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數코리아
안녕하세요. MATHING의 슈슈입니다.
계속해서 수학자을 연재하고 있는데요..
이번엔 ‘데카르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수학은 아름다워>,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이야기>, <교실 밖 수학여행>, <한눈에 쏙! 수학지도>, <행복한 교과서, 수학자를 만나다>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르네상스를 맞이한 중세의 유럽은 활기를 되찾아 갔습니다. 각 나라간에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행에 필요한 지도 제작, 항해술, 천문학 등이 발달하였고, 복잡한 식을 계산해야 하는 필요성은 삼각함수와 로그, 방정식 등에 대한 연구를 가속화시켰습니다. 또 16세기 말부터는 수공업적인 생산에서 탈피하여 기계를 사용한 대량 생산 체제에 들어갔으며, 이 물건들을 팔기 위한 무역 전쟁도 치열해져 갔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각 분야의 발달을 자극했습니다. 먼 바다에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크고 좋은 배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는 무작정 배의 크기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물과의 마찰이 증가하는 것을 막고 속력이 줄지 않도록 해야 하는 동시에 많은 양의 물건을 싣고도 안전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또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시계의 발명이 시급했으며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정밀한 망원경도 필요했습니다.
또 물건을 빨리 운반하기 위한 도로나 운하의 건설 공사가 활발해지면서 건축술도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물건을 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신무기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져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는데, 그들이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산업 발달로 인해 새롭게 제기된 ‘운동’이라는 개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수학 분야에도 ‘운동’과 ‘변화’의 바람을 부어넣어 수와 양, 도형의 연구에 운동 개념이 덧붙여지게 됩니다. 그러한 움직임은 위대한 수학자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순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프랑스 귀족의 자제로서 편안하게 자랐구요.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를 안쓰럽게 생각한 아버지는 데카르트의 모든 응석을 받아주었습니다. 눕고 싶으면 눕고 먹고 싶으면 먹고, 아무튼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잠자기였습니다. 칸트의 경우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데카르트는 정반대의 경우입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형이 있는가 하면, 밤이 되어야 말똥해지는 올빼미형들도 있는 법입니다. 모두에겐 자신만의 일상이란 것이 있는 법이니까요.
‘데카르트의 좌표계’는 바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의 무늬를 관찰하던 중에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천장에 그려지는 직선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파리들을 발견하고, 직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파리들의 위치를 수로 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아이디어로부터 서로 직교하는 좌표가 탄생하게 됩니다. 좌표계가 파리 한 마리에서 비롯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
그의 모든 발상들은 이렇게 누워서 공상을 하는 순간에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허리는 무척 길지 않았을까요?ㅋ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엿가락처럼 늘어난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데카르트는 철학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이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의 세계를 강조한 형이상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교과서적인 정리입니다.
좀 다른 관점으로 볼까요? 그는 자고 또 자고, 굼벵이처럼 누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철학, 과학, 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그는 50세쯤인 1649년에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대를 받아 파리를 떠납니다. 그러나 스웨덴에 가서 1년 만에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늘 쾌적하게 살아온 그로서는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사나운 날씨를 견디기가 힘에 부쳤습니다. 게다가 크리스티나 여왕은 23세로 너무나 젊고 혈기왕성했습니다. 여왕은 가정교사인 데카르트에게 새벽 5시에 수업을 해 줄 것을 명령했는데, 이것이 데카르트에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침대에서 늘어지게 잠자고 빈둥대지 못하게 된 데카르트는 나날이 수척해졌고, 급기야 폐렴에 걸려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유골은 스웨덴에 머물다가 17년 후에야 파리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유골은 두개골과 오른손 뼈가 없어진 채로 팡테온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천재의 두개골과 오른손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세상은 천재를 죽어서도 편치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