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형식들 (0). 프롤로그

연재를 시작하며

by 책 읽는 호랭이

나는 오래도록 개념을 명확히 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 인식된 특정 개념의 정의가 모호했음을 느끼는 순간마다 그것을 붙잡아 세웠다.

그리고 집요하게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그 과정은 이상할 정도로 행복했고, 즐거웠고, 활력이 됐다.

개념의 모호함이 눈앞을 흐리게 만드는 순간들은 오히려 내 삶을 밝게 빛나 다시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들이 되었다.



나는 한때 스스로를 '모든 것을 명확히 하려는 자'로 규정한 적도 있다.

이제는 그 자기규정을 넘어 글로써 나는 내 앞에 놓일 개념을 밝히고, 열어젖혀 마침내 나의 세계 속에서 다시 풀어낼 것이다.

이것은 나의 세계를 오로지 글로 펼쳐 보이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그리고 밖을 향한 담대한 선언이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과거가 의미 있고 소중했듯, 익숙해진 옆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것과 같이, 도처에 흐르는 개념을 붙잡아 명확히 하는 것은 그런 것과 비슷하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 다시금 숨을 불어넣어 내 삶에서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하는 개념의 명확화 행위다.



이 연재는 포착된 개념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강의가 아니다.

이 글은 나의 인식 속에서 개념의 해체와 재건을 반복하면서,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의미가 부여되고,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면서 남긴 내 존재의 형식들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반드시 나만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나의 존재가 포착한 자리마다 남을 형식들을.

이 형식들이 누군가의 삶의 여정에 유익한 좌표가 되어 조용히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글의 가치는 충분하다.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