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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제 오랜 취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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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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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제 오랜 취미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집에서는 녹음해 온 것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노래가 늘어갔습니다. 대학교 때는 밴드 동아리를 했습니다. 동아리방에 틀어박혀 합주를 하고, 무대 위에서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혼자 연습을 하고, 녹음을 하고, 곡을 쓰기도 하고, 간헐적으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제 인생의 반을 함께한 취미인 것입니다. 인생의 반을 거쳐온 흔적을 돌아보니 참 많은 게 남았습니다. 값싸지 않은 악기와 장비, 프로그램이 남았습니다. 여러 노하우들도 남았습니다. 전문 음원은 만들 수 없지만 인디스러운 데모 음원은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이 생겼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음악 동호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평범한 음악 동호인이, 어쩌다 음악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제가 생각하는 음악이라는 취미가 가진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은 운동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혼자 앉아 여섯 줄 악기와 씨름하고, 악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애씁니다. 내 목소리가 지겨워질 때까지 반복해 들으며, 더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호흡을 끝없이 가다듬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더 나은 소리로 음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산소와 근력운동을 통해 몸이 건강해지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매일매일의 반복, 점진적인 과부하. 진보를 의식하며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몰라보게 몸이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지루하지만 꾸준한 반복 끝에, 몰라보게 기량이 성장하는 것이 음악입니다. 그런데 운동과 음악은 마냥 똑같지만은 않습니다. 음악은 지루하고 끈기 있는 노력만으로 완벽한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음악은 무대에 서야지만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운동하는 모습을 쇼츠로 올리고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세태일 뿐, 운동이 남에게 보여졌을 때만 완성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음악은 결국 청자와 관객이 완성해 주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음악입니다.

음악이 참 힘든 부분입니다. 실력을 향상하는 길은 고독이나 권태와의 집요한 줄다리기인데, 결국 성취의 마침표는 청자나 관객의 존재라니. 고독해야 하지만, 마냥 고독해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 정말로 어려운 취미인 것입니다. 어떻게 고독함과 타인의 존재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취미를 잘해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정답은 대학교 시절 밴드 동아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신입생맞이, 축제, 정기공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공연은 적절한 관심이었습니다. 그때는 밴드를 했으니, 다른 밴드 멤버들의 존재 역시 적당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십 대 초반, 이런저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려 자꾸만 동아리방으로만 향한 것은 적절한 고독이었습니다. 그렇게 홀로 있는 시간에 연습을 하고, 내 것을 내 귀로 직접 들어보고, 그런 고독과 춤을 춘 시간들은 멋진 무대를 하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독하다가도, 또 새로운 인연이 자꾸만 찾아오는 것이 이십 대 초중반의 삶입니다. 고독과 타인이 오고 가는 선순환 속에서 음악이라는 취미생활이 성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음악 취미는 쭉 정체된 상태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표현한 고독과 타인 중 타인의 존재가 부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 밴드 동아리에 계속 얼굴을 비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아마추어나 무명에게 기회를 주는 오픈마이크 무대는 가뭄에 콩 나듯 있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버스킹을 한답시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나이를 먹고 직장까지 다니니, 이십 대 초중반과는 다르게 고독한 상태에서 새로운 뭔가가 잘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고독한 채 별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쭉 고독하고 마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무대의 기회가 없고, 내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청자도 딱히 없는 상황.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지인도 손에 꼽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해 지루하고 고독한 연습을 견뎌낼 동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지닌 타인마저도 없었습니다. 선순환의 한쪽 고리가 삭아버렸고, 더 이상 고리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악기나 장비 구매로만 재미를 느끼는 악기 애호가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있었던 것인지, 자작곡을 끄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악기나 노래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싼 악기를 사는데 돈을 쓰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 시간에 연습을 하고 창작을 하며, 왜 이런 부질없는 것들을 자꾸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값비싸고 멋진 악기들, 그리고 틈틈이 쌓아 올린 연습과 창작의 흔적들이 저를 계속 음악이라는 취미 곁에 있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여유까지 찾고 나니, 오랫동안 놓지 못했던 음악이라는 취미의 삭아버린 한쪽 고리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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