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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결혼은 날씨와 비슷한 거 아닐까?

통제하려 하는 남자가 결혼하게 됐을 때

by 책 읽는 호랭이

내 맑고 건강한 정신의 비결이자, 내가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통제'다. 나는 그야말로 통제로 뒤덮인 통제인간이라 볼 수 있는데, 그 범위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도 규칙과 규율로 삶에 통제를 가해 맑고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고 있으며, 나에게 닥쳐오는 외부의 그 무엇들에게도 일종의 통제를 적용해 나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곤 한다.


물론, 내가 조물주도 아닌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으랴. 다만, 나의 행위와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들에 한해서는 대부분 통제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통제가 내 삶을 더 나은 행복으로 이끌어 왔다.


하지만, 그 통제는 오로지 나 혼자 살아갈 때 가능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내 삶에 배우자가 항존하게 되고, 내 행위와 범위 내에 배우자의 존재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내 통제를 기반으로 한 삶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붕괴의 시작점은 바로 아내의 야근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저녁의 삶이 내가 기대하고 생각해 왔던, 그리고 마땅히 누려야 할 내 삶이 피해보고 더 나아가 파괴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 왜냐하면 나는 아내와의 저녁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했던 모든 개인 일정을 새벽과 점심으로 옮겼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회사 점심 시간에 헬스장을 간다. 그렇게 확보한 저녁 시간을 아내와 보내는 것이 나의 결단이자 기대였다. 그러나, 아내의 잦은 야근과 늦은 귀가 시간으로 인해 저녁의 삶이 내 생각과는 달라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것을 해도 되나, 중요한 것은 내가 아내와의 저녁 삶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 습격은 안타깝게 아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내가 정신적 타격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환경을 내가 어떻게 폭력으로 받아들이지 않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 심각한(?) 사안을 갖고 내 오랜 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 선배이기도 하지만 결혼 선배이기도 한 그분께서 조언을 주셨다. "XX아, 결혼 생활은 말이야, 희로애락으로 가득한 날씨 같은 거야. 내일 날씨가 맑을 거라 예상해도, 막상 비가 올 수도 있고, 눈이 올 수도 있잖니. 그래도 그걸 가지고 내 삶이 파괴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잖아."우리는 기상 예보를 통해 어느 정도 오늘의 날씨를 기대한다. 때때로 예보가 틀릴 때도 있다.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다소간의 짜증은 낼 수 있지만 (기쁠 수도 있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날씨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는 기본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도 그런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아니, 거시적 관점에서 나의 세계와 나 이외의 존재의 세계가 맞닿게 되면 당연히 그런 거 아닐까? 혼자 사는 삶은 모든 날씨가 예상 가능하고 필요할 때마다 비를 뿌리고 눈을 내리는 그런 이상적 세계였다면, 결혼을 해 아내와 같이 사는 삶은 이제 그 날씨 통제가 불가능한 세계에 들어선 것과 같은 게 아닐까?


그렇게 내 삶을 재정의 하고 나니, 아내의 야근에도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됐다. 그런 날은 태풍이 몰아치거나 폭설인 그런 날처럼 여기면 되니까 말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내 인식의 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세계를 통제라는 인식의 틀로 바라봤던 내가, 이제는 적어도 결혼 생활을 해 가는 내 삶에 있어서는 통제를 뛰어넘었다.


이렇게 나는 남편으로서, 결혼을 한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삶을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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