의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데 있다. 에피쿠로스(Epikuros, 341~271 B.C)가 말한대로 우리는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둘 중의 어느 한 상태에 있다. 즉 우리의 세계 총체와 존재에 대한 ‘관계’는 죽음과 더불어 단절되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실존철학자들은 죽음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단순한 지적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죽음이 경험을 통한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내적 체험의 내용이라고 말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주체적이고 내면화된 체험을 강조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죽음과 형성하게 되는 관계와 그리고 그 관계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죽음에 대한 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죽음은 ‘언제나 나의 것’이요, 그럴 경우에만 실존적인 의미를 갖는다.
죄렌 키에르케고르(SÖren Kierkegarrd, 1813~55)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관에 반대하여 “진리는 주관적이다.”, “주관성이 곧 진리이다고 말하였다. 보편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불신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즉 그는 실존을 단독자로 규정한 것이다. 이때 단독자란 개별적 주관적이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그리고 개별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는 삶은 삶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가치 또한 죽음이 있는 곳에서, 죽음의 테두리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철학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나 용기있게 죽음에 대처하라고 가르친다. 즉 죽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죽음이 우리의 삶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의미를 내면화해야 한다고 것이다. 이같은 노력을 통하여 얻어진 죽음에 대한 이해는 삶을 보는 우리의 눈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자기계몽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갖가지 망상과 오해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계몽과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한 세기 전 미국의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요청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그간의 성교육은 성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특히 청소년들의 인격을 균형있게 형성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성교육의 이러한 성공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의 구상이 더욱 고무되었다. 이러한 인문, 사회과학적으로 포괄적 연구가 활발해진 상황에 힘입어 1960년대 초반 이후, 특히 1970년대에는 죽음에 대한 교육이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되었다.
페니스톤(Penniston)은 죽음에 대한 교육의 불가피성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죽음을 금기(taboo)로 에워쌌으며, 그것에 대하여 쉽사리 말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성(性)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오해가 생겼는데, 특히 슬픔 및 사별(死別)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해 그러했다. 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죽음도 감상적(感傷的)이 되기 전에 이성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죽음에 대한 표상의 다양성과 도덕적 판단의 문제
죽음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 배경, 사회적 환경과 종교적 신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자연과학의 발전에 힘입은 과학적 지식이나 계몽의 정도 등 시대적인 여건에 따라서도 죽음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기독교도들은 죽음을 영생을 얻기위한 단계로 보고 공포감보다는 희망을 갖고 맞이한다. 플라톤(Platon, 427~347 B.C.)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소크라테스(Sokrates, 469~399 B.C.)는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정신이 육신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된다고 믿는다고 보았다. 이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은 아니다. 시인 노발리스(Novalis, 1772~1801)는 ‘죽음이 우리를 건전케 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처럼 자신의 철학적인 신념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신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지탄하고 정죄하기까지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안락사는 일차적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할 경우, 또는 의학적으로 희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의 시간을 앞당기거나, 자연적 죽음의 시기에 즈음하여 인위적으로 안락하게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안락사를 범죄행위로 볼것인가, 또는 당사자가 의사표현이 불가능할 경우 의사결정에 관한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
소크라테스는 죄의 유무를 가름하는 판결에서 “만약 내가 어떤 점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롭다고 말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나는 사후의 일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에서 일 것이다”고 평온하고 냉소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결국 60표 차이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후 법정모독죄로 결국 사형이 확정된후 죽음을 깊은 잠으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사는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 희망을 갖고 죽음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 사형을 면할 수 없었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Phaidon)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은 불멸하다며 두려움없이 죽음을 맞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에게 닭을 제물로 바쳐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육신의 속박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당부를 한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를 위하여 먼저 이성적인 사려 분별의 능력을 갖춰야한다고 말하였다. 금욕주의적인 삶을 추구하며 은거 생활을 선호하였던 에피쿠로스는 스토아적 정관속에서 삶의 위안을 찾았다. 죽음자체는 전적으로 고통없는 의식의 소멸상태일뿐이며 인간의 모든 감지 능력도 이와 더불어 소멸하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과는 어떤 관계도 가질 수 없다고 그는 판단하였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이성만이 선과악의 기준이 될 뿐, 그 외의 어느 것도, 예컨대 건강, 소유, 노쇠, 병 죽음따위는 그자체로서는 선한것도 악한 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판단하였다.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도덕적인 병이라고 까지 보았다.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힘쓰고 이성의 힘을 빌어 자연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으로 보았다. 즉, 스토아적 의미의 현자는 냉철하고 고용한 경지, 즉 아파테이아(Apatheia)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스토아철학자의 이상은 “자연에 따라서 사는 것” 자연은 섭리 또는 신이라는 말로 대신 해도 무방하다.
세네카(Seneca, ?4 B.C. ~ 65 A.D.)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는 대신에 거듭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삶을 연회에 비유하였다. 즉 죽음을 임의로 앞당기거나 지나치게 생명에 집착하지 말고 죽음의 적기에 이르러 침착하게 그리고 기꺼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는 모든 것은 자연에서 나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며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가르쳤다. 운명을 사랑해야 하며 결코 무모하게 항거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페이터의 산문에는 죽음에 대한 스토아적인 초연함으로 삶에 대한 달관을 표현하고 있다.“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대로 무대에서 나가듯이...그것은 작가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나라. ”
쇼펜하우어는 그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 주제로 삼았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종족유지를 위한 본능적 욕구, 곧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보았다. 행복이란 고작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고통의 일시적 소강상태에 불과할 뿐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인간의 삶을 ‘한탄의 골짜기’(Jammertal)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도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보편적인 자연법칙에 어긋난다고 보았다. “감정의 소임은 생명의 전개를 촉구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도리어 그러한 감정에 의하여 생명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그러한 자연체계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도 삶이 고통의 연속이기는 하나 자살이 결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자살은 어리석고 천박하다며 자살은 어떤 목적에도 기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무모하다고 했지만 자살에 대한 도덕적 심판에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에 대신하여 삶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두 개의 길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예술을 통한 길이요, 다른 하나는 불교적 의미의 고행의 길이라고 보았다.
첫 번째 미적 경험의 길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예술을 통한 해방은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의 윤리적인 길은 일찍이 석가모니가 제시한 해탈의 길과 같다. 이 길을 위하여 쇼펜하우어는 불교적 의미에서의 고행을 내세운다. 이때 고행은 곧 해탈을 위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 문제제기를 위한 질문
1. 공교육 현장에서 죽음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학교에서 죽음교육이 너무 이르다고 볼뿐 아니라 불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죽음교육은 노년에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미국의 70년대 성교육의 계몽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의 죽음교육의 바람을 일으킬 계기가 마련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현대시대의 청년들의 사회적, 경제적 한계상황은 가히 죽음에 비교할만하다. 자살이 한계상황극복의 한 방편으로 여겨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실제 청년들이 죽음을 철학하고 삶을 성찰함으로 이 상황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서양철학 중 어떤 것으로 가능할까?
memo : 앞으로 문제제기를 할때는 비판적 요약, 자기 생각과 견해 적기가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