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70대부터 40대까지 함께한 여행이었고, 주류세대는 50대였다. 40대인 나는 막내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자유여행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고,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없는 타이트한 휴가를 낸 관계로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단, 도장 찍기 여행이 아닌 한 나라를 천천히, 깊게 보는 상품으로. 그렇게 고민 끝에 선택한 나라가 크로아티아였다. 꽃보다 누나덕분에 유명해진 크로아티아에 대한 이유 없는 선망이 있었고, 왕좌의 게임의 무대인 두브로브니크 성벽을 걸어보고 싶다는 추가적인 이유가 있었다.
헝가리 공항에 내려슬로베니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패키지 팀을 만났다. 70대 3 커플과 50대~60대로 보이는 여행객들에 다소 놀랐다. 12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시간과 체력을 요하는 크로아티아 일주는 휴양이 아닌 관광이며, 시차로 인한 체력부담, 음식문제 등 선입견 상 고령자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이 특별해진 이유가 그 어르신들 덕분이다. 패키지 관광에 익숙하신 분들인지라, 사교성도 좋으신 어르신들은 가가호호 호구조사를 하셨다. 모임시각에는 항상 1등으로 나오셔서 기다리셨고, 유머와 위트로 분위기를 압도하기도 하시고, 식사 때 맥주를 사 주시기도 했다.
여행 초반, 조금은 불편하고, 자유시간을 달가워하지 않으시는 분들 때문에 우리만의 시간이 없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러려니 맞춰가니 원팀 분위기가 되었다. 다소, 조금은 우리 부부가 유리된 느낌이었지만.
어르신들이 결혼 20년 차인 나를 '새댁'이라 불러 주셨다. 신혼여행을 온 줄 알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손을 잡고 다닌다고 눈치를 주시기도 하고, 청바지가 찢어졌다고 지나가며 말씀하시기도 하고, 사진을 다정하게 꼭 붙어 찍는다고 놀리시기도 하고...
순간순간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르신들 눈에 40대인 내가 얼마나 아기 같아 보이셨을까? 자신의 기억대로 상대를 바라보기에, 요즘 나도 20대 친구들이 10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20대와 30대가 잘 구분이 안된다. 그런 거겠지.
내가 7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 내내 누구보다 씩씩하게 여행하시고, 자유시간을 줄 때마다 근처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시던 어르신들이 말이다.
역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건가?...
한 팀은 세 자매 가족이 어머니를 모시고 왔었다. 세 자매 모두 아들 한 명씩을 둔 세 가족이어서 어머니까지 10명이 한 팀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팀으로 움직이는 그 가족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부러운 게 더 많았다.
유일하게 그 세자매분들이 비슷한 또래였다. 가족끼리만 움직이다 보니 다가갈 기회는 없었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이분들처럼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그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한 팀은 50대 여고 동창 4명이 여행을 왔다. 처음엔 다들 나이가 달라 보였는데, 알고 보니 비슷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 친구들마다 나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 삶의 무게라고 해야 할까? 눈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무려 열 살 넘게 나이가 많으셨다. 이렇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볼 수 있다. 주름진 얼굴에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고, 거친 손에서 나이를 읽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여행이 인생여행이 된 이유가 그거다. 여행에 나이가 정해진건 아니지만, 발칸을 세 번 오신다는 70대 커플의 총무 할아버지의 수려한 언변과 외모.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일방향 소통을 하신 반면에, 상호작용이 되는 그 어르신을 보며 배우게 된다.
저렇게 늙고 싶다.
눈과 귀를 열고, 입은 닫는 어른이 되어야지.
70대에도 호기심을 잃지 않은 어른이 돼야지.
어린 나도 그분들을 나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어르신들 눈에 나는 어떤 젊은이였을까? MZ세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그분들께 내가 MZ세대였을 테다.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