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기 전날까지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추석연휴에도 바쁘게 움직였던 것도 있었지만, 중간고사를 보는 고2 딸아이와 10월 모의고사를 보는 고3 아들 녀석을 집에 두고 떠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10일은 족히 버틸만한 과일과 유제품, 컵밥, 냉동음식 기타 음식을 냉장고에 채워두고, 빨래, 청소를 해 두었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아이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강박적으로 했었다. 공항 가기 전까지도 마음 한편에 짐이 가득했다. 왜 여행을 간다고 했을까,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하면서 답이 없는 헝클어진 생각과 걱정을 꾹꾹 눌러 담고 여행을 시작했다.
어쩌면 지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상반기, 여러 자격증에 도전했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다양한 시험을 치렀고, 교육을 받았다. 다행히 상반기에 치른 시험은 모두 합격했으나, 하반기 마지막 시험에는 낙방했다. ㅋ 상반기에는 업무도 많았고, 호주도 다녀왔었다. 8월 시험이 끝나고,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빈틈없이 일정을 계획하고, 여유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 나, 번아웃이 왔었나 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떠난 크로아티아.
여백이 가득한 나라였다.
삶의 속도가 느린 나라.
느려도 아무렇지 않은 나라.
오래전 삶을 지금 살아도 괜찮은 나라.
여유로웠다. 그냥 그곳에 남고 싶을 만큼.
오랜만에 많이 웃었다.
여행사진을 찍을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웃어도 뇌는 속는다는 말처럼,
핸드폰 카메라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웃게 되는 그곳에서
나의 뇌는 여유를 찾은 모양이다.
집 걱정이 되지 않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행지에
그 간의 삶의 무게들은 자연스레 내려놓아졌다.
그 나라의 음식, 도시, 역사, 문화를
버스에 오를 때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직접 보고, 걷고, 체험해 보고,
쿵짝이 잘 맞는 우리 부부는
매일 2만 보에 달하는 걸음을 걸었다.
에메랄드 빛 맑고 투명한 바다,
그 안에 뛰어노는 물고기.
한적한 도시에 사는 친절한 사람들.
그들의 일상에 들어간 나는,
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 듯했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어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Hello~
반갑게 답해주신다. 헬로라고.
그 편안함이 좋았다.
잊어버린 웃음을 찾은 시간,
마음의 여백을 만든 시간.
의도한 것은 아닌데,
집에 오고 나니 마음이 평화롭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죽을 뚱 살 뚱 전전긍긍하며 살 이유가 없는데... 그냥 물 흐르듯 살면 되는데...
뭔가를 성취하고자 아등바등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현실의 나를 깨닫는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전문 크리에이터들, 블로거들, 작가님들을 보며, 현실의 나를 직시할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지금 일이나 잘하자고.
마음 편하게 살자고.
애쓰지 말자고.
그랬다.
여기저기, 나와 대화를 바라는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나로 인해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회의 중 쏟아내는 지루한 하소연을 들어도 감정이 일정했다. 저분도 쏟아내야 살 수 있으니 저런 것이겠지 싶어 들어드렸다. 예전 같으면 중간에 무 자르듯 잘랐을 테지만, 사실 내가 시간만 내어주면, 저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그런 거다.